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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복잡한 분쟁 원인

 

 

 

 

 

 

 

 

칼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복잡한 분쟁 원인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시오니즘 운동은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운동으로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자 아랍인의 반발이 일으났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고, 양측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분쟁의 불씨가 조성됐다. 19세기 후반, 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던 유대인은 국가건설 지역을 성서에서 약속한 땅 팔레스타인으로 결정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시온산은 이들의 국가건설 상징이었고, 시온산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운동’을 전개하면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에 의한 유대인의 이주가 증가하자 아랍인의 유대인 배격운동이 격화되었다. 그런데 제1차세계대전 중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밸푸어선언’을 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다고 발표한 선언).

 

 

그러나 영국은 1차 대전 당시 독일 편에 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했다. (이것이 향후 분쟁의 불씨가 됨) 1930년대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을 증가시켰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될 무렵에는 유대인 이주자가 팔레스타인 인구의 30%,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의 5.7%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해 아랍인들과 시온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은 이 문제를 국제연합에 일임하였고, 그 결과 1947년 10월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하자 이스라엘이 성립된다. 그러나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민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주민을 추방하고 오직 유대교인만으로 나라를 세울려는 유대인들의 건국 운동이라 팔레스타인 내 아랍 주민을 배제하고자 하였다.

 

그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었고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와 동시에 이를 거부하고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그 결과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유대인은 본래 유엔 분할지역보다 50%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고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분쟁이 계속되자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체결로 잠시 숨을 돌리게 된다. 즉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 속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총리 간에 ‘캠프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지만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있던 골란고원의 반환을 거부해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1964년 결성된 비밀저항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세계 곳곳에서 테러 등으로 대(對)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스라엘도 1982년 레바논 PLO 본부를 습격하면서 1960년대 이후 양측의 유혈사태는 계속됐다.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인 반(反)이스라엘 투쟁인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나면서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자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9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 팔레스타인자치국 건설에 합의했고, 이에 따라 1994년 7월 1일에는 아라파트 PLO 의장이 가자 자치지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7월 5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

 

그러나 1997년 3월 팔레스타인에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 측도 과격 이슬람단체들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잇따라 감행, 협상은 위기국면에 다시 빠지게 됐다. 그런데 한국어판(김용선 저서) 코란(쿠란)의 내용을 보면 전쟁을 부추기는 귀절이 자주 나온다. 코란 216 : “싸움은 그대들에게 과해진 의무이다.” 코란 244 : “알라의 길을 위하여 싸워라. 알라께서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아신다는 것을 알라.” 등이다. 이런 내용은 기독교의 박애사상과 불교의 자비사상과는 달라 매우 호전적임을 알 수 있으며 십자군전쟁(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8회에 걸쳐 감행한 원정)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여호와(神)를 믿는 그리스도교도와 알라(神)는 믿는 이슬람교도와의 서로 배타적인 감정도 분쟁에 일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통치정당)가 2023년 10월 14일,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하자 이스라엘이 반격하면서 또 다시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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