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 전법, 전술은 ‘兵者詭道也’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기원전 643년, 중국대륙을 호령하는 제(薺)나라 환공이 죽자 환공을 흉내 내려는 제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움직인 사람은 송(宋)나라 양공(襄公)이었다. 양공은 원래 상(商)나라 후예로서 환공이 살아 있을 때부터 패자가 되려는 야심에 찬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웃 나라와 전쟁이 많았다. 송나라 군사가 제나라 공자들을 무찔러 소(召)가 주인이 되자 훗날 효공(孝公)으로 불렀다. 그런 다음 양공은 모임을 열어 송(宋), 초(楚), 진(陣), 채(蔡), 허(許), 조(曺), 정(鄭) 등 여러나라를 공격하면서 단숨에 적군을 무찌르는 법이 없이 몇 걸음 전진하고는 멈추어 서서 대형을 조절하곤 했다. 활잡이, 창잡이들이 맡은 일을 엄격히 나누었으므로 누가 용맹한 척 나가면 전군에 위험을 조장할 가능성이 많았다. 공격수단도 다양하지 못해 양쪽 군사들이 맞부딪쳐 한바탕 겨루어 승부가 나면 싸움도 끝났다. 그래서 적을 100리 쫓아가면 상장군이 잘못된다는 말도 생겨 당시의 전법에 의하면 후퇴하는 적군을 함부로 추격하지 말아야 했다. 끝까지 추격하다가는 반격을 당하거나 복병의 기습을 당할
칼럼 월남이 멸망한 원인을 아는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국이 패망한 월남을 닮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시 월남은 같은 민족인 공산주의 월맹과 대화하고 협상해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여론이 번져갔다. 이른바 반전평화 여론을 이끌고 간 대표적 집단은 종교인들이었다. 결국 평화란 슬로건 속에서 월남은 1973년 공산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주월 미군이 철수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이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박애로 불리는 것을 볼 때 종교인들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1970년대 월남에서도 틱찌광(Thich Tri Quang) 승려,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가 자유월남의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 조직을 이끄는 등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 평화메시지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 평화· 화해· 협력· 교류를 강조했고,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시 월남에서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인사들은 얼마 안 가서 타살체로 발견됐는데 1973년까지 연평균 무려 840여 명이나 암살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칼럼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는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의 역사와 여기에 생존하는 인간의 역사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황금밭이란 사실을 항상 느끼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모든 이야기를 쓰는데 열중하고 있다. 지구는 무한대의 우주에 비하면 원자나 분자보다 작은 천체이지만 인간은 수 많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역사를 끝없이 기록해 가며 서로가 자기 자신이 주인임을 강조한다. 한 사례를 보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지도자였는데 페르시아 군의 침입이 예상될 때 그는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여 함대를 만들었다. 이때가 기원전 460년, 마침내 페르시아 군이 북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와 아테네를 짓밟고 불바다로 만들었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섬으로 피난하였으며 아테네 함대들이 아테네와 살라미스 섬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기다렸다. 그 함대의 지휘자는 스파르타의 ‘에우리비아데스’였다. 그 당시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에서 최고의 군사 강국이었다. 스파르타 군은 육상에서는 용감했으나 해상에서의 싸움은 꺼려했
칼럼 5월, 모두 건강한 가정을 갖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많은 데다가 대통령은 뽑는 중요한 달이다. 어린이날은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로 매년 5월 5일이면 법정 공휴일이다. 3. 1운동 이후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 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해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을 공표하고 기념행사를 치룸으로써 비로소 어린이날의 역사가 되었다. 어버이날의 기원은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살았던 ‘안나 자비스’(Anna jarvis 1864 - 1948)에서 시작됐다. ’안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셨다. 1905년 어느날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선 꽃을 심었다. 그녀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답하
칼럼 정치인의 신념과 자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조선 정종 2년, 세자 이방원은 고려 때 주서(注書)를 지낸 길재(吉再)를 한양으로 불렀다. 길재는 이방원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를 해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방원은 길재가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선비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방원의 부름을 받고 한양에 당도하자 이방원은 임금에게 아뢰어 봉상박사(奉尙博士)라는 벼슬을 재수했다. 그러자 길재가 말했다. “신(臣)이 옛날에 저하와 함께 성균관에서 시경을 읽었는데 지금 신을 부른 것은 옛정을 잊지 않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신(臣)은 신(辛)씨 조정에 등과 하여 벼슬을 하다가 왕(王)씨가 복위하자 곧 고향에 돌아와서 여생을 지내고자 했사옵니다. 지금 옛날을 잊지 않으시고 신을 부르셨으니 신이 올라와서 뵙고 곧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사사로운 옛정으로 벼슬을 한다는 것은 신(臣)의 뜻이 아니오니 살펴 주시옵소서. 인재를 등용하여 국사(國事)를 논하는 것은 우의(友誼)나 안면(顔面)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자 이방원은 “그대의 말은 바꿀수 없는 근본 도리이니 의리상 뜻을 빼앗기는 어렵다. 그러나
칼럼 자연재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누군가 “머지않아 재해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일까? 꿈같은 얘기를 하고 있네. 재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자연재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 현상을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성서에 따르면 뛰어난 관찰력과 지혜로 잘 알려진 고대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참으로 해 아래서 행해진 일을 깨달을 수가 없구나. 인간은 아무리 수고하여 찾으려 하여도 깨닫지 못하며, 설사 자기가 알 만큼 지혜롭다고 말한다 하여도 그들은 깨달을 수가 없다.” (전도 8:17) 인간이 자연재해를 통제할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성서는 우리의 창조주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분은 지구에 물의 순환과 같은 생태계를 마련하신 분이다. (전도 1:7) 그리고
칼럼 역사에서 본 독신녀 군주의 모습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신라는 진성여왕이 등극하자 국가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국가 체제가 와해되어 가고 있었다. 독신녀 진성여왕은 즉위 초부터 각간 벼슬의 위홍과 간통하고 있었다. 진성여왕은 섹스 파트너인 위홍을 요직에 앉히고 국정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자 관청 거리 곳곳에는 진성여왕과 위홍을 비롯하여 조정 대신들을 비방하는 방이 나붙었다. 위홍은 노발대발하여 신하들에게 말했다. “지금 대왕과 조정대신들을 비방하는 방이 관청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소. 당장 군사를 동원하여 범인을 체포하도록 하시오!” 그러자 대신들은 한결같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어 잡아 들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성여왕의 측근인 박양근이 방을 붙인 범인으로 대야주(경남 합천)의 학자인 왕거인을 지목하였다. 왕거인은 대학자로 부패한 신라 조정을 한탄하며 대야주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많은 백성들이 왕거인을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성여왕은 왕거인이 정말 범인인지 아닌지 조사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위홍의 말에 따라 왕거인을 잡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박양근은 왕거인이 범인이라고 위홍에게 보고 했던 것이다. 위홍은 왕거인에게 자백
칼럼 북핵 제압은 한국도 핵무기 보유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북한은 오랫동안 중국의 묵인하에 핵을 보유하게 됐다. 북한은 제5차 핵실험을 하면서 조선중앙TV는 이렇게 보도했다. “핵탄두폭발시험이 성과적으로 진행이번 핵실험에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장비한 전략탄도 로켓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 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 그러면서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우리의 여러 가지 분열 물질에 대한 생산과 이용기술을 확고히 틀어쥐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우리의 핵무기 병기화는 보다 높은 수준에 확고히 올라서게 됐다”고 했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이 여기까지 온 것은 더 이상 북한의 핵포기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도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방어를 한다지만 원자탄의 위력에 사드는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한국도 북한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갖추는 것이 정답이다.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것은 1970
칼럼 국가 원수의 천박한 역사 인식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보도를 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과 정상 회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발언을 한 모양이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가 원수의 천박한 역사 인식을 보여 준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실제로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급했는지,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하고 과장하여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통역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나왔으니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하겠다. 346년, 중국 대륙에는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백제(百濟)가 있었고 한반도 남부지역에도 백제가 있었다.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때 백제는 100만 명의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무렵 계왕이 살해되어 근초고왕이 등극했다. 그런데 왜구가 한반도 백제 해안에 출몰하여 부녀자를 강간하고 곡식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근초고왕은 대대적인 왜구 토벌에 나섰다. 산동반도 해안을 출발하여 안라(安羅 : 對馬島)를 향해 출정했으나 항해 도중 심한 풍랑을 만나 되돌아 왔다. 하지만 근초고왕은 348년 다시 왜구 토벌에 나섰다. 백제군은 안라(安羅 : 對馬島)를 지나 축자국(筑紫
칼럼 돈과 생명 어느 쪽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세계 각국은 특히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은 갈수록 돈과 물질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돈이 강조되다 보니 새로운 문제와 우려가 생기게 되었다.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면서 돈과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해야 할까? 우리는 좀 더 적은 물질로 만족할 수는 없을까? 사람들은 실제로 물질주의라는 제단 위에 ‘참된 생명’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여러 가지 욕망과 열정 가운데서 돈에 대한 사랑은 그 수위를 매우 높인다. 섹스나 음식에 대한 욕망과는 달리 돈에 대한 열광은 끊임없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나이가 많아져도 수그러지지 않는 것은 돈이다. 많은 경우 나이가 들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나 염려가 실제로 증가할 수 있다. 돈에 대한 탐욕이 점점 더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탐욕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지금이나 그 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돈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새로운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면서 기회를 찾는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언제
칼럼 중국의 음흉한 속셈을 경계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지난 3년 동안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은 한 마디로 대북정책, 대중정책의 실패였다. 통일대박과 신뢰프로세스는 그야말로 위험하고 낭비적이고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별나라 정책이었다. 더구나 중국을 잘 보듬어 안으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은 국방안보 정책에서는 실패였다. 사드(thaad) 배치로 중국이 연일 한국을 비난하면서 한국제품 수입을 억제하고, 콘텐츠 사업을 차단하는 것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는 중국을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지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을 알려면 세 가지 면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공산주의 정치체제 국가라는 것이며, 둘째는 미국의 세력이 아시아에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셋째는 적과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길려면 내부(한국)를 분열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즉 남한에 대해 남남갈등을 부추겨 사드 배치가 불발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과 우호적인 제스추어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칼럼 南과 北, 한반도 주인은 어느 쪽일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는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의 역사와 여기에 생존하는 인간의 역사가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황금밭이란 사실을 항상 느끼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모든 이야기를 쓰는데 열중하고 있다. 지구는 무한대의 우주에 비하면 원자나 분자보다 작은 천체이지만 인간은 수 많은 슬픔과 고통스러운 역사를 끝없이 기록해 가며 서로가 자기 자신이 주인임을 강조한다. 한 사례를 보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지도자였는데 페르시아 군의 침입이 예상될 때 그는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여 함대를 만들었다. 이때가 기원전 460년, 마침내 페르시아 군이 북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와 아테네를 짓밟고 불바다로 만들었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섬으로 피난하였으며 아테네 함대들이 아테네와 살라미스 섬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기다렸다. 그 함대의 지휘자는 스파르타의 ‘에우리비아데스’였다. 그 당시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에서 최고의 군사 강국이었다. 스파르타 군은 육상에서는 용감했으나 해상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