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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방석영 칼럼] 지혜로운 대자유의 삶

개가 멍멍 짖고, 고양이가 야옹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가 멍멍 짖고 고양이는 야옹한다는 것은, 개와 고양이의 일이 아니라 인간들이 바라보는 개와 고양이의 일일 뿐이다. 어쨌거나 개가 멍멍 짖고 고양이가 야옹하듯이, 개는 수표를 외면하고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를 물고 달아나지만 사람은 쉰내 나는 족발 뼈다귀를 외면하고 수표를 줍는다.

 

수표를 좋아하는 사람의 업식(業識)이 옳다면, 뼈다귀를 좋아하는 개의 업식 또한 그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사람이 수표를 선택하는 것이 개가 뼈다귀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개도 지혜로워져서, 뼈다귀 보다는 수표를 물고 정육점으로 달려가서, 신선한 살코기와 뼈다귀를 마음껏 사 먹기를 바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개를 사랑한다는 명목아래, 무조건 개에게 뼈다귀 보다 수표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특히 개가 뼈다귀를 좋아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비난하면서, 수표에 관심을 가지라고 꾸짖는 것은, 그 동안 개와 맺어 온 인연의 끈마저 끊어지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개를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개를 인정한 뒤, 개가 뼈다귀를 좋아하는 업식을 녹일 수 있도록, 그의 눈높이에서 도와주는 일이 가능할 뿐이다. 뼈다귀에 사로잡혀 있는 개의 업식이 녹아야만 비로소 개의 관심과 시선이 수표로 옮겨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인간들 또한 매 순간 자신의 업식을 기준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 대한 선악 및 득실 시비를 판단하고 있다. 뼈다귀에 꽂혀 있는 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개가 자신의 업식에 따른 꼭두각시이듯, 인간들 또한 과거의 기억뭉치인 업식의 꼭두각시다. 업식의 영향을 받으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선 개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술 담배에 찌든 업식, 섹스와 도박 등을 탐닉하는 업식, 무조건 타인을 이기려는 업식, 불교 및 기독교 등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는 업식 등등 인간이 갇혀 있는 우물은 부지기수다.

 

이 글도 자신의 업식과 잘 맞으면 옳다고 판단되고, 자신의 업식과 잘 맞지 않으면 그르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업식에도 물들지 않은 본래의 순수의식을 회복하기 전에는 누구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0점 조정된 저울만이 정확한 무게를 재듯, 0점 조정된 마음인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정견(正見)하면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만 창공을 훨훨 날 듯, 인간도 온갖 주의주장들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우물을 벗어날 때, 비로소 무애자재(無碍自在)한 대자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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