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가 권우상(權禹相) 해학소설 = 봉이 김선달 <1>
봉이 김선달
제1부
머리 잘 굴리는 재사才士
(1)
따뜻한 봄 어느날, 방안에 누워있던 김선달金先達(이름은 金仁鴻)은 오늘이 장날이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라 바람이라도 쏘일까 하고 일어나 어슬렁 어슬렁 장터로 나왔다.
“ 오늘은 무슨 일로 재미를 보누? ”
하루 해가 지고 나면 괜시리 마음이 허전해지는 김선달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골몰하다가 갑자기 들리는 처량한 닭울음 소리에 문득 고개를 치켜들자 길 옆에 길게 늘어서 있는 닭전 앞을 지나고 있었다.
“ 닭 구경이나 해 볼까 ”
김선달金先達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닭장 속 좁은 공간에 갇힌 닭들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한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 으음. 저 닭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구나 가만있자.. 이 녀석하고 오늘 인연이 있을지 모르겠구만.......”
열 마리가 넘는 닭 중에서 유별나게 크고 색깔이 울긋불긋하게 꿩처럼 호화 찬란한 닭을 보자 김선달金先達의 머리에는 기발奇拔한 생각이 떠 올랐다. 기발한 생각치고는 야비野卑하다고 할까 좀 치사恥事한 그런 생각이었다.
“ 으음. 그렇지... ! ”
김선달金先達은 고개를 번쩍 들고 닭 주인을 불렀다.
“ 여보시오 주인장! ”
마침 주인은 목이 말라서인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느라 대답이 제빨이 나오지 않아 눈만 주인을 부르는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단숨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킨 주인은 그제야 목줄기가 트이는지
“ 왜 그러우? ”
하며 대답을 했다. 김선달 앞에 마흔 살이 약간 넘어 보이는 장돌뱅이가 나왔다.
“ 조금전에 닭장 안에 희얀한 닭을 보았는데.. 여보시오 ! 저기 저 닭은 보통 닭이 아니라 혹시 봉이 아니오 ? ”
봉鳳이란 봉황새를 말하는데 전설속에 나오는 새였다.
“ 봉이요? ”
그 소리를 들은 닭 주인은 갑자기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김선달을 바라보았다.
“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봉인데 어디 주인장의 말을 한번 들어 봅시다 ”
김선달은 일부러 모른척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 정말 봉황鳳凰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 같았다.
( 으음. 내가 저 닭을 봉이라고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는 일이 아니냐? )
닭 주인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 정말 보기는 잘 보았소. 저건 닭이 아니라 봉황새요 ! ”
“ 과연 봉이로구만... 내가 보기는 잘 보았구만... 진짜 봉이지요? ”
“ 앗따 두 번 말하면 잔소리지요. 봉이면 봉이지 봉에도 진짜 가짜가 있단 말이오? 봉이 틀림 없다니까 안심하고 사시오 ! ”
처음에는 약간 얼떨떨하게 주저하던 닭 주인은 이 무식한 촌놈을 속인다고 별 탈이야 있겠느냐 싶어 음흉한 생각이 나서 한 술 더 떴다.
“ 허어.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이 맞았소이다. 꿈에 내가 어느 산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오색이 찬란한 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와서 앉는 꿈을 꾸었는데 오늘 이 닭전에 와서 희귀한 봉황새를 보려고 그런 꿈을 꾼 모양이오. 여보시오 ! 저 봉을 팔지 않겠소 ? ”
“ 아 그야 팔려고 가져 왔는데 안팔 리가 있소. 살려면 사시오 ”
닭 주인도 속셈이 있어 얼굴에 웃음을 흘리며 바가지를 씌울 생각을 했다.
( 흥 오늘은 재수가 좋은가 보다. 웬 촌놈이 하나 걸려 들었으니.. 에라 모르겠다. 이왕 봉이라고 했으니 끝까지 봉이라고 우겨 값이나 많이 부르자 “
“ 얼마 받겠소? ”
“ 나야 헐값일수록 좋소이다. 닭 주인이 먼저 말해 보시오? ”
김선달金先達은 슬쩍 닭장사의 마음을 떠 보았다.
“ 글쎄 그것도 좋은 말씀이오. 장닭 한 마리에 한 냥씩 하니까 손님께서 저 봉을 꼭 사고 싶거든 열 냥만 내시구려 ”
“ 열 냥이라.. 그 좀 과한 것 같은데... 그 밑으로는 안 되겠소? ”
“ 봉이 어디 흔한가요? 정 그렇다면 일곱 냥으로 해주겠소 ”
“ 일곱 냥이라 으음.. ”
김선달金先達은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없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엽전 일곱 냥을 꺼내 닭 장사에게 주었다.
“ 봉을 꺼내 주시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