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작가의 역량과 소설 표절 문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소설가 신경숙이 자신의 1996년작 단편 '전설'의 표절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 만에 직접 입을 열었다고 하면서 그동안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우국'을 알지도 못한다면서 표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던 신경숙 작가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상 표절을 인정했다고 한다. 처음 표절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는 ‘우국’을 읽은 적도 없다고 하더니 결국 실토한 것인데 이런 부정직한 태도는 문학인으로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신경숙 작가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한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출판사와 상의해 '전설'을 작품집에서 뺄 것"이라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 문학인들을 비롯해 많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을 할 수 없는데 문학은 내게 목숨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표절 문제는 신경숙 소설가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논문 표절 논란도 대학교수들 사이에서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장관 청문회에서도 논문 표절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표절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건 한 마디로 말해 본인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하지 않는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노력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나 투자없이 쉽게 목적을 성취할려는 욕망이 표절이란 불경죄로 유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설가는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절대로 뛰어난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고 멋진 대화나 장면이 나오면 그것을 인용하고 싶은 마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절대로 남의 소설로 공부를 하지말고 모든 분야,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천문, 지리, 생물, 의학, 종교, 철학, 심리, 외국어 등 다양하게 많은 책을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자나깨나 공부를 해서 ‘만물 박사’란 말을 들을 만큼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분야에 걸쳐 전문지식을 쌓아서 소설을 쓰야 멋진 장면도 묘사할 수 있고 감동적인 대화도 나온다.
필자는 그렇게 공부를 한다. 필자의 단편소설 중에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가 있다. <부산문학> <청옥문학> 등에 발표한 소설인데 이 단편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징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공부를 수개월동안 했다. 대장간을 직접 방문해서 제작 과정을 보면 작업중에 사용하는 전문 용어가 한 두 개가 아니다. <댄잽이> <풀무질> <냄질> <우개리> <센밑돌> <손메> <싸개질> <가질통. 둥글통> <담금질> <초잽이> <갈고리> <바디기> <뉘핌질> <메질> <센메> <전메> <앞메> <앞메꾼> <도레미> <집게> 등 수없이 많다. 신경숙 소설에 이와 같은 전문지식을 터득해서 쓴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전통 악기 징이 얼마나 눈물겨웁게 제작되는가를 알릴려고 쓴 소설이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다.
다양한 소재의 소설을 쓰자면 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메디칼 소설을 쓸려면 병원에서 수술 장면을 직접 보면서 의학 공부도 해야 한다. 작품을 집필하기 전에는 이런 ‘헌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의 소설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가 발표되자 한 독자가 전화로 혹시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징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어떻게 징 만드는 과정을 그리도 세세하게 아느냐고 했다. 연극배우 추송웅 씨는 거지 역할을 하기 위해 며칠동안 거지와 함께 실제로 생활을 했다는 말도 있다.
표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작가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고 남의 소설을 통해(읽고) 쉽게 소설을 쓸려고 하다보니 감동적인 장면이나 대화를 만나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필자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웨밍웨이의 <바다와 노인>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과 같은 영혼을 흔드는 세계적인 명작이 아니면 읽지 않는다. 표절을 한 작가의 객기처럼 가볍게 넘기는 한국 문단에 일대 혁신적인 개혁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