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19) 자기 부처 우리는 모두 본래 부처다. 다만 오해와 착각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이다. 분별로 인해 남이나 자신을 학대하지 마라. 중생이 부처라는 사실은 사람이 가장 위대한 생명체란 말이다. 자신을 부처로 볼 때 자기나 남에게 관대한 사람이 된다. 상대에게 관대하라. 모든 형상과 사물에도 관대함이 부처다. 자신을 진실의 길로 이끌어가라. 겉으로만 꾸미는 사람은 스스로 나약함을 택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마음도 알고 보면 죽은 마음이 있고, 살아서 활발한 마음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죽은 마음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요! 살아있는 마음은 정의로운 마음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하나는 자기가 자기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믿는가?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다.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믿는다. 형상이 있거나, 형상이 없거나, 비비상천까지도 모두가 부처의 본성을 지닌 성품이라 하셨다. 인생이란! 색(色)으로 오고, 공(空)으로 오고, 행복으로 살다가 불행으로 돌아가고, “행”, “불행”이 왔다갔다, 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자기가 부처라는 사실을 10%만 믿으면, 10% 불성 인간이 되고, 100% 믿으면 ,10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17) 사람이 가지는 연민의 사랑은 인간이 존재하는 자기의 바탕 위에 이룬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관심밖의 사람에게 사랑을 두지 않는다. 부처님의 사랑은 사랑 밖의 사랑을 자비로 돌보는 사랑이다. 소유하는 사랑은 작은 사랑이다. 자유로히 놓아두는 사랑은 큰 사랑이다. 연민의 사랑에 집착하는 사랑은 시기와 질투, 착각의 오해로 인한 괴로움으로 변질되기 쉽다. 자신의 방에 갇혀 문을 잠그지 마라. 마음의 문을 열라. 아픈 마음, 괴로운 마음, 상처 받은 마음의 문을 열라. 행복 앞에는 언제나 고통과 아픔이 있는 것이다. 자기를 성냄으로부터 지켜라. 24시간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지 말라. 사랑의 방해자는 자신의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을 강하게 고집하면 사랑은 멀어져 간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아상(我相)이 강하면 친교가 어렵다. 미숙한 표현이 오해를 낳기 쉽다. 말씨에 향기가 나고, 눈빛에 소리가 나야 한다. 눈으로 말하고 통하는 것이 이심전심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전통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그 집안의 전통을 존중해줘야 한다. 인간이 가지는 고귀한 사랑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기 다른 전통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15) 道人 스스로 자유로워라. 긍정하면 자유로워지고 이해의 폭이 넓으면 자유로워진다. 게으른 마음에는 늘 걸림이 있기 마련이고, 부지런한 마음에는 자유로움이 늘 피어난다. 도(道)란! 제 3의 세계가 아니다. 가고, 오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도“道”다. 자발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직업 속에서 道를 이뤄라. 말하고, 행동하고, 가고, 오는 것, 모두 道 속에 있다. 道속에 살더라도 한결같은 세월이 되어야 道人이라 할 수 있다. 생각과 마음을 평정하게 하는 일여(一如)한 공부, 파도가 일지않는 평정된 마음이 一如 하여야 道에 든다. 간단없이 여일하게 마음이 空에 들면 道人이다. 수천 수만 가지 일도 알고 보면, 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한 자리만 잘 챙기면 만사가 자유로워진다. 화나고 걱정되는 일도 알고 보면 그 자리다. 그 자리 하나 잘 관리하고, 평정하는 일도 닦는 큰 공부다. 화가 나거든 무아다, 공이다 하고 소리질러라. 화가 난 그 자리가 무아고 공의 자리다. 그 자리는 본래 실체가 없으니, 또한 공이요! 무아인 것이다. 마음이다. 성품이다. 불성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까닭에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13) 보리살타 마음에 양식을 얻어야 한다. 믿고 이해함이 마음의 양식이 된다. 부부간에도 믿음이 있어야 하고 부자지간에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므로 마음의 양식을 넉넉히 쌓을 수 있다. 신, 혜, 행, 증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라 한다. 믿음이 일체의 좋고 선한 일을 길러 낸다. 부처님 법을 믿음으로서 공덕을 쌓을 수 있다.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 법法에 귀의하는 것이 자기를 정화하고, 자기를 승화하여 존귀한 자기의 가치를 알아가는 양식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만물을 길러내는 자양분이 된다.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신의가 간다. 인생에 있어서 믿음은 길 잃은 나그네의 나침판이다. 믿음은 만물을 지탱하고, 길러내는 대지(大地)다. 믿음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본성이다. 천경만론이 믿고 이해하는 수행을 말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존엄한 가치다. 믿음과 신의가 깨어지면 모든 것이 파탄되는 것임을 알고 살아야 한다. 아침마다 예경을 올리는 불자가 되라. 기도하고 염불하며 독경하는 신심은 강한 믿음과 공덕의 자양분이 된다. 나의 믿음은 나만이
마음이 향기로운사람(111) 책을 읽어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녹슨다.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 하지 않는가! 적당히 오락이나하며 살면, 녹슨 삶이 되고 만다. 한가한 시간에 빠져 적당히 살면, 영혼의 영양이 부족하여 막막한 종말을 맞게 된다. 원력이 있는 생활, 서원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태한 마음으로 미모에만 신경쓰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미모보다 귀한 것은 온화한 지성과 인품이다. 인자하고 온화한 할머니의 모습이 내일의 나임을 알고 살아야 한다. 인간이 가지는 지성은 마음에서 나온다. 지성이 없는 미모는 향기없는 꽃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손에 쥐어준 행복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세상이 주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려면 넓은 안목이 길러야 한다. 넓은 안목이 없으면 늙어감에 대한 괴로움을 감내하기가 어렵게 된다. 선과 악을 공유하는 것이 불교다. 좋다 싫다를 다 수용하는 것이 또한 불교다. 찰나 찰나 할아버지 할머니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길이다. 독서와 공부를 하여야 “불생 불멸”하는 진리를 알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이 열린다. 사랑은 자기 향기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로써 어머니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 (109) 하심 (下心)하며 살자 우리의 살림 살이는 탐심(욕심), 진심(성냄), 치심(어리석음)이다. 그리고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이다. 이것을 떠나 우리의 삶은 없다. 삼독심을 버리는 그것도 억지 주장이 될 뿐 끊기란 어려운 것이다. 법다운 공부는 탐심, 진심, 치심 그리고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살되 가치와 의미를 법(法)다운 대두라는 것이다. 탐심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진심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고 치심이 일어날 때 알아 차리라는 가르침이다. 법다움으로 마음 챙겨 깨어나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浦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 같으며 환 같으며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 보살의 삶을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불교적으로 살아지는가? 남을 지극히(연민심) 바라보는 인격 체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도 존귀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향공양, 연향공양, 등공양, 연등공양, 사람의 인품에는 향기가 나게 되어 있다. 인품에 향기나는 사람으로 연(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07) 유턴할 수 없는 삶 우리는 일 차원의 세계에서 유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시 때때로 매일매일 오는 나날이지만 다시는 유턴되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삶”에 “수행”이 없으면 가버린 시간의 의미를 모르고 살게 된다. 수행을 통해서 유턴되지 않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사회라는 구성원으로 살며, 70억 인구의 사람이 지구 위에서 같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지역이 다른 요소로 나누어 살고 있는 인간이지만 한 가지 똑같은 것은 유턴없는 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기 하나라는 국가의 집단 체제에 살면서 나라마다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차별된 삶을 산다. 각기 다른 견해와 의견이 충돌하면서 유턴되지 않는 삶을 산다. 축구에서 열한명의 팀워크가 서로 잘 맞아야 8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논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턴할 수 없는 경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면 최선의 팀워크로 한마음 한 뜻으로 경기에 임해야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되는 마음을 창조하라!” 그 길만이 유턴되지 않은 인생의 숙명을 진지하며 아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05) 무심/無心 무심(無心)이라 관심 없는 것이 무심일까? 무심이란? 능히 모자람이 없고, 소유함을 초월한 여여(如如)로움을 말한다. 무심은 끝없는 연민, 더 할 수 없는 연민을 말한다. 산이 높고 물(水)이 깊은 심산 유곡이 무심이다. 무심은 걸림이 없고, 시비가 없는 자유로움을 말한다. 무심은 제압 당하지 않는 철(鐵) 같고 돌(石) 같음을 말한다. 간절한 마음이 초월 한 곳, 하는 둥, 마는 둥은 무심이 아니다. 무심이란? “수도자의 무심경계, 무심삼매”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 사랑하는 마음에는 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상에는 늘 조건과 여건이 따르니, 사랑이란 이름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같은 독소의 상처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너와 나. 여기에 항상 문제가 따르는 것이다. 지나치지 않은 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평상심”이다. 며느리와 아들을 구별하고 차별하지 마라. 딸과 사위도 차별하지 마라. 저희들대로 그냥 살게 내버려 두라. 탐욕의 노예가 되면, 살아도 죽은 삶이다. 남을 괴롭게 하고, 내가 편할리 없다. 약자의 권익을 빼앗아 부를 축적한 사람은 업보(業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무심 경계는 성불을 오르는 사다리다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03) 행복의 조건 본래는 시작도 없고, 끝이 없는 것이 청정한 것도 없고, 오염될 것도 없는 것이 우리다. 내가 시작을 만들고 끝을 만든다. 생이 있어 죽음이 있는 세계다. 자동차를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그리고 교통사고를 만든다는 말이다. 본래 자동차가 있었고 도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생이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인은 인연이란 숙제다. 요구하는 많은 생각이 있기에 삶은 늘 괴로운 것이다. 마음을 바꾸면 업도 바꾸어 진다. 오늘에 만족할 줄 아는 안심입명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인연을 소중하게 보면 인연이 소중해진다. 인연을 천시하면 자신이 천하게 되어진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는 이치다. 공(空)은 무한 가능성이요! 무(無)는 무한 존재다. 공의 가능성은 무한하여 걸림이 없는 세계를 말한다. 무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도 평등한 조건 없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 먹고 사는 일 외엔 별다른 것이 있는가? 다만, 서로의 개념과 견해가 달라서 다툴 뿐이지 먹고사는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어리석은 탐심, 진심, 치심에 희생되지 마라. 불만족과 투정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 향기로운 사람(101) 무심/無心 무심(無心)이라 관심없는 것이 무심일까? 무심이란? 능히 모자람이 없고, 소유함을 초월한 여여(如如)로움을 말한다. 무심은 끝없는 연민, 더 할 수 없는 연민을 말한다. 산이 높고 물(水)이 깊은 심산 유곡이 무심이다. 무심은 걸림이 없고, 시비가 없는 자유로움을 말한다. 무심은 제압 당하지 않는 철(鐵) 같고 돌(石) 같음을 말한다. 간절한 마음이 초월한 곳, 하는 둥, 마는 둥은 무심이 아니다. 무심이란? “수도자의 무심경계, 무심삼매”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 사랑하는 마음에는 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상에는 늘 조건과 여건이 따르니, 사랑이란 이름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같은 독소의 상처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너와 나. 여기에 항상 문제가 따르는 것이다. 지나치지 않은 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평상심”이다. 며느리와 아들을 구별하고 차별하지 마라. 딸과 사위도 차별하지 마라. 저희들대로 그냥 살게 내버려둬라. 탐욕의 노예가 되면, 살아도 죽은 삶이다. 남을 괴롭게 하고, 내가 편할 리 없다. 약자의 권익을 빼앗아 부를 축적한 사람은 업보(業報)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무심 경계는 성불을 오르는 사다리다.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