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1부 서른 번째회 (30)
봉이 김선달
“ 그럼 선비들은 이곳에서 내가 하는 짓이나 보고 있구려. 선비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저 처녀의 은밀한 곳을 보여 줄테니...”
봉이 김선달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물을 다 긷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려는 처녀를 급히 부르며 다가 갔다.
“ 여보시오 처녀! ”
봉이 김선달이 부르는 소리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려던 처녀는 손을 멈추고 무슨 일이냐는 듯 김선달金先達을 바라 보았다.
“ 흥. 시치미를 떼도 소용이 없다. 잔소리 말고 어서 가자 ! ”
낯선 사나이의 입에서 떨어진 호통은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것이었다.
“ 네? ”
처녀는 얼굴이 빨갛게 변하면서 가냘픈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 흥. 네가 시치미를 뗀다고 모를 줄 아느냐? 벌써 너 같은 것들을 내 손으로 수십 명이나 잡아 봐서 얼굴 생김새만 봐도 훤히 안다. 자. 괜시리 망신 당하지 말고 어서 썩 따라 나서라 ! ”
추상 같은 호령이었다. 도대체 이 사나이는 누구길래 이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지 처녀는 기가 막혔다.
“ 아니 댁은 누구시온데 그런 말씀을 하시오이까? ”
처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 허허.. 이런 무례한 일을 봤나... 네가 이토록 방자스러우니 그것이 둘일 수 밖에 없지. 자 똑똑히 내 말을 들어 보아라! 나로 말하면 한양에서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내려온 포도대장이다. 너와 같은 여자들을 지체 없이 잡아 들이라는 어명이시다! 자. 어서 나서라. 가보면 알 것이다 ”
처녀는 김선달의 말을 들을수록 어안이 벙벙하고 기가 막혔다. 도대체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포도청에서 잡으러 왔단 말인가.
처녀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김선달의 얼굴을 바라보며 저만큼 떨어진 뒤쪽에서 역시 세 명의 사나이들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포도청에서 나온 포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포도대장이 아니라 상감마마께서 직접 나오셨다 하더라도 없는 죄가 생겨날 리는 없는 것이다.
“ 도대체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자는 말씀이 옵니까 ? ”
처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런 산골에서 자라나 문밖 출입이라고는 이 옹달샘으로 물 길러 오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지 모두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래. 네가 네 죄를 분명 모르겠느냐? ”
김선달은 속으로는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 건방지고 교활한 선비들을 골탕 먹이려면 이만한 연극은 할 수 밖에 없었다.
“ 소녀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흐흐흑... ”
처녀의 청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샘물보다 맑은 눈물이 옷깃에 뚝뚝 떨어졌다.
“ 내가 보기에는 좀 딱하다마는 그냥 놓아 주면 포도대장인 내 목이 달아날 판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자. 가보면 네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게 아니냐 ? ”
봉이 김선달이 사뭇 동정적인 말을 하자 마음이 여린 처녀는 더욱 울음이 북받쳤다.
“ 가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만 무슨 죄인지 알고나 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
“ 정말 모르겠느냐? ”
“ 모릅니다 ! ”
“ 그럼 할 수 없지. 내가 기어코 말을 해야될 모양이구나. 지금 나라에서는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로 보문陰門이 둘 달린 여자는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어명을 내려졌다. 짐승이 아닌 사람의 몸으로 보문陰門이 둘이나 달릴 수 없는 일인즉 이런 처녀들은 국법으로 죄를 다스릴려고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알겠느냐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