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9기 출범을 앞두고 구미시가 시민 정책제안 접수를 시작했다. 시민의 지혜와 아이디어를 시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환영받을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 제안되더라도 이를 실행할 조직과 인적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민선 9기의 성공은 새로운 정책보다 먼저 새로운 사람을 세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구미시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과감한 인적 쇄신이다. 예로부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물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고인 물은 결국 썩는다. 흐름이 멈춘 곳에서는 생명력이 사라지고 변화와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성과 능력보다 선거 공로나 정치적 인연이 우선되는 조직은 활력을 잃게 된다. 시민을 위한 행정보다 특정 권력에 대한 충성도가 우선되는 인사 관행이 계속된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새로운 인재가 성장할 공간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뿌리내릴 토양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산생태공원의 악취 문제 역시 물이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치열했던 6·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선거 기간 동안 후보들은 저마다의 비전과 정책을 내세우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은 승패를 떠나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고,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선거는 전쟁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민주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일부 관변단체와 사설 협회, 각종 연합회가 특정 후보를 위한 선거조직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래 이러한 단체들은 회원들의 권익 보호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특정 정치세력이나 특정 후보를 위한 선거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구미지역의 한 협회에서는 과거 협회장을 지낸 인물이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현직 협회장이 회원들에게 선거 후원금을 보내도록 독려했다는 사실이 구미일보 취재결과 일부가 드러났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행위 자체가 지역사회에 잘못된 정치문화를 심어줄
새벽 안개가 금오산 능선을 감싸는 시간, 한 남자가 묵묵히 산길을 오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오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에게 금오산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다. 그곳은 억울함을 삼키는 장소이며, 무너진 자존심을 붙드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20년간 구미시청 씨름단을 이끌었던 김 감독. 구미 씨름의 산증인이자 지역 체육의 전설로 불렸던 그는 민선 8기 출범 이후 임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감독직 사퇴를 요구받았다. 그것도 정식 대화나 예우가 아닌 퇴임 20일 전 전화 한 통, 7일전 ‘내용증명’ 한 장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 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종이 한 장은 너무 차가운 이별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선수들과 땀 흘리며 전국 대회를 누볐고, 구미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젊음을 바쳤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를 기다린 것은 감사도, 존중도 아니었다. 퇴직금 2,700만 원. 국민연금 월 66만 원. 그 숫자만 놓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더 가슴 아픈 장면은 따로 있었다. KBS가 마련한 퇴임식 자리. 그 오랜 세월 지역 체육을 위해 헌신했던 감독의 마지막 길에 정작
지방자치는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언론의 감시 속에서 성장해왔다. 행정 권력이 비판을 불편하게 여기고, 지역언론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우습게 여긴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전제적 행정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특히 구미와 같은 지방도시는 지역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중앙언론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생활 민원, 예산 낭비, 인사 문제, 지역 갈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하고 감시하는 것이 바로 지역신문과 주간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지역신문은 광고를 주지 않으면 결국 사라진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낸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언론을 시민의 공적 감시기구가 아닌 ‘광고 의존 구조’로만 바라보는 매우 위험한 시각이다. 더욱이 시정 홍보비는 시장 개인의 사비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이다. 따라서 특정 언론의 입맛에 따라 선택적으로 배분될 문제가 아니라, 구미 시민 모두가 공정한 정보 전달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광고 예산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발상은 지방자치의 건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언론은 권력의 홍보지가 아니라 시민의 눈과 귀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역언론을 폄훼하는 후보라면, 과연 시민 통합과
구미시의 주차단속은 평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말과 주일, 공휴일에도 단속 차량은 어김없이 거리를 누빈다. 시민들은 묻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단속인가. 시민 안전을 위한 행정인가, 아니면 세금을 걷기 위한 행정인가. 특히 구미 롯데마트 앞 일대는 왕복 통행이 가능한 2면 도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주말이면 가족 단위 시민들이 쇼핑과 문화공간 이용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잠시 정차한 차량까지 무차별적으로 단속 대상이 되면서 시민들의 불만과 피로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불법주정차 문제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소방도로 확보와 교통 흐름 유지라는 공익적 목적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행정은 단속의 명분보다 ‘과도함’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시민 편의와 현실 여건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주차 공간은 부족한데 단속만 강화된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주말과 공휴일은 가족 외출과 지역 상권 이용이 집중되는 시간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말하면서 정작 시민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은 단속 이전에 대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공영주차
최근 장세용 구미시장(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씁쓸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장 후보의 발언 핵심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결국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는 역사적 설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부 정치세력은 전체 맥락은 제거한 채 특정 표현만 부각시키며 전혀 다른 의미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김장호 구미시장(국민의힘) 후보 측은 기자회견과 규탄대회까지 열어서 이번 논란을 정치적 프레임 대결 구도로 키우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보다 시민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갈등과 양극화를 확대시키는 모습은 매우 우려스럽다. 정치적 비판은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 발언사실과 같은 맥락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상대의 말을 일부만 잘라내고 “망언”, “역사 왜곡” 같은 자극적 단어를 반복하며 시민 분노를 유도하는 방식은 건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치가 결국 지역사회를 둘로 갈라놓는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경제와 민생, 일자리와 미래 산업을 이야기해주길 원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 인물을 둘러싼 감정 대립에 기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미 정치권에서 또다시 ‘뜨내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후보가 상대를 향해 던진 이 표현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구미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선택을 흔드는 위험한 인식이다. 우리는 이미 한 가지 분명한 사례를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구미을)을 지낸 장석춘 국회의원이다. 그는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이후 LG전자에 노동자로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구미을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선택받았다. 만약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그는 과연 “자격 있는 후보”였는가. 출신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는 처음부터 배제되어야 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미 시민의 선택은 달랐다. 사람의 이력과 능력, 그리고 책임을 보고 판단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정치는 출신 경쟁이 아니라, 책임 경쟁이다. 구미는 도농복합도시이자 산업단지 도시다. 수많은 외지 인구(약60~65%)가 유입되어 지금의 구미를 만들었다. 더군다나 진미, 인동, 양포동은 80%에 달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구의 상당수가 타지역 출신이라는 현실 속에서 ‘뜨
박정희 대통령을 단순히 ‘보수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것은 편의적 해석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념보다 성과를 앞세운 실용주의자였고, 필요하다면 체제와 방법을 가리지 않은 혁명가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 중심 정책은 시장에만 맡긴 결과가 아니다. 국가는 강하게 개입했고 방향을 설계했다. 여기에 새마을운동이 더해지며 한국은 가난을 벗어나 부국강병의 길로 빠르게 나아갔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경제를 설계하고 밀어붙인 경제 전략가였다. 이 방식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작은 정부’와는 거리가 있다. 당시 현실에 맞춘 국가주도형 발전 전략, 즉 목표 지향적 실용주의였다. 정치적으로도 박정희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지키는 데 머물지 않았다. 스스로 질서를 뒤흔들고 재편했다. 군사 쿠데타와 헌정 질서의 변화는 ‘안정’이 아닌 ‘변화’를 택한 결과였다. 구미 시민이 박정희 대통령을 보수의 상징으로 결집하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선거 때마다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을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정 진영의 상징으로 고정되는 순간, 그의 본질은 흐려진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의 틀로 가둘 수 없는 인물이다. 시대를 밀어붙인 실용주의
언론은 왜 존재하는가.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의 이익을 지키며, 시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이 원칙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흔들릴 수 없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일본에서는 언론의 집요한 검증과 보도가 결국 총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대표적 사례가 있다. 2007년 아베 신조 1차 내각 당시, 정치자금 스캔들과 각료들의 잇따른 부적절한 행위가 언론을 통해 연속적으로 폭로됐다. 특히 연금 기록 누락 문제와 정치자금 의혹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언론은 이를 끈질기게 추적·보도했다. 그 결과 지지율은 급락했고, 결국 총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임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언론의 감시와 국민 여론이 결합해 권력에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데 최근 구미 지역에서 모시장 후보가 “지역 언론은 필요 없다” 며 "시민 A모씨가 인스타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올리면 다 홍보된다." 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적 표현을 넘어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은 중앙 언론이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현장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지역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구미시, 김천시, 경산시, 울릉군 등 4개 지역의 시장·군수 후보를 단수공천으로 확정하고, 일부 도의원 선거구에서는 책임당원만(기존에는 일반시민과 일반당원을 포함한 방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이미 경선을 마치고 후보자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공천은 정당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그 권한은 어디까지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갖는다. 특정 지역을 단수공천으로 묶고, 경선 방식마저 제한적으로 운영했다면 이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공정성’을 희생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기에 충분하다. 특히 도의원 경선에서 일반 시민이 아닌 책임당원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후보자를 확정한 방식은 대표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는 특정 정당의 내부 행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의 삶과 직결된 공적 과정이다. 그럼에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일반 유권자의 의사가 배제된다면, 이는 곧 민심과 괴리된 후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예비후보들의 반발 역시 단순한 ‘불만’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일정한 기준과 경쟁을
6월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대구·경북의 공천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공약들. 그러나 이제 유권자들은 묻고 있다. “그 약속, 과연 지킬 수 있는가”라고.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실행이다. 재원과 일정, 추진 방법이 담긴 실천 가능한 공약, 이른바 메니페스토가 아닌 공약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듣기 좋은 말로 채워진 빈 공약은 지역 발전이 아니라 또 다른 실망만 남길 뿐이다. 대구·경북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약속’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반복되는 네거티브 선거 역시 사라져야 할 구태다. 상대 후보의 흠집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하는 정치로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 대구·경북에 필요한 것은 비방이 아니라 비전이며, 공격이 아니라 해법이다. 선거철만 되면 SNS를 가득 채우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유권자 앞에 서지만, 당선 이후 고개를 들고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 또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군림이 아니라 봉사이며,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한편, 후보자의 인성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지,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지와
한때 밤이 깊어도 불빛이 꺼지지 않던 산업도시 구미. 공장의 굴뚝에서는 쉼 없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연기는 곧 성장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조용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연기는 옅어졌고, 그 자리를 불안과 침묵이 대신하고 있다. 최근 4년간 구미상공회의소 경제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이 변화는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흐름임이 분명해진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제조업 가동률은 60%대 후반에서 70% 초반 수준에 머물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기에는 60%대 중반까지 하락하며 ‘정상 가동’이라 보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진다. 생산 역시 업종별 편차 속에 감소 구간이 반복되며 산업 기반의 체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용 지표는 더 냉정하다. 산업단지 고용은 2022년 약 8만5천 명 수준에서 2024년 약 8만1천500명 수준으로 줄었고, 전체 취업자 수도 완만한 감소세를 보인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도시 구조를 감안하면, 이 감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공단 곳곳에 붙은 ‘임대’ 현수막은 경기의 일시적 위축이 아니라, 생태계 연결이 느슨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