마음이 향기로운 사람(31) 자타일시 성불도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자기 내면의 깊은 본성이 보탑이다. 걸림없이 평화로운 마음 하나둘씩 쌓아진 교양이 보탑이다. 불성 인간이란 말은 사람에게누구나 내면의 깊은 성찰을 가르치는 말이다. 칠보로 된 심연의 아름다운 보배 구슬이 불성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아름다움으로 장엄한행복의 불국사의 다보탑이다. 자기 나름대로 꾸민 삶의 무게로 내면에 감추어진 본성의 향기로 자성의 보탑을 조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왼쪽은 본체요! 오른쪽은 체용으로 설계하며 조성한다. 오색 연등이 거리마다 장엄하다. 시주하여 동참하는 이도 있고 생각만 감탄하고만 마는 사람도 있다. “향香공양, 연(蓮)향공양, 등燈공양, 연등공양, 다茶공양, 선다공양, 과果공양, 선과 공양, 미米공양, 향미 공양”이다. 부처님의 오심을 찬탄하며 올리는 공양이 아름다운 행위다. “빈자 일등의 보시”를 행하여야 참불자다. 백화점세일 상품권과 남과 나누어가지는 보시행은 그 근본이 다르다. 나 자신의 마음을 긍지의 아름다움으로 가꾸어 가라. 개개인의 숨어 있는 양심이 복福이 되기도 하고 업(業)이 되기도 한다. 여래의 온전한 공덕은 동참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9) 서원(誓願) 넓고 넓은 마음을 펴라.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라. 서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서원을 가지지 않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전에 나오는 팔만 보살이 모두 서원의 보살들이다. 서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발심이다. 발심은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의 맹세다. 지구가 내일 멸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라. 오늘 이 시간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가버린 시간, 오지 않는 시간에 매달리지 말라. 존재하는 지금의 이 시간이 서원의 살아있는 생의 가치다. 한결같이 평등한 우리의 존재이지만 서원이 없는 삶은 허수아비 삶이다. 얼굴만 예쁘고 속이 예쁘지 않다면 그도 허수아비다. 겉모양이 화려할수록 속은 나약하다. 이 세상 손쉽게 되는 일은 없다. 참을성과 인욕심을 기르는 것이 서원이다. 천수천안관자재 보살이 서원이 있는 불자에게만 나타난다. 대원 본존 지장 보살님도 서원이 지중한 불자에게만 가피하신다.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 여래불도 서원이 있는 발심자에게만소원 성취를이루어준다. 서원은 확신을 주는 사다리다. 서원은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성공을 주는 열쇠다. 욕됨을 참고 견디는 인욕 바라밀이다. 바람직하고 당당한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7) 마음 밖에서 구하지 마라. 혜가 스님이 달마 스님께 묻는다.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달마(達摩)조사 부처님의 진실한 뜻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아니다. “불법”을 배우는 것은 자기 “본성(本性)”을 찾자는 데 있는 것이다. “본성”이란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남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혜가 - 제가 지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달마조사 - 그 편치 않은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 한마디에 혜가는 모든 의문이 풀렸다. 보면 볼 수 없는데, 온갖일을 다하는 놈, 그놈이 도대체 무엇일까? 개념이나 명칭에 속아 생각을 일으켜 답을 찾으려 하지 마라. 우리 모두는 그 근본이 부처의 본성이고, 억천만 겁을 태어나고 죽고 하여도 부처의 그 본성 그대로 “불성”에 존재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다만, 불법을 만나서 공부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고향 잃은 집 없는 고아가 되어(법화경 비유품) “무명장야(無明長夜)”의 긴 밤, 중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불법을 모르면 설혹, 물질과 환경이 풍요로워도 그는 고향 없는 실향민처럼 살게된다는 것이다. 어디에도(오욕락·탐·진·치) 구애됨이 없는 것을 성불(成佛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6) 심외 무/心外無 우리의 살림살이는 탐심(욕심), 진심(성냄), 치심(어리석음)이다. 그리고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이다. 이것을 떠나 우리의 삶은 없다. 삼독심을 버리고 팔만 사천 번뇌를 끊으라 하지만 그것도 억지 주장일뿐 끊기란 어려운 것이다. “법“다운 공부는 탐심, 진심, 치심, 그리고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살되 가치와 의미를 법(法)다운데 두라는 것이다. “탐심“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진심“이 일어 날 때 알아차리고 “치심“이 이러 날 때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법“다움으로 마음 챙겨 깨어나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浦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 같으며 환 같으며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 보살의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불교적으로 살아지는가? 남을 지극히(연민심) 바라보는 인격체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도 존귀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향공양, 연향공양, 등공양, 연등공양 사람의 인품에는 향기가 나게 되어 있다.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4) 나의 본 바탕을 살펴라. 자신의 성격과 성질의 바탕이 무엇인가를 살펴라. 조급한가? 느긋한가? 별난가? 슬기로운가? 성질과 성격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많이 배운 학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성질이 나쁘면 불행한 종말을 맞는다. 배우지 못해도 성격이 좋은 사람은 말년이 편안한 사람이다. 성질이 격하면 건강을 해친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이 “마음 닦는 공부”다. ‘내다. 네다’하는 것이 성질의 뿌리다. 나를 부드럽게 소화하지 못하면 늘 부딪치기 마련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참구해 볼 일이다. 자신의 성격을 눈치채지 못하면, 눈뜬 장님(무지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我) 라는 “아상,아만”의 뿌리가 깊으면 즐겁고 기쁜 날을 나날이 맞기란 어렵다. 모든 괴로움의 짜증은 자신의 성질(성깔)머리로 인해 오는 것임을 알라. ‘탕’하는 한번의 주장자 소리에 “내가 없다”라는 도리를 눈치 채라.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염주를 바로 볼 줄 알 때 고집 불통의 아상을 벗어버릴 수 있으리라.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눈 멀고 귀먹은 이유는 오로지나라는 아집의 고집 때문이다. 그대 향기나는 사람이 되라.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2) 무언 설법 인간은 늘 외적 대상에 매혹되고 현혹되어 내적 고통을 받는다. 좋은 여건과 좋은 환경에 살고 싶은 마음이 죄는 아니다. 다양한 물질과 다양한 사람 다양한 정보가 넘쳐난다. 물질이 주는 자만심에 무지와 미망에 빠져 많은 잘못을 범하고 산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입으로만 정직하고, 마음의 양심은 버린다. 특권과 명예를 탐하여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속이며 아부하고 오만함이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세상에 해를 끼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 세계를 불타는 집(삼계 화택)을 중생의 세상이라 하였다. 허황된 말, 속이는 말, 이간질하는 말로 자기 이익만 챙긴다. 탐 욕심에 빠지면, 삿된 말들에 현혹되어 자기도 모르게 악업을 짓게 된다. 충남 논산(일명) 은진 미륵 대불은 천년 동안 말이 없다. 하루에 수백명이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빈다. 관촉사 미륵 부처님이 말하지 않으시니 천년을 지탱하고 부처님의 묵언(침묵)에서 연꽃이 피여 나서 참배한 사람마다 마음의 소원을 성취한다. 마조 스님께서(卽心是佛) “마음이 부처”라 하셨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인연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인연이다. 부처님의 지견은 깨달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20) 한 생각이 모두를 만든다. 무량무변이 인생사다. 지난 과거는 무량으로 지나가고 다가올 무변한 내일은 미지의 세계다. 불찰 미진 수의 세계가 경전 속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들의 알음 알이 생각이 불찰 미진 수의 세계다. 헤아릴 수 없고 비길 바 없는 미진 수의 세계가 아무리 많다 한들 “무량 원겁이 즉 일념이요! 일념즉시 무량겁이다.” 황하 사수 수많은 세계도 알고 보면 좁디 좁은 내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저마다 가진 무한한 세계에서 먼지보다 작은 티끌에 갇혀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량한 세계도 하나에서부터요! 불찰 미진 수의 세계도 하나 안에 존재한다. 한 생각 일으키면 수 억 만이요! 한 생각 접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천 만원, 백 만원, 숫자에 메달려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형상과 현실이 전부인양 속아서 산다. 확연한 자기 성찰로 마음을 깨치는 지성인이 되라. 이해하는 마음을 쓰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라. 사랑하는 마음을 쓰고 애증하는 마음을 버려라. 이해와 사랑하는 마음의 세계는 “화장장엄”의 부처님 세계다. 가난하게 살아도 소중하고 값진 삶이 되는 것이다. 지혜와 덕성을 가진 마음에는 늘 무량 광명하신 부처님이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8) 미혹에서 깨어나라 균형을 잘 이루는 공부가 “미혹”에서 깨어나는 공부다. 매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명료하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상대가 가진 좋은 조건, 권력, 명예, 재력에 의지하는 사랑이 되면 애욕에 빠진 “집착”으로 인한 상처가 자연스레 발생하여 불행해진다. “사람의 여건과 환경 배경”을 보고 사랑을 점치는 시대다. 여건이나 환경을 보고 결혼하면, 자기가 자신에게 속을 확률이 많다. 인간의 본분사는 척박한 환경과 시련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라는 존귀한 가치에 둔다. 상대가 가진 부자라는여건이 좋아 선택한다면 그는 반드시 사랑에 순종하는 노예가 된다. 사랑에 속았다는 사람은 자기 욕심에 자기가 속은 사람이다. 사랑에는 속임수가 없다. 기대하고 받으려는 사랑은 자기 기만에 자기가 상처받는다. 미혹한 마음과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는공부를 해야한다. 자기의 허물은 볼 줄 모르고, 상대의 잘못만 탓하는 것이 미혹함이다. 자기의 결점을 찾아 볼 줄 아는 마음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는 이유다. 성내고 화내며 짜증내는 마음이 미혹함이다. 하루에 열두 번 자기를 살펴라! 마음의
마음이 향기로운사람(16) 지견을 열어라. 소견을 열어라. 추우면 옷을 두껍게 입고 더우면 얇게 입어라. 남의 이야기도 관심을 가져야하지만 자신의 철학으로 걸러 보고 들을 줄도 알아야 한다. 타협과 소통으로 풀 줄 아는 넓은 소견이 있어야 한다. 외형적인 조건의 사물만 보고 잘못 판단하여 허물을 들추어내지 말아야 한다. 천지는 한 뿌리여서 내 일 아닌 것이 없고, 남의 일도 모두 내 일인 것이다. 내 슬픔이 네 슬픔이야! 사람을 찬탄하고 공양할 줄 아는 “평화의 열쇠” 세상의 모든 악과 투쟁을 없애려면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부처로 인정할 때 없어진다. 언어의 궁한 표현으로는 설명이 정말 어렵다. 모든 관계의 개선은 상대를 존중할 때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것이 지혜있는 상식이다. 극과 극으로는 관계 개선을 할 수가 없다. 한 눈 더 떠서 바라보라! 더 뜨고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도 보일 수있다. 이해의 성찰로 보면 또 다른 그를 볼 수 있으리라! 남을 칭찬하다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보여진다. 인간 본성의 깊은 내면은 똑같은 불성을 가진 인간이라는것이다. 겸손한 미덕,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기 마련이다. 상대에 따라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4) 무념 무상 무주 선종(禪宗)의 가르침은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현관이다. 무념(無念)을 배우고 “무상(無常)을 실체로 무주(無住)로수행함”을 기본으로 삼으라. 매 순간 일어나는 유혹의 마음을 어떻게 방어하느냐가 문제다. 공부하는 사람의 차이에는 성품이 기민한 이도 있고, 이해가 느린 사람이 있어, 미혹함을 서서히 훈련하여 깨달아야 한다. 이론으로 아무리 설명을 잘 한다하여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무념!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라. 높은 제왕의 자리,대단한 명예와 특권을 가지는 자리라도 집착하지말라는 말이다. 온갖위험을 감수하고, 명예나 특권의장기 집권을 부추기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무상이란? 유리한 조건과 대상을 만났을때 집착하지 않은 마음이다. 무념이란? 어떤 상황에도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은 마음을말한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이 직관적 마음이다. 선한 일인가 나쁜 일인가? 판단하기 직전의 마음, 판단 이전의 마음을 육조스님께서 무념(無念)이라 하셨다.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은 마음이 무념이다. (應無所住以生起心)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예쁜 것도, 추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2) 보리의 삶을 배우자. 자신이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마음과 뜻이 청정하면 육신은 저절로 따라서 건강하고 건전한 삶이 영위된다. 좋은 행위가 보리다. 좋은 습관이 보리다. 좋은 성격이 보리다. 좋은 도덕이 보리다. 거짓말과 잘못된 행동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다. 신의와 청결을 가진 행위는 행복으로 가는 보리의 길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까닭 없이 죽이지 마라. 남의 것을 탐내어 훔치지 마라. 행실을 바르게 하라. 남에게 모진 말(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하지 마라. 취미가 지나쳐 향락에 빠지지 마라. 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계는 자발적으로 하는 준수 사항이다. 율은 삼가해야 할 금지 사항이다. 목이 말라 맥주 한 잔 마시는 것은 벌칙이 없는 사항이고 술을 먹고 운전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란 말이다. 아는 것은 간단하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선행을 오래 익혀야 자기 것이 된다. 좋고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출신, 성분, 지위고하, 남여 노소, 빈부 귀천, 유식 무식 차별 없음이 보리의 세계다. 보리심으로 살려는 마음만 먹으면 이미 그는 부처님 세계에 태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1) “절제” 자기 순수가 청량제다. 자기를 절제하는 것은 자기를 도우는 일이다. 먹는 음식에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무분별한 식생활로 자기 건강을 해친다. 남이 좋다면 덩달아 먹어서는 안된다. 무책임하고, 생각 없이 먹는 것에 식탐을 내서는 안된다. 사람이 화합하듯이, 음식에도 화합이 있어야 한다.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 조절이 필요하다. 지나치거나, 포식을 하게 되면 위장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화날 때나 기분이 우울할 때 먹는 음식의 소화가 달라진다. 먹고 마시는 일에도 “조절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기분에 따라, 영양의 조화도 달라진다. 잘못된 식습관은 젊을 때 바로 고쳐야 한다. 음식의 조절과 억제는 아주 중요한 생의 패턴이다. 입맛에 당기는 것을 조심하고, 골고루 편식없는 습관이 제일이다. 먹고 마시는 일로 많은 병이 생긴다. 폭음, 폭주, 술은 적게 먹어야 약이 되고, 많이 마시면 반드시 해롭다. 음식에도 계를 지켜야 한다. 젊음만 믿고 폭음 폭주를 방종하면, 암에 걸리기 십상이다. 자기의 식생활에, 자기가 세운 규범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남을 지도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자기 생활의 규범을 잘 지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