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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6회>

 

 

 

 

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6회>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아들이 알아듣던 말던 강범구 씨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데 울화통이 터져 한 마디 내뱉었다. 이 말은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는 분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늘까지 강범구 씨는 징다운 징을 만들기 위해 아들을 호되게 나무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땀과 열정을 쏟지 않으면 결코 좋은 징을 만들 수 없다고 여러번 가르쳐 왔다. 그 때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대로 땀과 열정을 숨김없이 쏟아내면서 징을 만들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징다운 소리를 내는 징을 만들지 못해 완성된 징을 다시 조각으로 부셔 대장간 한쪽 구석에 버려지는 아픔과 수모를 당했다.

종달이의 메질이 제법 손에 일어갈 때쯤 대정이의 울음잡는 소리에 서서히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징을 생명이 있는 하나의 악기로 완성시키기 위해 종달이는 수백번 아니 수천 번도 더 망치질을 해가며 울음소리 들어보기를 수차례 반복해 나갔다. 그렇게 하는 사이 징은 어느 순간인가 우우웅.. 하고 잠기었던 목청을 틔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종달이는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써 5년을 징 만드는 일을 가르쳐 오고 있지만 아들이 만든 징에는 그런 소리가 나지 않으니 강범구 씨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밤을 세워 잠든 쇠의 소리를 깨워내고 그 소리에 취해 흥을 돋우던 자신의 옛날을 생각하면 강범구 씨는 지금 아들에게 그런 흥을 돋구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달래기 위해 아들에게 징 만드는 밀을 열심히 가르쳐 오고 있지만 아직도 아들이 만든 징에서는 예술적인 혼魂을 불어 오는 악기다운 징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상이 돌보지 않은 탓이라 여겨 가끔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려보고 무당을 불러 마당에 굿판을 차려놓고 천지신명에게 빌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허사였다. 참으로 절망의 늪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종달이는 아버지가 보고 있는 앞에서 싸늘하게 식은 쇠를 다시 불무에 넣어 달구었다. 그리고는 쇠의 녹은 정도를 살핀 후 갈쿠리로 화덕 두껑을 열어 도가니 속에 떠 있는 쇠똥을 걷어냈다. 대정이가 되기 위해서는 징 만드는 모든 기술적인 과정을 몸소 익혀야 하기 때문에 지금 종달이는 혼자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복동이, 그리고 두 늙은이는 단순하게 옆에서 일만 거들어 주는 것 뿐이었다.

강범구 씨는 기술에 한 치도 조그마한 실수나 결함이 없는가를 살피면서 철저히 일에 대한 감독을 하고 있었다. 쇠가 덜 녹아도 안되지만 너무 많이 녹아도 부드러움이 없이 딱딱해져 버리므로 녹은 정도가 적당한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유심히 살폈다. 쇠가 적당히 녹았다고 생각하자 종달이는 집게로 작은 도가니를 집어 쇳물을 떠서 옴폭한 몰돌에 부었다.

몰돌에는 미리 돼지기름을 부어 놓았다. 쇠의 분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강범구 씨는 부주댕이로 몰돌 위의 쇳물을 고르며 톱밥을 흩었다. 녹인 쇠에 톱밥을 흩는 것은 쇠의 열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톱밥을 뿌리면 뜨거운 쇳물의 열을 받아 불이 붙게 되므로 쇳물 윗 부분의 온도가 올라가게 된다.

톱밥은 흩는 즉시 쇳물이 온도에 의해 타버리고 쇳물은 식어 손바닥 보다 조금 큰 덩어리가 된 이른바 ‘바디기’가 되었다. 종달이는 ‘바디기’를 충분히 식혀 붉은 빛이 검게 변하자 집게로 몰돌에서 꺼냈다. ‘바디기’를 꺼내면서 ‘바디기’가 충분히 식었는지 잘 살피고는 ‘바디기’에 매질을 가했다. 강범구 씨는 ‘바디기’에 메질을 하는 아들에게 메질을 한꺼번에 많이 하지 말고 조금씩 하면서 ‘바디기’를 넓혀 가라고 말과 손짓으로 일러 주었다.

잠시후 ‘바디기’는 뉘핌질로 넘어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징 제작이 시작되는 터이라 강범구 씨와 종달이는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여기에서 최대의 기술이 발휘되지 않으면 징다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각별히 신경을 쏟아서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작업인 것이다. 종달이는 ‘바디기’를 다시 화덕에 달구었다. 불그스름한 빛이 나자 강범구 씨는 바닥다리 집게로 집어 종달이에게 건네주었다.

종달이는 왼손에 든 몽골잽이로 제빨리 머루띵이(머루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강범구 씨는 머루띵이 위에 올려진 ‘바디기’를 왼손의 몽골잽이와 오른손의 도래미 집게를 사용하여 적절하게 돌려가며 메질할 부분을 지시했다. 강범구 씨의 지시에 따라 센메, 전메, 앞메꾼의 차례로 메를 내리쳤다. 센메는 종달이가 맡고 전메와 앞메는 같이 일하는 50이 넘은 두 늙은이가 맡았다.

요즘 농촌에서는 모두들 도시로 나가고 젊은 장정들이 없기 때문에 이 두 늙은이가 임시로 대장간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메는 ‘바디기’ 위 중심에서 가장자리 쪽으로 치면서 쇠를 늘려갔다. 세 사람에 의해 메질이 계속되었다. 메질을 계속하다보니 달구어진 ‘바디기’가 식어 초바닥 상태가 되었다.

강범구 씨는 초바닥 상태가 된 ‘바디기’를 다시 불무에 넣어 달구어진 ‘바디기’를 조금전처럼 메질을 하자 다시 초바닥 사태가 되어 또다시 달구기를 반복했다. 달구어진 ‘바디기’는 여러번 메질을 했다. 메질이 진행되는 동안 복동은 계속 풀무질을 했다. 복동은 아랫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만 나와 집에서 노는 아이였는데 징 만드는 일을 배우겠다면서 며칠 전부터 강범구 씨의 대장간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바디기’가 늘어나자 종달이는 ‘바디기’의 고르지 못한 가장자리를 알맞은 크기로 고무칼로 잘랐다. 가장자리가 다듬어진 ‘바디기’는 3개씩 한 짝을 이루어 돋움질 과정에 들어갔다. 뉘핌질에서처럼 종달이가 들려주는 ‘바디기’를 센메, 전메, 앞메의 순으로 내리쳤다. 이번에는 강범구 씨가 전메를 맡았다.

종달이는 왼손에 초잽이 오른손에 도레미 집게를 들고 ‘바디기’를 들려주다가 ‘바디기’가 늘어남에 따라 왼손의 초잽이 중잽이, 한잽이로 바꾸어 가며 작업을 해 나갔다. 사람만큼 예민한 쇠다. 쇠는 사람들의 호흡과 감정을 그대로 읽어낸다. 같은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메를 내리쳐도 메질하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쇠는 반응한다. 누구와 다툼을 하거나 기분이 좋지 못한 일이 있는 상태에서 메질을 하면 쇠는 어김없이 깨져 버리는 것이다.

<계속>

 

 

 

 

 

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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