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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 장편 역사소설 = 다라국의 후예들 제2부 제44회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2부 제44회

 

 

                 다라국의 후예들

 

 

“소장이 나가 싸우겠습니다.”

방우경이 옆을 돌아보니 고차국 장수 백가포(百家包)였다. 몸집이 거대하고 수염이 길고 원숭이처럼 팔이 긴 백가포는 자루가 긴 칼을 들고 달려 나갔다. 두 말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삼합에 들어가자 걸손국 장수는 백가포의 칼에 찍혀 맣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걸손국에서 다른 장수가 창을 꼬나들오 달려 나왔다. 두 말이 어울렸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6합이 지나도록 승부가 나지 않더니 갑자기 걸손국에서 화살이 날아와 백가포는 얼굴을 맞았다. 그러자 다라국 장수 목빈자(木賓子)가 급히 삭(朔)을 들고 말을 달려 나갔다. 두 말이 붙었다 떨어지기를 거듭하면서 목빈자의 팔이 언듯 올라가는 듯 하더니 결손국 장수가 말에서 떨어졌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방우경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라국과 고차국 연합국의 기병대는 일제히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보병도 화살로 맞서 싸웠다,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고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게다가 연합국에서는 좌군이 기세하면서 걸손국에서는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 전쟁에서 걸손국 군사는 3천여 명의 희생자를 내며 대패하였다. 하지만 걸손국(구주) 군사가 다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여 부지휘관 박량부와 감호을이 적의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하자, 다라국과 고차국 연합군은 퇴각하여 병선에 올라 뱃머리를 돌려 후퇴하였다.

그런데 퇴각하던 날 밤에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병선들이 파손되고 군사들이 수장(水葬)되는 바람에 다라국(합천)과 고차국(고성) 연합군은 황급히 귀환하였다. 이렇게 해서 걸손국 원정에 실패한 다라국의 거연무왕은 그 이듬해 다시 부왕(거타지왕)의 지시로 걸손국(구주) 정벌을 계획했지만 바다의 날씨고 좋지 않아 출병 날짜가 미루어졌다. 심한 폭풍으로 걸손국(구주) 정벌에 실패한 거연무왕은 다시 재차 걸손국 정벌에 나섰다. 걸손국(乞飡國) 이소지(伊蘇志) 왕에게 미파왕후의 귀환을 요청했지만 이소지왕이 이를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제2차 걸손국(구주) 정벌에서는 방우경이 이끄는 다라국(多羅國) 군사와 나유흔(羅有欣)이 이끄는 고차국(고성) 군사 등 총 3만명의 군대가 선발대로 출발했고, 박보진(朴保進)이 이끄는 다라국 군사 2만이 후발대로 출발했다. 이들 연합군 5만은 다시 한번 걸손국(구주) 본토를 공격하였으나 나유흔(羅有欣)이 이끄는 고차국 군사가 크게 패하고 후발대로 도착한 박보진의 다라국 군사 2만이 8월에 심한 폭풍을 만나 모두 수장(水葬)되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방우경의 뛰어난 통솔로 다라국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으며, 밀물과 썰물에 밀려 떠다니는 다라국(합천) 군사의 시체가 임라국(대마도)의 앞바다까지 가득 메웠다.

이렇듯 1, 2차 원정에서 다라국(多羅國) 군사가 대패하자 다라국에서는 막대한 물질적 피해와 노동력 상실을 입게 되어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해 졌다. 거타지왕은 죽을 때까지 미파공주를 찾아오겠다는 일념으로 걸손국(구주) 정벌에 대한 야욕을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해 거타지왕이 병으로 사망하자 미파공주(美巴公主)는 끝내 찾아오지 못한 채 거연무왕(巨淵武王)은 미파공주를 찾아오라는 부왕(父王)의 뜻을 접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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