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이팅의 어원(語源)을 아는가?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운동경기나 경연장 또는 연말 연시 회사 직원들의 모임이나 시무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호가 ‘파이팅’이다. 그런데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지는 ‘파이팅’이란 말의 뜻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운동경기나 경연장 또는 회사 직원들의 모임이나 회식자리에서 한 팔을 높이 치켜들거나 술잔을 쥔 손을 들고 건배를 하면서 ‘싸우자’ ‘힘내자’ 라는 뜻으로 언제부터인가 그 어원의 모호함은 그렇다치고 뜻을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구호인 ‘파이팅(fighting)'은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인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영어에서 ‘파이팅’이란 말은 호전적인 뜻으로 ‘투쟁하자’ '싸우자‘ ’쟁취하자‘는 뜻이다. 따라서 있는 힘을 다해 ’이기자‘ ’승리하자‘ 라는 뜻으로 말할 때는 ’고 투 잇(Go to it‘) 이라고 쓰고 있다.‘ 어려움을 잘 참고 극복해서 계속 분발하자‘는 뜻으로 사용하는 속어로 ’키프 잇 엎(keep it up)'을 쓴다.
그러니까 ‘파이팅’은 출처가 모호한 엉터리 영어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엉터리 영어를 화합을 다지거나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짐하는 구호로 사용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또한 이 말을 ‘화이팅’이라고 소리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것은 외래어 표기법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물고기인 대구(whiting)'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듣기에도 이상하다. 운동경기나 경연장 또는 연말 연시에 회사 직원들이 회식하는 자리에서 한 팔을 높이 치켜들거나 술잔을 들고 ‘대구’ ‘대구’라고 외치고 있는 모습을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 보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파이팅’은 태평양전쟁 말기 진주만을 선제공격한 일본이 미국의 전쟁 참전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자 최후의 공격수단으로 만들어 낸 자살 특공대의 명칭인 ‘가미가제(神風)’ 대원들이 전투기를 몰고 출격에 앞서 희생될 젊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일본 천황(天皇)이 내린 마약을 섞었다고 의심되는 술(酒) 한 잔을 받아 마시면서 ‘천황을 위하여 파이토! (fight) 파이토! (fight') 라고 외치고 나서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 만세)‘를 삼창(三唱)했다. 이 파이토(fight)는 영어로 싸우자는 뜻인데, 지금 우리가 쓰는 ’파이팅‘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일본제국주의의 폭정은 치가 떨린다. 이런 제국주의의 폭정을 연상케 하는 말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본제국주의의 구호가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생활속에 들어와 ‘파이팅’이란 말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말로는 일본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의 생활속에는 일본 언어들이 곳곳에 들어 박혀 마치 우리말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이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파이팅’이란 말을 쓰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더구나 일본인들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파이팅’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전투적이라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한.일 월드컵 이후 필승(必勝)의 의미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2006년 ‘국어심의회’에서 ‘파이팅’이란 말 대신 ’단결하라‘ ’힘내라‘로 다듬어 쓰자고 바꾸었다. 게다가 당시 일부의 뜻 있는 젊은이들과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사람들로부터 ‘파이팅’을 '나가자‘ ‘힘내자‘ ’단결하자‘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말로 쓰자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말은 우리 민족의 사상(思想)과 혼(魂)이 반만년 역사를 통해 갈고 닦여 민족 정서가 함축되어 있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언어다. 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맨 먼저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우리의 성씨를 일본식으로 바꾸고 이름도 일본 발음과 글자로 바꾸었다. 이러한 일본제국주의의 폭정에도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애국지사들도 적지 않았다. 땅을 빼앗기면 다시 찾을 수 있지만 말과 글을 빼앗기면 영원히 나라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폭정을 생각한다면 일본 잔재는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 우리의 민족 정서에 맞는 우리 말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좋은 우리 말을 두고 남의 말을 써야만 공부 많이 한 지식인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일본인은 힘내라!(頑張れ!간바래)고 한다. 조속히 고쳐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