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단편소설 =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연재 <제3회>
하늘의 소리 바람의 소리
그날 강범구 씨는 아들을 데리고 자신이 만든 징과 아들이 만든 징 두 개를 들고 마을 뒷산 높은 언덕으로 올라 갔다. 그리고 강범구 씨는 자신이 만든 징을 왼손에 들고 오른 손에는 채를 잡고는 아들에게 징소리를 들어 보라는 손짓을 했다. 아들은 말 못하는 벙어리지만 귀는 있어 알아 듣기는 한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강범구 씨는 아들이 말을 하지 못해도 귀머거리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라 싶었다. 대게 말을 못하는 벙어리는 귀머거리를 동반한다. 하지만 아들은 다행이 청각만은 잃지 않았다.
강범구 씨는 오른 손에 잡고 있는 채로 징을 힘차게 두드렸다.
“우우웅...우우웅,,,”
바람을 타고 산 굽이굽이를 넘어 흐르는 징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멀리 달아난 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며 메아리로 끝도 없이 되돌아 들려 왔다. 언제나 들어도 귀에 밴듯 정감情感을 자아내는 맑고 청아한 소리였다.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며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나즈막한 울림.... 둔중한 쇠 어디에도 상사(징에 새겨진 나이테 모양의 줄무늬)를 따라 퍼지는 그 끊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뒤덮은 온갖 상념들을 걷어내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신명을 일깨웠다. 징소리가 마지막 한 자락의 여운을 바람에 살려내며 멀리 사라져 갈 무렵, 이번에는 아들이 만든 징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잡은 채로 징을 힘껏 두들겼다.
하지만 이 소리는 조금전 만들어 두들긴 징소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금 이 징소리는 악기로서의 징소리라기 보다는 깨어져 금이 간 둔탁한 쇠붙이 소리에 불과했다. 강범구 씨는 실망이 가득 담긴 얼굴로 아들을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아들도 자신이 만든 징이 아버지가 만든 징보다 못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 차리고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놈이라고 이런 소리를 원했을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는 걸 어찌하나.. 생각하면 불쌍하다. 에비 잘못만나 이런 고생을 시키는가 싶어 가슴이 메였다.
아무리 해도 안되니까 저 놈도 답답할테지... 이런 생각에 강범구 씨는 가슴이 저려왔다. 강범구 씨는 말과 손짓을 함께 섞어가며 이래 가지고서는 징이 될 수 없다고 나무랐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좀더 육신과 영혼을 덤뿍 쏟아 부어라는 제스츄어였다. 아버지의 꾸지람에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아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한 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다. 저 놈이라고 어찌 말 못하는 벙어리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는가. 이 모든 것은 부모의 덕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강범구 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장인匠人이 될려면 눈물은 없어야 한다. 더 강하게 더욱 강하게 두드리며 매질을 해야 한다.
불에 달군 쇳덩이는 더욱 두드려야 강해지 듯이 이 놈도 더욱 두드려야 한다. 허약하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 아들이라고 적당히 넘어가서는 절대로 장인匠人이란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설 수가 없다. 장인이 되는 데에는 추호도 동정은 없다. 나도 그렇게 배운 장인匠人이 아니였던가..
그렇게 생각한 강범구 씨는 아들에게 더욱 징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아부어 주기를 주문했다. 아들도 그리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못난 애비를 만나 자식을 이런 고생을 시킨다고 생각하자 강범구 씨는 또 한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