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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8회>

 

 

 

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8회>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갑자기 강범구 씨는 아들이 불쌍했다. 이 녀석인들 어디 열정을 쏟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자신과 아들은 지금까지 남에게 한 줌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건만 어찌하여 천지신명께서는 아들에게 이토록 좋은 소리를 내려주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아들에게 신神의 영험을 내려주시어 징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징을 만들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고 빌었다.

이제야 말로 알겠다는 듯이 종달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강범구 씨는 그런 아들이 대견스러워 양어깨를 두드렸다. 종달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실패는 없다는 당찬 표정이 묻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네 솜씨로 일을 계속해 보거라. 이제야 말로 장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았을 것이다. 최고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학문이나 기술이나 최고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너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해 보거라. 열 번 노력해서 안되면 백 번을 하고 백 번을 해서 안되면 천 번을 하고 그렇게 해서 될 때까지 하는 것이 장인의 정신이다. 그런 정신이 없이 쉽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지금이라도 이 일을 그만 두거라. 하지만 나는 네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일을 시킨 것이고 네가 할 수 있다는 신념도 지금 변함이 없다. 다만 아직은 너에게 천지신명께서 장인 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서 영감을 주지 않는 것 뿐이다. 자 다시 한번 이번에야말로 너의 모든 육체와 영혼을 쏟아부어 일을 계속 해 보거라.”

강범구 씨는 다시 한번 말과 손짓으로 아들을 독려했다. 종달이는 달구어졌던 쇠가 갑자기 찬물에 들어가면 형태가 비틀어지기 때문에 비틀어지는 형태를 최소화 하기 위해 달구어진 쇠를 서서히 물에다 담구었다. 그리고는 이것을 가마 위에 놓고 두드려 가며 다소 비틀어진 모양을 바로 잡는 터집잡기를 했다. 터집잡기가 끝나자 쇠는 모양이 잡혔다. 형태를 갖춘 쇠는 종달이의 손에 쥐어진 곱망치 주먹망치로 징의 안팎을 두드리며 잠들어 있는 소리를 찾아 나섰다.

쇠에 있는 무한히 많은 소리들 가운데 징의 울음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고 난이도가 높은 일이지만 종달이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잠든 징소리를 열심히 찾았다. 지금 여기에서 잠든 징소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또 다시 이 징은 한낱 쓸모없는 쇠조각으로 되돌아가 지금까지 쏟아 온 피눈물 나는 열정이 물거품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하던 잠든 징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비장한 결의를 지어 먹었다. 그런 아들의 결의를 안 강범구 씨는 다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비록 말을 못하는 벙어리지만 눈치 하나는 빨라 아버지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읽어 내면서 대정이로써의 눈썰미와 귀는 갖고 있었다. 그래서 종달이는 늘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징 만드는 일에서 징의 울음을 찾아내기 위해 수 많은 날들을 오직 징 만드는 일에만 열정을 쏟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종달이는 잡소리들은 모두 골라내고 다음 끝 짧은 울음은 다시 다듬어 살리고 이렇게 하기를 수백 번, 수천번, 오늘에야 비로소 손끝으로 희미한 떨림이 잡히기 시작했다.

강범구 씨는 이 소리를 감지한 듯 아들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대정이라고 하는 최고의 기술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5년을 꼬박 아들과 씨름을 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소리의 맥脈을 따라 귀를 열고 망치질을 해나가던 아들의 감각과 징의 떨림의 절정이 만나 어느 자리에선가 우우웅... 하고 잠들었던 울음이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이 깨어남을 위해 강범구 씨는 지금까지 아들에게 땀과 열정을 다 쏟아 왔던 것이었다. 세월로 치면 5년이 넘었다. 한 개의 징을 만들기 위해 이만큼 영혼과 열정을 쏟았던 것이다. 이제 징은 종달이의 손끝에서 마지막 과정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울음을 잡아 소리를 갖춘 징은 하나의 악기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불이 달구어지고 메를 맞고 하는 동안 시꺼멓게 그을린 동안 모양새가 볼품이 없다며 이것을 보기 좋게 다듬어 그럴듯한 제 모양을 만들어 주는 가질 작업을 종달은 해 나갔다.

시꺼먼 징의 피막을 깎아 속에 숨어 있는 광을 드러내 주는가 하면 아구리 부분을 끼워 엄쇠로 고정시켰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함께 일하던 일꾼들의 시선은 어느새 종달이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강범구 씨도 이제는 아들이 일에 더 이상 거들어 줄 것이 없는 듯 마지막 징 만드는 아들의 손길에 시선을 멈추고 있었다. 징에 칼대를 되어 깎을 때 강범구 씨는 가질통(궁글통)을 발로 밟아 머리쪽을 회전시켜 주고 한 사람이 칼대의 날을 갈아 주었을 뿐 이제 남은 일은 종달이 혼자서 하고 있었다. 종달이는 가질을 하면서 징의 바깥부분에 상사(나이테 모양의 줄 무늬)를 넣고 쇠의 안과 바깥 쪽 모두를 깎아 윤기가 나도록 하여 상사가 따로 새겨지지 않는 ‘백매구’ 작업도 이제 끝이 났다.

이제 징은 소리와 모양을 제대로 갖춘 하나의 악기가 되었다. 다만 가질 과정에서 흐트러진 징의 소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여 완전한 한 개의 악기가 되도록 하는 마무리 단계만 남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가질을 하여 징의 모양을 다듬어 주는 동안 깨어 놓았던 울음이 그만 숨어 버렸다.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강범구 씨는 어깨가 풀삭 무너지는 듯 하였다. 종달이도 맥이 빠지는지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종달이는 다시 울음을 찾아주는 재울음 잡기에 바쁘게 손을 놀렸다.

재울음 잡는 것은 이미 깨워 놓은 울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풋울음을 잡는 것에 비하면 한결 수월했지만 만일 재울음 잡기에 실패할 경우 지금까지 공든탑은 한순간 무너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일도 무척 초조하고 긴장되었다. 종달이는 앞에서 찾아 놓은 소리의 길을 더듬어 망치질을 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망치질이 끝나자 한 뼘 만큼의 간격으로 징 부분에 구멍을 뜷고 끈을 끼웠다. 이제 징 만드는 직업은 모두 끝이 났다.

남은 것은 소리다. 어떤 소리가 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진다. 과연 징다운 소리가 날지 어떨지 피를 말리는 긴장감이 얼굴에 가득 고였다. 두들기면 쇠소리는 나겠지만 그것이 우우웅... 바람을 타고 산 굽이굽이를 돌아 흐르는 예술적 혼魂이 묻어나는 징의 소리가 아니라면 그 징은 대장간의 구석에 버려져야 할 쇠붙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징이 징다운 소리를 낼지 아닐지 그것이 강범구 씨와 종달이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자 이제 다 되었으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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