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7 (토)

  • 구름많음동두천 0.8℃
  • 맑음강릉 6.0℃
  • 연무서울 1.1℃
  • 흐림대전 5.4℃
  • 맑음대구 7.7℃
  • 맑음울산 7.3℃
  • 맑음광주 7.9℃
  • 맑음부산 9.1℃
  • 구름조금고창 7.0℃
  • 흐림제주 8.8℃
  • 구름조금강화 3.6℃
  • 구름많음보은 4.0℃
  • 흐림금산 5.6℃
  • 맑음강진군 7.8℃
  • 맑음경주시 7.0℃
  • 맑음거제 6.8℃
기상청 제공

권우상(權禹相) 칼럼 = 최고 지도자는 자신부터 재점검하라

 

 

칼럼

 

 

                   최고 지도자는 자신부터 재점검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체로 군주는 자신에 대한 평판을 크게 의식하여 그것이 스스로 내린 평가와 동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백성의 눈은 청맹과니가 아니다. 백성의 눈은 끊임없이 위정자에게 쏠려 있어 아무리 작은 과오도 놓치지 않는다. 군주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은 당장 그것을 칭송하지만 과오를 범하면 즉시 그것을 비난한다. 백성들의 칭송이나 비난은 군주가 측근에게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대체로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명군(名君)은 백성들을 두려워 했다. 백성들의 눈에 의해서 명군이라고 인정되면 명성은 저절로 얻는다.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 지도자의 일거일동에는 수천수만 사람의 눈이 항상 쏠려 있다. 평판에만 신경을 써서 외양만 그럴듯하게 꾸미는데 전념하더라고 한 두 사람은 모를까 만인의 눈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보다는 자기 자신의 재점검을 항상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 긴요한 것이다.

 

 

()나라 명신 여공저(呂公著)는 재상 자리에 오른적이 있는데 그는 학문과 식견이 탁월하여 황제의 교육담당으로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사람이다. 그는 황제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자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옛날의 군주는 정령(政令)이 엄수되지 않고 인심 장악도 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 덕을 닦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여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성왕(聖王) ()이 그랬고, ()의 문왕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공저의 말은 우리들이 깊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북송(北宋)의 제7대 황제 철종에게 바친 제왕의 칠종수칙 십개조라는 강주문에는 (1) 하늘을 두려워 한다. (2) 백성을 사랑한다. (3) 수신(修身)을 한다. (4)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다. (5) 학문을 닦는다. (6) 간언(諫言)을 듣는다. (7) 가렴(苛斂)을 않는다. (8) 사치를 멀리한다. (9) 형벌을 줄인다. (10) 안일(安逸)은 하지 않는다. 천하는 한 사람이 천하가 아니고 오직 백성의 천하라고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는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이다. 옛말에 천하는 넓어서 한번 차면 한 번 기울고, 한 번 잘 다스려지면 한 번은 난세가 되어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한 나라의 군주의 대의는 바로 빛이오, 빛이란 만물에게 생명의 원소를 제공해 주지만 그 빛도 혼자 즉 개체로서는 빛나지 않는 법이다. 어디엔가 붙어서 빛나는 법, 군주는 백성에게 붙어 있어야 빛나는 것이고, 혼자 권좌에 달랑 앉아 있어 봤자 빛이 나거나 위엄이 있을 리가 없다. 백성이 에워싸 떠받들 때 빛과 위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을 버리고 혼자 부랑아가 되어 떠도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옛날 요 임금이 허유(許由)를 불러 천하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는 골치 아픈 자리를 왜 자기나 앉지 남한테까지 떠넘기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위수 강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마침 그 강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사람이 하도 이상해서 그에게 다가가 뭣 때문에 그토록 귀를 자꾸 씻느냐고 묻자 허유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다 듣고 난 마부는 돌연 칼을 뻬더니 ()을 그대가 듣고 귀를 씻는 이 물을 말()에게 먹였으니 이 말()도 불쌍하다고 하면서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런데 권력병에 걸린 사람들은 일단 권력에 붙게 되면 일반국민과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것이 내가 잘나 출세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기 딴에는 고고(高孤)하고 고상우미(高尙優美)한 척 하며 오만해진다. 그러나 인생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서민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를 유지해 간 사람들이다. 이런 사례는 어떨까. 한 자루의 칼을 두고 잘 사용하면 음식을 만드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악용하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변한다. 즉 지식은 칼과 같아서 잘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흉기가 된다. 인생은 백살도 살지 못하면서 권력을 가진자는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헛된 꿈을 버리지 않는다.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외도에 이끌리는 일이 없다. 그것은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아서 평탄하지 않는 길을 평탄하게 걸어간다<아함경>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체로 군주는 자신에 대한 평판을 크게 의식하여 그것이 스스로 내린 평가와 동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백성의 눈은 청맹과니가 아니다. 백성의 눈은 끊임없이 위정자에게 쏠려 있어 아무리 작은 과오도 놓치지 않는다. 군주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은 당장 그것을 칭송하지만 과오를 범하면 즉시 그것을 비난한다. 백성들의 칭송이나 비난은 군주가 측근에게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대체로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명군(名君)은 백성들을 두려워 했다. 백성들의 눈에 의해서 명군이라고 인정되면 명성은 저절로 얻는다.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 지도자의 일거일동에는 수천수만 사람의 눈이 항상 쏠려 있다. 평판에만 신경을 써서 외양만 그럴듯하게 꾸미는데 전념하더라고 한 두 사람은 모를까 만인의 눈을 속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보다는 자기 자신의 재점검을 항상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 긴요한 것이다. 송(宋)나라 명신 여공저(呂公著)는 재상 자리에 오른적이 있는데 그는 학문과 식견이 탁월하여 황제의 교육담당으로 훌륭한 과업을 완수한 사람이다. 그는 황제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자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옛날의 군주는 정령(政令)이 엄수되지 않고 인심 장악도 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자기 자신을 반성하여 덕을 닦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여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성왕(聖王) 순(舜)이 그랬고, 주(周)의 문왕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공저의 말은 우리들이 깊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는 북송(北宋)의 제7대 황제 철종에게 바친 「제왕의 칠종수칙 십개조」라는 강주문에는 (1) 하늘을 두려워 한다. (2) 백성을 사랑한다. (3) 수신(修身)을 한다. (4)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다. (5) 학문을 닦는다. (6) 간언(諫言)을 듣는다. (7) 가렴(苛斂)을 않는다. (8) 사치를 멀리한다. (9) 형벌을 줄인다. (10) 안일(安逸)은 하지 않는다. 천하는 한 사람이 천하가 아니고 오직 백성의 천하라고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는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이다. 옛말에 「천하는 넓어서 한번 차면 한 번 기울고, 한 번 잘 다스려지면 한 번은 난세가 되어 어지러워진다」고 했다. 한 나라의 군주의 대의는 바로 빛이오, 빛이란 만물에게 생명의 원소를 제공해 주지만 그 빛도 혼자 즉 개체로서는 빛나지 않는 법이다. 어디엔가 붙어서 빛나는 법, 군주는 백성에게 붙어 있어야 빛나는 것이고, 혼자 권좌에 달랑 앉아 있어 봤자 빛이 나거나 위엄이 있을 리가 없다. 백성이 에워싸 떠받들 때 빛과 위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백성을 버리고 혼자 부랑아가 되어 떠도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옛날 요 임금이 허유(許由)를 불러 천하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는 골치 아픈 자리를 왜 자기나 앉지 남한테까지 떠넘기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위수 강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마침 그 강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사람이 하도 이상해서 그에게 다가가 뭣 때문에 그토록 귀를 자꾸 씻느냐고 묻자 허유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다 듣고 난 마부는 돌연 칼을 뻬더니 “말(言)을 그대가 듣고 귀를 씻는 이 물을 말(馬)에게 먹였으니 이 말(馬)도 불쌍하다”고 하면서 말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런데 권력병에 걸린 사람들은 일단 권력에 붙게 되면 일반국민과 거리를 두고 멀어지는 것이 내가 잘나 출세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기 딴에는 고고(高孤)하고 고상우미(高尙優美)한 척 하며 오만해진다. 그러나 인생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서민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를 유지해 간 사람들이다. 이런 사례는 어떨까. 한 자루의 칼을 두고 잘 사용하면 음식을 만드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악용하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변한다. 즉 지식은 칼과 같아서 잘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흉기가 된다. 인생은 백살도 살지 못하면서 권력을 가진자는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헛된 꿈을 버리지 않는다.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외도에 이끌리는 일이 없다. 그것은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알아서 평탄하지 않는 길을 평탄하게 걸어간다」 <아함경>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