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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權禹相) 칼럼 = 인내 앞에선 어떤 인생도 굴복한다

 

 

 

칼럼

 

 

인내 앞에선 어떤 인생도 굴복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야 들려야 하는 숙명적인 희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생의 체험은 단순하지 않으며, 늘 변화하고 바뀌면서 일생중의 하루 하루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사물을 판단하는 자신의 결정 방식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삶이란 형태로 접근해 온다. 혹여 인생을 단 하나의 체험이라고 해석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대부분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자기의 인생을 항상 뒤돌아보며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은 일련의 목적지의 연속, 바꿔 말하면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출생∼학생∼성적∼졸업∼취업∼결혼∼등과 같은 사건은 모두 내 인생의 목적지에 가는 일련의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역(驛)에서 또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의 인생 전체는 연속되는 여행이며, 그 순간 순간은 내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여러 단계들을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오른 계단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것은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다음 계단으로 오르는 힘을 충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획득한 성공은 나에게 인생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인생은 한 단계 한 단계마다 오를 때 한가지 밖에 즐길 수 없는 순간의 집합일 뿐이다.

 

 

나의 모습이 어떻게 성장하는 가를 살피는 결정적안 순간은 일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역경과 대치하고 있을 때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혹여 바꾼다 해도 거기엔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창의적이고 활기에 넘쳐 있기 위해서는 사고방식에서 가능한 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올바른 방법은 하나이며, 어떤 경우에도 어느 특정한 양식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면 그 인간은 독창성과 자발성도 결여하게 된다.

 

 

 

창의적이고 활기에 넘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속박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행동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자세를 던져 버린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반 데니 소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에 나오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반 데니 소비치 슈호프」의 하루에 대한 것이다. 꽁꽁 얼어 붙은 시베리아 황야의 캠프에서 생활하는 생존자의 모습과, 그들을 덮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안간에 대한 잔혹성으로 가득 담은 이야기다. ‘슈호프’의 자세는 그러한 최악의 환경속에서 조차 창의적이며,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 슈호프는 만족해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여러 가지 찾아왔다. 독방엔 들어가지 않았으며 저녁 식사의 야채죽을 한 그릇 빼돌렸다. 반장은 알맞게 작업량을 결정했고 벽 만들기는 제법 재미 있었고, 줄톱의 날을 훔쳤고, 밤에는 동료로부터 물건을 나누어 받았다. 담배도 샀다.

 

 

게다가 심한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하루였다. 그의 수용기간 중에 이와 같은 날이 365.3일 있었다. 레일을 망치로 두드리는 기상 신호로부터 취침 신호까지의 하루가 365.3일이다. 3일이 더 있는 것은 윤년 때문이었다. 이처럼 가축과 다름없이 노동을 강요당하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아닌가는 그 체험을 비판하거나 죄를 후회하고 처벌을 감수함으로서 간단히 체념해 버리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창의적이고 활기에 넘치는 자세로 현실에 맞서서 한 순간, 한 순간 최대의 삶의 보람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다. -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최대한 자기를 발휘하여 생기 넘치는 인생을 보내야 한다.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그 반대의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내(忍耐)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 이 무기 앞에서는 어떤 운명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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