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갈량과 모택동의 전략과 전술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전쟁에서 전략과 전술의 개념은 다르다. 따라서 전쟁에서는 전략과 전술 모두 적보다 우위에 있어야 승리한다. 하마스와 전쟁중인 이스라엘군의 전략과 전술은 내가 보기엔 세계 최고다. 이스라엘군이 “미국의 조언은 고맙지만 전쟁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말에는 뛰어난 전략이 함축돼 있다. 승리는 민심을 안도케 하고, 군기를 엄정해야 이긴다고 하는 것은 병법의 첫째 조항이다. 역사를 보면 난세의 시기에는 엄정한 군기가 백성들을 안심케 만드는 관건이었다. 유비를 도와 조조와의 싸움에서도 이긴 전적을 보면 제갈량의 엄정한 군기가 승리를 이끌어 냈다. 모택동이 장개석과 싸워 이긴 것도 엄정한 군기에 있었다. 국공내전 당시 ‘新 中華帝國’의 창업주인 모택동이 이끈 홍군도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모택동의 고향인 호남은 동정호 남쪽에 위치에 붙어 있다는 이름이다. 이 호수는 중국 최대 규모로써 4개 강의 물을 모았다가 장강(長江)으로 흘러 보내는 까닭에 호수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모양은 호수처럼 생겼다.
춘추시대에 운몽대택(雲夢大澤)으로 불려졌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주변이 주름 속에서 꿈을 꾸는 듯 절경으로 가득차 있다. 무한의 황학루, 남창의 등룡각과 함께 중국은 3대 누각으로 일컬어지는 악양류가 대표적이다. 악양루는 삼국시대 당시 오(吳)나라 왕 손권이 노숙을 시켜서 지은 것이다. 관우가 버티고 있는 형주를 탈환하기 위해 동정호 일대를 장악한 뒤에 이곳에서 수군을 훈련시키면서 망루를 지는 것이 바로 악양류다. 모택동이 생전에 많은 시(詩)를 남긴 것으로 전해진 것도 고향의 이런 아름다운 경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국 공산당 창립 초기에는 모택동의 위치는 보잘 것 없었다. 비록 모택동이 사범학교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시골 촌놈’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지식인으로 알려졌던 ‘진독수’와 ‘이대교’ 등이 중국 공산당을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이었다. 특히 ‘진독수’는 도시에서 폭등을 통해 부패한 국민당 정부를 전복시키고, 인민공화국을 세울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했다. 소련혁명 방식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일개 공산당 지도자에 불과했던 지도자 ‘코민테른’(1919년에 레닌의 주도 아래 소련 공산당과 독일 사회 민주당 좌파를 중심으로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이 창립)이 크게 작용했다. 모택동에게는 ‘신 중화제국’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모택동은초~한(楚~漢)전쟁 초기 머슴으로 있든 진승과 비슷한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진승처럼 모택동도 큰 꿈을 지니고 있었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장개석을 포함한 기왕의 모든 대소군벌 휘하 군대와 차별화 하기 위한 홍군은 장개석 군대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 이른바 모택동의 ‘3대규율과 8항주의’와 같은 극히 실무적인 실천 지침이 나온 것도 모택동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모택동의 ‘삼대 규율과 8항주의’에서 삼대규율은 첫째, 모든 행동은 지휘에 복종한다. 둘째, 인민의 바늘 하나와 실 한 오라기도 취하지 않는다. 셋째, 모든 노획물은 조직에 바친다. 8항주의는 첫째, 말은 친절하게 한다. 둘째, 매매는 공평하게 한다. 셋째, 빌려온 물건은 돌려준다. 넷째, 파손된 물건은 배상한다. 다섯째,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는다. 여섯째, 농작물을 해치지 않는다. 일곱째, 여자를 희롱하지 않는다. 여덟째, 포로를 학대하지 않는다. 홍군은 이를 실천함으로써 군벌시대의 중국에서는 유례없는 새로운 모습의 군인으로 인민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전략가 중 한 사람인 미국의 군사전문가 ‘베빈 알렉산더’는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했는가’에서 당시 모택동 홍군의 특징은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이 군대는 계층적 명령체제가 아니라 가능한 가장 민주적인 형태를 지향했다. 이들 군대에는 서방이나 국민당 군대와는 달라 계층과 교육 수준에 따라 신병과 분리되는 명확한 장교단이 없었고, 계급과 기장(旗章)도 없었다. 남자들은 물론 종종 여자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줌으로 ‘리더’가 되었고, 사병들은 그들을 ‘소대장 동무’ ‘중대장 동무’처럼 직함으로 호칭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을 구타하거나 학대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함께 같은 음식을 먹고 똑 같은 옷을 입었다.” 말은 그렇다 해도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론 모택동 사상 모두 하나의 외피(外皮)일 뿐이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무력이다. 중화제국의 창립은 무력에서 우위에 섰기에 가능한 것이지, 결코 모택동의 ‘3대규율과 8항주의’가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택동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지 모르겠다. 중국이 모택동을 화폐에 새겨 영웅으로 섬기는 것도, 제갈량을 촉(蜀)나라의 영웅이라고 하는 것도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보다 3배나 많은 병력과 전투장비를 가지고도 일본군에 패한 것을 보면 러시아군의 지휘관 ‘크로파트킨’은 전략에 오류가 있었다. 일본은 병력과 무기가 고갈되어 항복을 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러시아가 항복했다는 것도 전략의 오류에서 나온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