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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부산mbc 제2회 방송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수상작 권우상 作 (제3회)

 

 

 

 

부산mbc 제2회 방송작품현상공모 단편소설 수상작 권우상 作 (제3회)

 

 

                           재심청구(再審請求)

 

 

새로 나타난 암벽을 피하여 약간 꾸불하게 파들어 갔다. 뱀(巳)이 지나간 흔적처럼 광맥이 점점 좁아지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줄기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으로 널찍히 곽삽으로 쌓여진 광석을 퍼서 바닥에 깔아 놓은 철판 위로 옮겨 놓았다. 이젠 속 내의에 땀이 젖어 축축해 왔다. 레일을 긁히는 광차의 쇠바퀴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최 노인이 몰고 나가 광차가 들어오는 성 깊었다. 안전등의 불빛 줄기가 점점 가까워 왔다. 재성이의 안전모 불빛은 최 노인이 몰고 오는 광차쪽을 비추었고 저쪽 불빛은 재성이 앞으로 닥아 왔다. 광석 가루에 범벅이 된 재성이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려 검은 판대기에 물자리가 패이고 두 눈알만이 광채를 띠고 있었다.

재성이는 삽을 놓고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광차 옆으로 발을 옮겨 놓았다. 쩍 벌어진 어깨 위에 걸쳐진 작업복은 본바탕 제빛을 알아 볼 자취도 없이 불빛에 반사되어 까맣게 반들반들 했고, 목에 감은 천조각도 까맣게 변했다. 재성이는 광차를 이끌어서 레일 끝쪽까지 당겨 놓고 곽삽을 들어 광석을 퍼담기 시작했다. 최 노인은 광석 무더기 위에 몸뚱이를 거의 내던지듯이 주저 않으면서 눈에 죄어드는 땀을 닦았다.

“담배나 한 대씩 피우고 합세.”

최 노인의 말이었다.

“붙든 참에 실어 놓고 쉴랍니다.”

“자, 그만 두고 오세. 있다가 같이 퍼담지.”

“........”

“오라니까....”

제성이는 곽삽을 광차에 걸쳐 놓고 최노인 옆에 와 앉았다. 제성이는 담배 한 대를 붙여 물었다. 길게 빨아 들이킨 연기는 송두리째 삼켰다가 큰 숨에 썩여 부옇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가슴속이 후련해 오는 것 같았다.

“왜 접때 철도 공안원 시험 치러 서울에 갔다 온건 어째 됐누? 아직 발표 안났나?”

“오늘이 발표 날인데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합격자에 한 해 집으로 개별 통지해 준다고 했는데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통지가 안 오면 못붙은 것이겠지요.”

재성이는 벌써 허기가 찬듯한 최 노인의 말에는 얼굴은 돌리지 않고 말대꾸나 하면서도 자기가 어지간히 배가 고파옴을 느꼈다.

“으음.. 오늘이 발표 날이라...그럼 통지가 오면 이 광산에서 두더지 노릇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구만..”

“그렇지만 불합격 하면 이 광산에서 두더지 노릇을 더 해야죠. 언제까지 계속될지..”“십년을 두더지 생활 해 먹어도 맨날 이 꼴이니... 어디 젊은 사람들이 해 먹을 짓이 되는가.. 한 달 먹을 양식만 있어도 이 지랄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네만.. 간주(월급)도 벌써 두달 식이나 밀리구 이래 기지구서야 어찌 이놈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겠나 으흠...”

재성이는 큰 기침을 하면서 가래덩이를 탁 내 뱉었다. 요즘 들어 가래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니 아마 폐가 좋지 않은 듯 싶었다. 그러나 아직 몸에는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어 그대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험에 못 붙어도 간주만 나오면 떠날 참입니다.”

“언제 떠날려고?”

“간주가 나오는 걸 봐 가면서요..”“그참 잘 생각했네.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야 어딜 가면 못 먹고 살라구...

나 같은 늙은이야 벌어 놓은 돈이 없으니 죽지 못해 이런 짓을 하지만...”

최 노인은 눈을 가늘게 감으면서 등을 광벽에 기대었다. 광부생활에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 광부생활에 어느 누구 보다고 환멸과 권태를 느낀 사람은 재성이었다. 재성이는 자신이 이런 광산에 처박혀 청춘을 보내고 있는 것이 몹시 따분했다. 젊은이는 정말 오래 할 짓은 못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간주(월급) 때가 되어 돈이 손에 들어 오면 돼지를 잡아 그 고기를 술안주로 쟁반에 수북히 담아 놓고 술을 진탕하시고는 자기들끼리 사소한 말다툼을 벌리다가 급기야는 먹살을 잡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 났느니 다투는 모습이 이들 광부들의 삶의 전부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적어도 재성이가 보기는 이곳 광부들의 생활이 그러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내일이 없는 오늘만 있는 삶이었다. 그것이 재성이를 이 광산촌을 더욱 떠나도록 했다고 할까.. 아무리 인생이 제멋에 산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구 보다도 이 광산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재성이었다. 직업이란 처음부터 발걸음을 잘 딛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재성이는 이 광산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직업은 한번 발을 들어 놓으면 웬만헤서는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을 재성이는 잘 알고 있었다. 광산이야 말로 젊은이들은 정말이지 들어 올 곳이 못 된다고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한달 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철도 공안원 시험에 응시했던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은 최 노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어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재성이로서는 이런 짓을 할 이유도 없을 것만 같았다. 다만 아버지가 광산에 들어 와 일을 하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최 노인은 늘그막에 이런 광부 노릇을 하게 된 것도

“다 운이야 운!”

하고 만사를 운명에 돌리고 체념을 곱씹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못 하고도 다 운이겠구만요?”

하는 재성이의 말에 최 노인은

“그렇지, 다 운이지 운이야..”

최 노인의 운명론은 더욱 잦게 되풀이 되었다. 재성이는 머리에서 떼어 놓았던 안전등을 화이바모에 다시 꽂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혹시 합격 통지서가 와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합격되면 자넨 좋겠구만.. 이런 광산에서 두더지 노릇을 면하게 되어서..”

최 노인은 일어나 곽삽을 들고 광석을 광차에 퍼 담았다. 재성이도 말 없이 광차에 광석을 퍼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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