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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만농의 우리고을이야기-「농사직설서(農事直說序)」

선산 이문동(里門洞) 즉, 장원방(壯元坊)출신으로 한국 최고(最古)의 농업서(農業書) ‘農事直說’을 편찬한 대제학(大提學) 정초(鄭招)선생의 서문(序文)

 
▲ 韓國最古의 農書인 ‘農事直說’의 表紙와 裏面에 기록되어 있는 內賜記 
농사직설서(農事直說序)
정초(鄭招)
命摠制 鄭招 等, 撰 農事直說 。
其序曰 農者, 天下國家之大本也, 自古聖王, 莫不以是爲務焉。 帝舜 之命九官十二牧也, 首曰 “食哉惟時。” 誠以?盛之奉、生養之資, 捨是, 無以爲也。 恭惟 太宗 恭定大王, 嘗命儒臣, 取古農書切用之語, 附註鄕言, 刊板頒行, 敎民力本。 及我主上殿下, 繼明圖治, 尤留意於民事, 以五方風土不同, 樹藝之法, 各有其宜, 不可盡同古書, 乃命諸道監司, 逮訪州縣老農, 因地已試之驗具聞。 又命臣 招 , 就加詮次, 臣與宗簿少尹臣 卞孝文 , 披閱參考, 祛其重複, 取其切要, 撰成一編, 目曰 農事直說 。 農事之外, 不雜他說, 務爲簡直, 使山野之民曉然易知。 旣進, 下鑄字所, 印若干本, 將以頒諸中外, 導民厚生, 以至於家給人足也。 臣竊觀 周 詩, 周 家以農事爲國, 歷八百餘年之久。 今我殿下惠養斯民, 爲國長慮, 豈不與 后稷 、 成王 同一揆範乎 是書雖小, 其爲利益, 可勝言哉

총제(摠制) 정초(鄭招) 등에게 명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찬술(撰述)하게 하는데, 그 서문에, 농사는 천하의 대본(大本)이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이 이를 힘쓰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순제(舜帝)가 9관(官)과 12목(牧)에게 명하실 적에 맨 먼저 ‘먹는 것은 농사 시기에 달렸다.’ 하였으니, 진실로 자성(?盛)의 용도(用度)와 생양(生養)의 자료(資料)도 이것을 떠나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靖大王)께서 일찍이 유신(儒臣)에게 명하시어 옛날 농서(農書)로서 절실히 쓰이는 말들을 뽑아서 향언(鄕言)으로 주(註)를 붙여 판각(板刻) 반포하게 하여, 백성을 가르쳐서 농사를 힘쓰게 하셨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명군(明君)을 계승하여 정사에 힘을 써 더욱 민사(民事)에 마음을 두셨다.

오방(五方)의 풍토(風土)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적성(適性)이 있어, 옛 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道)의 감사(監司)에게 명하여 주현(州縣)의 노농(老農)들을 방문(訪問)하게 하여, 농토의 이미 시험한 증험에 따라 갖추어 아뢰게 하시고, 또 신(臣) 변효문(卞孝文)과 더불어 피열(披閱) 참고(參考)하여 그 중복(重複)된 것을 버리고 그 절요(切要)한 것만 뽑아서 찬집하여 한 편(編)을 만들고 제목을 농사직설(農事直說)이라고 하였다.

농사 외에는 다른 설(說)은 섞지 아니하고 간략하고 바른 것에 힘을 써서, 산야(山野)의 백성들에게도 환히 쉽사리 알도록 하였다.

이미 위에 바쳐 주자소(鑄字所)에 내려서 약간 본(本)을 인쇄하여 장차 중외(中外)에 반포하여 백성을 인도하여 살림을 넉넉하게 해서,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는 데 이르도록 할 것이다.
신이 주(周) 나라 시(詩)를 보건대, 주가(周家)에서도 농사로써 나라를 다스려 8백여 년의 오랜 세월에 이르렀는데, 지금 우리 전하께서도 이 나라 백성을 잘 기르고 나라를 위하여 길이 염려하시니, 어찌 후직(后稷)과 성왕(成王)과 규범(揆範)을 같이하지 않으랴. 이 책이 비록 작더라도 그 이익 됨은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농사직설[農事直說]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인 정초(鄭招)·변효문(卞孝文) 등이 왕명에 의하여 편찬한 농서 1책, 1429년(세종 11)에 관찬(官撰, 정부에서 편찬한 책)으로 간행하여 이듬해 각 도의 감사와 주·부·군·현 및 경중(京中)의 2품 이상에게 널리 나누어 주었다.

이 책은 그 뒤에도 판을 거듭하여 1492년(성종 23)에 내사본(內賜本)으로, 1656년(효종 7)에는 ≪농가집성≫에 포함되어 십항본(十行本)으로, 이어서 1686년(숙종 12)에 숭정본(崇禎本)으로 간행되었다.내사본은 일본에까지 건너갔다. 그 뒤에도 ≪산림경제≫·≪임원경제지≫ 기타 여러 국내 농서에 인용되었다. ≪농사직설≫의 내용이 대부분 중요 곡식류에 국한되고 기술이 간단하나,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법으로 편찬된 책으로는 효시가 된다. 또 이것이 지방 권농관의 지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뒤로 속속 간행된 여러 가지 농서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

정초(鄭招)가 쓴 서문에서와 같이 풍토가 다르면 농사의 법도 다르기 때문에, 이미 간행된 중국의 농서와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각 도 감사에게 명하여 각지의 익숙한 농군들에게 물어 땅에 따라 이미 경험한 바를 자세히 듣고 수집하여 편찬하고, 인쇄, 보급하게 된 것이다.

즉, 종래에는 중국의 옛 농서에 의존하여 지방의 지도자들이 권농에 종사하였으므로 실제로 풍토에 따른 농사법의 변경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와 같이 ≪농사직설≫은 지역에 따라 적절한 농법을 수록하였으며, 우리 실정과 거리가 있는 중국 농사법에서 탈피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비곡(備穀, 종자의 선택과 저장, 종자처리 등)·지경(地耕, 논밭갈이)· 종마(種麻, 삼의 파종과 재배, 수확)·종도(種稻, 벼의 재배)·종서속(種黍粟, 기장·조·수수의 재배)·종직(種稷, 피의 재배)·종대두소두(種大豆小豆, 콩·팥·녹두의 재배)·종맥(種麥, 보리와 밀의 재배)·종호마(種胡麻, 참깨 가꾸기)·종교맥(種蕎麥, 메밀 재배) 등 10항목으로 나뉘어 논술되어 있다.

이는 곡식작물 재배에 중점을 둔 농서인데,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농사법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벼의 재배법으로 직파법(直播法, 논에 볍씨를 뿌려 그대로 키워 거두는 방식)·건답법(乾畓法, 밭벼식으로 파종하여 키우다가 장마 이후로는 물을 담은 채 논벼로 기르는 방법)·묘종법(苗種法, 못자리에서 키운 벼의 모를 논에 옮겨 심어 재배하는 이식법으로 요사이 실시하는 수도재배법)의 세 가지 수도재배법(水稻栽培法)과 산도법(山稻法, 이른바 밭벼 또는 陸稻栽培法)이 있었다. 즉, 이 네 가지 벼 재배법이 천후(天候, 날씨)·수리(水利)·지세 등 환경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실시되었던 것이다.

또, 경작농구로서는 쟁기·써레·쇠스랑·미리개·번지·고무래·따비·호미 등이 쓰였으며, 거름으로는 인분·우마분·재거름·녹비(綠肥, 참 갈잎·녹두 등)·외양간거름 등이 사용되었다.

논밭갈이로는 봄가을의 천경(淺耕)과 가을의 심경(深耕)을 장려하였다. 밭작물의 파종법으로는 조파(條播, 줄뿌리기)·살파(撒播, 막뿌리기)·혼파(混播, 몇몇 다른 종류의 씨를 섞어 뿌림) 등 세 가지 방법이 시행되었으며, 경작방식으로는 2년3작·단작·혼작·휴한·간작 등이 적절히 채택되었다.
(lee7997@hanmail.net)
<한주 이진상 기념 사업회 이사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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