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北外 ‘백년 천년 지나도 핵 포기는 없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칼럼 권력은 功을 세웠을 때 떠나는 것이 天命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이 세상의 넓은 지상에는 인간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보편적인 체계와 기술의 총애인 문명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장소가 없었다. 옛 중국의 거대한 대륙도 그런 장소중의 하나였다.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산다. 문명이란 다양한 생활양식을 가진 여러 민족에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한 장소에서 녹여 내는 조건이 갖추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중국 대륙의 경우는 그랬다. 물론 거대한 용광로는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기반으로 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후대에 갈수록 문화의 균일성이 높아지면서 지적 호기심이 약해진다. 진(秦)의 시황제 정(政)이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그 전까지는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활되어 있었다. 하지만 6개국의 백성들에게는 통일이 오히려 참혹한 삶이 되었다. 진(秦) 제국의 가혹한 법치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진(秦)의 법치주의는 백성을 위한 법치가 아니라, 진시황 자신을 위한 법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북한의 김정은이 진시황에 비교괴고, 옛날로 말하면 북한 김정은이 진시황에 비교된다. 한 마디로 진시황의 말 한 마디
역사는 단순한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한 공동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자, 그 사회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뼈대다. 그렇기에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는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유영하 의원을 통해 부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52년 전 친필 편지를 공개하며 던진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편지를 건네며 언급된 조지 오웰의 경고, 즉 “한 민족을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과거를 부정하고 뭉개는 것이다”라는 일갈은 작금의 역사 인식 논란을 깊이 되돌아보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나 편향된 시각에 따라 과거의 사실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거나 폄훼하려는 시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부적인 평가와 해석은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을지언정, 사실 그 자체를 왜곡하고 기록을 깎아내리는 것은 공동체의 기억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행위다. 조지 오웰이 경고했듯, 권력이나 집단적 편견이 기억을 통제하고 역사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그 사회는 내부로부터 무너질
칼럼 歷史는 事實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지난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당시 찬성하는 정부와 여당측은 ㅇ 하나의 사건에 대해 모두 다른 서술을 하고 있다. ㅇ 일부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쪽만 서술하는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한국 진보좌파 세력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과 진보세력 측은 ㅇ 국정교과서 체제에 의한 역사교육은 구시대(유신시대)의 유물이다. ㅇ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2003년 역사 교과서 검정제도를 도입한 명분은 다양한 교과서의 경쟁을 통해 교과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는 여러 갈래의 관점을 보여주자
일본 경제학자 마키노 노보루는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GDP에서 제조업 비중이 20% 아래로 내려가면 국가경쟁력이 쇠퇴한다." 대한민국은 60년대부터 제조업 중심 수출주도형 성장을 선택했습니다. 의류·봉제에서 시작해 철강·조선·전자산업으로 이어진 그 길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자원이 풍부했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들은 내수 위주를 선택했고, 결과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제조업이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혁신의 원천입니다. 대규모 R&D 투자와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이 제조업에서 나옵니다. 일자리 창출입니다. 공장 하나가 소재·부품·물류·금융·소프트웨어까지 광범위한 생태계를 만듭니다. 전후방 연관효과입니다.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소재·장비·전력·정밀기계·화학·물류가 함께 성장합니다. 지금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제조업 르네상스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미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제조업이 영원한 한, 구미의 가능성도 영원합니다.
칼럼 암살자들’ 영화/드라마 역사왜곡 무엇이 문제인가?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빠지자 제작진 측은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하면서 제작진은 그러한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의 자녀 어린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하다가 성인이 되자 결혼을 한다는 시놉시스의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때도 작품의 창작산물로 봐 달라고 하겠는가? 영화, 드라마, 연극, 소설 등 모든 작품이 창작물이라고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천민적인 발상이다. 역사 왜곡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bs 역사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경우 출항하자 마자 암초에 부딪치면서 방영이 폐지된 적이 있었다. 문제가 된 핵심은 이렇다. ㅇ중국 역사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등장 인물의 검(劍)과 의상 및 머리 스타일이다. ㅇ퓨전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음식들 즉 중국 월병, 오리알이나 달걀을 삭힌 피단(송화단) 그리고 중국 술이 나온다. ㅇ조
칼럼 북한과 동등하게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
칼럼 두 개의 음낭이 있으니 송(宋)자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벙어리 아내와 장님 남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대문 밖이 소란스러워 눈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을 수 남편이 아내에게 손짓하여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가보라고 했다. 벙어리 아내가 대문 밖에 나가보고 와서 손짓과 몸짓으로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끌고 와 자기 유방 사이에다 ‘사람 인(人)자’를 써 보였다.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 사람 인자 양 옆에 젖꼭지 두 점이 있으니 불 화(火)가 되는구먼, 그러니까 불이 난 모양인데 어디에서 불이 났지?“ 하고 다시 물었다. 아내가 손을 끌고 가서 자기의 사타구니 옥문(玉門)에다 갖다 댔다. 남편은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아, 그곳은 항상 습한 곳이니 저 건너 이동(젖을니 泥洞)에서 불이 났나 보구만.“ 이렇게 짐작으로 말했다. 이어서 남편은 아내에게 누구의 집에서 불이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의 입을 남편 입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이런 몸짓을 보고는 허허허! 웃으며 ”그렇지, 두 입이 합쳐진 글자라면 여(呂)서방 집이구먼, 그런데 그 집에 불이 났으
모처럼 추석 인사를 드리러 아침 일찍 중앙시장을 찾았습니다. 장사가 시작되기 전, 그 고요한 시간에 가야 상인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명절 대목인데도 주 진입도로가 막혀 있어 상인들의 한숨이 깊었습니다. 추석 열흘만이라도 가로막을 한시적으로 열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관계 기관에서 방법을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늘 중앙시장에서 마주쳤던 분이었습니다. 반갑게 꼭 안았습니다.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의 아픔이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 같았고, 할머니도 저도 또 새로운 힘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앙시장은 늘 첫 번째로 달려가던 곳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시장이 쇠퇴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입니다. 시장에 가면 수십 년 만에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꿈과 낭만을 그려볼 수도 있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일으킬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중앙시장이 다시 살아나길 바랍니다. 시장 내부의 현대화와 동선 최적화, 전문상가 특화거리 조성으로 시
청와대 감찰팀이 부른 날 예타 발표가 있은 지 얼마 후 청와대 내부 감찰팀에서 보자고 했다. “특정 지역에 편파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 보고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감찰팀에 사업의 정당성을 소명하고 돌아왔다. 바로 구미로 전화를 했다. “H과장님, 저하고 했던 모든 일은 앞으로 시장님께만 직보해 주시고, 사업이 구미 자체의 역량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해 주십시오.” H과장이 끝까지 지켜준 비밀 그 H과장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 당부를 지켜주었다. 덕분에 필자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중소도시인 구미로 모바일융합기술센터구축사업(2009년, 1,033억 원), 전자의료기기 부품소재 산업화 기반구축(2010년, 1,377억 원), 3D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실용화 지원센터(2011년, 309억 원) 등 약 3,000억 원 규모의 사업이 결정되었다. 1,000억 원 이상의 국가 예타 사업이 구미에 2년 연속 배정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젊음과 열정이 있었던 시절 당시에는 필자 자신의 운명보다, 구미가 공동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속도를 늦추고 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구미시 공무원, 금오
칼럼 삶에 조건이 복잡할수록 신중하게 판단해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아동문학가 산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는 배가 고파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 여우를 만났다. “이 녀석, 마침 잘 만났다. 배가 고파 견디기 어렵던 참인데 너를 만났으니 잘됐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말은 애당초 하지도 마시요. 산속의 짐승들은 모두 나를 왕으로 모시고 있소. 내가 죽는 건 조금도 서러울 게 없소만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산짐승들이 점차 소멸하고 말텐데, 당신이 지금 당장의 시장기는 면할지 몰라도 앞으로 쥐새끼 한 마리도 없을텐데, 뭘 먹고 살아나가겠소?“ ”한 입에도 차지 않을 녀석이 무슨 위풍이 있다고 모든 짐승들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왕으로 섬긴 단 말이냐?“ ”나는 태어나서부터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소, 그래 정 믿어지지 않으면 내 뒤를 따라와 보시오. 내가 정말 산속의 왕이라면 잡아 먹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잡아 먹어도 좋소“ 여우가 앞에서 촐랑대며 뛰어가니 호랑이는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여우는 참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뛰어 갔다. 한참 입맛을 다시며 참나무 잎을
디스플레이·휴대폰 이후, 구미의 다음 먹거리는 신평동 금오공대 부지를 구미시가 사용 권한을 이양받음에 따라 ㄷ자 건물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이 되었다. 이미 2009년 9월 지식경제부 사업으로 모바일융합기술기반구축사업(1,033억 원)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이 사업은 구미의 기존 휴대폰·모바일 산업을 고도화하고 시험·인증·R&D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삼성 휴대폰이 베트남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그 효과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떠난 디스플레이·휴대폰 이후 구미의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구미가 전자산업에 강점이 있고, 고령화 시대에 의료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전자의료 분야를 국책과제로 추진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건이 안 됩니다” - 그래도 해봅시다 결심이 서자 바로 투자통상과 H과장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당시 구미에는 전자의료 분야 회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ㄷ자 건물에 연구시설을 집적화해야 하는데 구미시는 재원이 없어 무조건 지식경제부 국책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부지와 건물이 있으니 과제만 잘 기획하면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