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단편소설 – 몰운대 달빛 <제4회>
몰운대 달빛
“내 성 본관은 하동 정(鄭)가다. 그러니 너도 내 성을 따라 정(鄭)가로 하고 이름은 반듯 필(必) 이길 승(勝)자로 반드시 전쟁에서 이긴다는 뜻으로 필승(必勝)으로 해라. 이제 너는 조선의 백성이고 내 양아들 정필승이다. 알겠느냐?”
“예. 아버지..”
정운 장군의 본관은 하동이고 자는 창진(昌辰)이다. 무관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과 응천현감을 지냈다.
다음날 정운 장군은 양아들 정필승과 함께 아미산 아래에 펼쳐지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서서 하늘을 날고 있는 까마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필승은 등에서 잽싸게 화살을 하나 뽑아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를 향해 바람처럼 날려보냈다.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시위를 떠난 화살은 까마귀 몸통에 명중되었고 까마귀는 곧바로 까욱!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졌다. 이를 본 정운 장군은 정필승의 활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명궁 중에 명궁이로다! 그야말로 최고의 신궁이야!.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칠 준비를 한다는 네 말에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일본의 정세를 파악할려고 임금이 보낸 두 사람 사신의 말이 각각 달라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네 말처럼 일본은 반드시 조선을 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서무이다. 일본은 반드시 조선을 칠 것이오무이다. 일본이 조선을 치지 않는다면 왜 전쟁 준비를 하겠서무이까?.”
이때 정필승은 까마귀를 향해 번개처럼 단검(진검)을 던졌다. ‘까욱'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마귀는 검에 맞아 떨어졌다.
“참으로 대단한 검술이다. 마치 신(神)의 솜씨를 본듯 하구나! 나는 이런 검술은 처음 본다!”
“과찬의 말씀이무이다.”
하고 정필승은 고개를 약간 숙여 겸손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전쟁에서 창칼로 싸우는 것은 직접 적군과 부딪쳐야 하지만 활은 멀리에서도 쏠 수 있으니 적을 기습공격하는 데는 궁사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오무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궁술은 다른 무술과 달라 단시일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오무이다. 제가 명궁이 되기까지에는 이르본(일본)서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과 많은 훈련이 있었서무이다..”
“어찌 훈련을 했는지 말해 보거라.”
“처음 활을 배우면서 벼룩 한 마리를 잡아서 실에 매 달아 놓고 5년 동안이나 그 벼룩을 겨냥하면서 활을 쏘았서무이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 벼룩이 황소만하게 보이는 것이오무이다. 그렇게 해서 오년동안 훈련을 했서무이다.”
“벼룩 한 마리를 잡아서 가느다란 줄에 매 달아 놓고 5년 동안이나 그 벼룩을 겨낭하면서 활을 쏘았다?”
“그렇서무이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그렇게 해서 결국 신궁이 되었구만..”
정운 장군은 정필승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입을 열었다.“검술은?”
“검술은 벼룩 대신 밥알을 한 개 실에 묶어 반으로 자르는 훈련을 했서무이다.”
정운 장군은 크게 감격하자 일본 미야모토 무사시 도장에서 검술을 배울 때 밥알을 실에 매달아 놓고 반으로 자르는 검술을 익히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일본 최고의 검성으로 알려진 미야모토 무사시의 병법이다. 이런 검술을 가진 일본군과 조선군이 싸운다는 것은 이미 승패는 뻔하다고 정필승은 말했다. 게다가 왜군은 화승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선군이 왜군을 이길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이다. 그래서 왜군과 싸울 때는 거리를 두지말고 최대한 접근해서 싸워야 할 것이고 정필승은 말했다.
정필승은 창술에도 뛰어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큰 연못에 피라미 새끼 한 마리를 놀게 해 놓고 3년동안 그 피라미 새끼를 창으로 찔러 잡는 연습을 하면서 창술 훈련을 했서무이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 피라미 새끼가 큰 고래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겠서무이까. 그렇게 해서 5년동안 훈련을 했서무이다.”
“넌 참으로 훌륭한 장군감이다! 우리 조선에 너같은 훌륭한 장수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정운 장군은 수하 장정들에게 정필승과 같은 검술, 창술, 궁술을 가진 장군을 얻은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지만 왜군을 상대로 싸울만한 장수가 그리 많지 않아 정운 장군은 걱정이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천하태평이었다. 그동안 관료들은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대북(大北)이니 소북(小北)이니 하면서 붕당을 지어 늘 싸움만 하느라 국가 안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생활도 매우 곤궁해졌고 각지에서 도적들이 생겨났다. 정운 장군은 대마도에서 도주해 온 정필승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정부에 전쟁 준비를 할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정운 장군은 사재를 틀어 본격적으로 의병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훈련 장소는 아미산 아래 다대포 백사장이었다. 무예를 가르치는 교관은 정필승이다. 강인한 체력과 담력을 소유하고 있는 정필승은 무예수련을 할 때 허수아비처럼 짚으로 여러 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세워놓고 실제로 싸움을 하듯이 칼로 목을 베거나 창으로 찌르는 훈련을 게속 반복하면서 훈련했다.
또한 아미산 큰 소나무 가지에 밧줄을 매달아 놓고 그 밧줄에 매달려 몸을 흔들면서 이리저리 발차기 하는 훈련도 했다. 이런 훈련은 유격전을 하는데 필요한 체력을 단련하기 위함이었다. 의병들에게도 그런 방법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가르쳤다. 특히 검이나 창을 쓸 때 양쪽 손을 쓰는 방법을 가르쳤다. 사람은 팔이 두 개다. 그러므로 검이나 창도 두 팔로 각각 잡는 것은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한다. 그래서 검술을 익힐 때는 큰 검 작은 검을 각각 양손에 잡는 것을 익혀야 한다고 설명하고 창도 역시 긴 창 짧은 창을 각각 양손에 쥐고 훈련하라고 했다. 정필승은 훈련을 받은 장정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사는 집 방에는 문턱이 있지요?”
“예”
“그 문턱은 쉽게 넘을 수 있지요?”
“예”
“그런데 문턱이 석자나 넉자가 된다고 하면 두려움을 느끼겠지요?”
“예”
”그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예.“
”문턱이 폭은 변함이 없다면 헛디딜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턱을 석자나 넉자로 높이면 발을 헛디딜 것을 두려워해서 마음대로 보행할 수 없지요.“
”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 이유는 낮은 문턱을 걷는 것에는 평소에 충분히 익히지만 높은 문덕에는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예.”
“따라서 석자나 넉자나 높은 문턱이라도 평소에 충분히 익혀두면 두려움이 없어져 아무리 문턱이 높아도 낮은 문턱처럼 넘어 다닐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적과 싸울때도 우선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평소에 훈련을 통해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것에 익숙해지면 적과 싸울 때 두렵지 않게 된다. 적과 만나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또한 적과 상대할 때는 첫째 자기 자신을 돌과 같이, 둘째 적의 빈틈을 노리는 것은 번개처럼, 셋째 적의 움직임에 대응해서는 하늘을 나는 제비처럼 해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