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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불교에서 열반경의 말씀

 

 

 

 

칼럼

 

 

                               불교에서 열반경의 말씀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의 마음은 허공처럼 커서 마음에 허공을 품는다고 하여 마음에 아무런 걸리는 일이 없으면 협소한 잠자리라도 널찍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대궐같은 호화주택도 협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다 ‘한 생각 사이’에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일념 삼천으로 한 생각에 삼천법계가 구족되어 있으며, 한 생각 사이로 육도윤회가 들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 불교는 첫째로 실천이요, 둘째도 실천이다. 누가 대신 일러줄 수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자기 스스로 맛을 보고 맛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거수 일투족에서 그런 믿음이 떠나지 않아야 진정한 불심이고, 믿음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인간이 주재하는 것으로, 마음이 바로 관념이며. 관념을 바꾸면 운명도 따라서 바뀌게 된다. 한 생각 사이에 콩쥐가 팥쥐로 바뀌고 한 생각 사이에 어리석음이 질투와 미움으로 남을 해치고, 한 생각으로 불량배의 마음이 바로 드러나게 된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한 생각으로 성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되고 남을 위하는 발심의 한 생각으로 공덕이 무량하다.

 

역사를 보면 ‘한 생각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바꾸어 사용하게 하였다. 홍문연(鴻門宴)에서 항우가 한 생각 차이가 없었더라면 한나라의 천하통일은 없었을 것이며, 만일 당시 제갈량이 한 생각 차이가 없었다면 마속(馬謖)의 목을 잘라야 하는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한 생각 사이에 황급히 자기의 일생을 결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물의 탐욕에 도취되어 나쁜 마음을 먹은 범죄자들도 단지 ‘한 생각 사이’로 재물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앞길을 망치고 남을 다치게 하여 세상에 영원히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구름과 같아, 높이 올라갔다 낮게 내려 왔다를 조절하는 스위치와도 같고, 인간은 마음 하나에 문이 두 개가 있다. 한 생각으로 깨달으면 몸과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고, 해탈하여 자유롭고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러나 생각에 미혹이 생기면 늪에 빠진 듯 벗어나지 못하고 풍랑을 일으켜서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마음은 떠다니는 안개와 같아 몽땅 놓아야 하고, 몽땅 맡겨야 한다.

 

인간은 각자 마음 내기 이전이 생명의 근원이다. 달리 말하면 불성이라고 하는데, 그 생명의 근본이 있기에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도, 이 살림살이라는 것도 다 이 생명의 근본 즉 불성이 있어서 불성으로 인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기가 오니까 불을 켤 수 있고, 모터도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부처, 본래의 자성불이 있기에 마음을 내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놓아라, 맡겨라 하는 말은 어느 누구한테 맡긴 다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과정이요, 방편이다. 우리는 무상함을 세간 바깥으로 초월시켜서 영원한 진여법계(眞如法界)로 할 수 있다. “이 목숨은 짧고 짧으니 부지런히 힘써라. 이 세상은 실로 덧 없는 것, 미혹하여 어두운 곳에 떨어지지 말라. 마땅히 배워서 마음을 지키고 스스로 닦아 지혜를 구하라. 번뇌의 때를 벗고 지혜의 촛불을 잡고 길을 보라” (수행본기경). 사찰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몸으로는 절하고 입으로는 염(念)하고, 마음으로는 관(觀)을 해야 하는데, 이 삼업(三業)으로 불심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게 된다는 것이 불가의 말이다. 생명에는 전생이 있고, 금생이 있으며, 미래가 있어서 “전생으로 인해서 금생이 있고, 금생으로 인해서 내생이 있다”고 하듯이 인간의 생명은 윤회를 멈추지 않는다. 인간에게 윤회는 둥글궁글한 희망이다. 물은 햇빛에 의해 증발되어 수증기가 되고, 하늘에서 냉각되어 비가 내린다. 꽃과 열매가 시들어 씨앗이 되고, 씨앗은 땅에 심어 싹을 틔우면 다시 꽃과 열매를 맺게 된다. 생명은 윤회를 하기때문에 인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윤회하기 때문에 인생의 무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은 미혹하기 때문에 업을 짓고, 고통을 받기 때문에 인생은 언제나 흑업고(惑業苦)의 굴레에 얽매어져 있다. 윤회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당신이 만약 그 이치를 알고 있다면 이 세상에 우리들의 형제자매가 아니었던 사람이 어느 누가 있겠는가? 나뭇잎이 말라버리면 다시 푸르게 돋아날 때가 있을 것이며, 꽃이 지더라도 때가 되면 다시 핀다. 수명은 비록 한량 없을지라도 반드시 생명이 다 할 때가 있다.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망하고 모아진 것은 반드시 흩어질 때가 있다. “이 세상은 덧없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에게도 또한 영원한 즐거움이 없다” 열반경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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