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9 (화)

  • 맑음동두천 14.2℃
  • 맑음강릉 14.6℃
  • 맑음서울 15.3℃
  • 맑음대전 17.0℃
  • 맑음대구 20.0℃
  • 맑음울산 13.9℃
  • 맑음광주 16.6℃
  • 맑음부산 13.7℃
  • 맑음고창 13.0℃
  • 맑음제주 14.9℃
  • 맑음강화 12.7℃
  • 맑음보은 14.9℃
  • 맑음금산 16.1℃
  • 맑음강진군 15.2℃
  • 맑음경주시 14.6℃
  • 맑음거제 13.7℃
기상청 제공

권우상 칼럼 = 인간은 동물보다 고뇌를 견디기 힘들다

 

 

 

칼럼

 

 

         인간은 동물보다 고뇌를 견디기 힘들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내가 고교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온 장만의 시(詩)가 생각난다. “風波(풍파)에 놀란 沙工(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九折羊腸(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 後(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장만(張晩: 1566-1629)은 인조때 도원수를 지냈고 ‘이괄의 난’을 평정한 장군이다. 관직이 힘들어 뱃사공 노릇을 했지만 그것역시 거친 파도에 힘들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다. 지금도 도시의 삶이 힘들어 귀농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 봉양면에서 귀농한 20대 청년 농부 A씨가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는 유서를 통해 “내 인생은 그저 그 인간의 노예로 살아갈 뿐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고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꼭두각시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기가 힘들다”라고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사회가 과연 공정한가 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공정성 논란은 사회지도층이나 고위공직자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청년의 죽음으로 불공정 논란은 일부 농촌에도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공직자 자녀의 병역 특혜, 자녀의 법학전문대학 특혜 논란은 미국에서도 일어나지만 대부분 고위공직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의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한 사례를 보자. 웨스트 텍사스 엔드루스 고등학교 1학년생 켈리 스마트는 인기 있는 응원단이다. 뇌성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응원단으로서 켈리의 열정은 대단했다. 켈리는 2군 경기 때 사이드라인 쪽에서 미식축구 선수들과 관중을 열광케 했다. 그런데 일부 응원단과 학부모의 촉구로 학교 관계자는 켈리에게 이듬해 응원을 준비하면서 다른 단원들처럼 다리 일자 뻗기와 공중회전을 비롯해 체조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단원인데 켈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켈리의 어머니는 분노하면서 켈리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기 때문에 다른 단원처럼 다리 일자 뻗기와 공중회전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정성 여부이다.

 

켈리가 응원단으로서 자격을 갖추러면 반드시 체조를 해야 하는데 켈리는 장애인이라 체조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만일 켈리를 응원단으로 발탁하면 특혜라는 것이다. 하지만 켈리 부모는 이와 다른 주장으로 반박했다. 켈리가 장애인이라 체조는 할 수 없지만 선수들과 관중을 열광케 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만일 미국에서 한국의 고위공직자 아들의 병역 특혜나 법학전문대학 입학 특혜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미국인들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백인 여성인 홉우드는 텍사스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원서를 냈다. 그러나 학업 평균적성시험(LSAT)도 그런대로 잘 보았는데(백분위 83점) 떨어졌다. 합격생 중에는 홉우드 보다 대학 성적은 물론이고 입학시험 점수도 낮은 흑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도 있었다. 학교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소수집단우대정책(affirmative avtion)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대학 성적과 입학점수가 흡우드와 비슷한 소수집단 학생들은 전원 합격했다. 흡우드는 불공정하다면서 연방법원에 소송을 내면서 자신은 차별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제목으로 책도 출판됐다. 특히 불공정 문제로 백인과 소수인종간의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이렇게 되자 미국에서는 소수집단정책을 인종이 아니라 계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유대적 활당제도 역시 불공정 시비로 논란 꺼리였다.

 

스스로 노력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폐해를 가해 이득을 얻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야만적이다. 어떤 사람도 행복한 삶이란 없으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생존이란 고작 영웅적인 생애이다. 부자든 빈자든 인생에는 늘 고뇌(苦惱)가 따른다. 그러나 인간의 고뇌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반면 동물의 고뇌는 거의 인간이 주는 것이다. “동물의 고뇌는 현상의 세계에서 ‘살려는 의지’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며, 이것은 배고파 허덕이는 의지이므로 살덩어리를 삼키는 도리 밖에 없다. 그러므로 동물이 인간보다 고뇌를 견디는 힘이 훨씬 미약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탐욕은 그 처음이 어딘가도 모르며 그 끝도 아득하다. 문제는 탐욕의 그물을 타인에게 던져서 얻은 이익으로 살면서 그것이 탐욕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자기 본위로 살려는 의지도 항상 다투어 경쟁하려 하고 또한 마음을 밝히려는 공부는 하지 않고 하찮은 지식으로써 자기 만족의 울타리를 쌓아 놓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사는 사람은 악마가 누리는 쾌락일지는 모르지만 청정하고 무구한 삶의 경지를 누리는 인간의 삶은 될 수 없다. 이 나라가 언제쯤 갑질이라는 모피를 벗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지 궁금하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