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아베 총리 살해 사건과 통일교 사태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NHK 보도에 따르면 전후사(前後事)에 전례가 없는 범행으로 일본 열도를 왈칵 뒤집어 놓은 아베(安倍 晉三) 전 총리를 살해한 범인에 대한 재판이 2025년 11월 28일 오후 2시 나라(奈良)지방재판소(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야마가미 데스야(山上徹也)는 검찰이 낭독한 기소 사실에 대해 “틀림이 없다. 내가 한 것이 틀림이 없다”라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야마가미 쪽 변호인은 범행에 쓰인 부품을 조립한 사제 총은 총검법에서 규정된 ‘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에 맞는 양형이 선고돼야 한다면서 징역 30년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측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야마가미 데스야(山上 徹也)는 2022년 7월 일본 나라시(奈良市)의 한 전철역 앞에서 참의원 선거지원연설에 나선 아베 전 총리를 사제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과 자민당 유착 의혹으로 번져, 아베 전 총리 사후 일본 정치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사망하여 총리가 실제로 정치 자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검찰 측 진술에 따르면 야마가미(山上徹也)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기부하여 가정이 파탄되어 생활이 매우 곤궁에 지자 형(兄)이 자살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등 가정이 파탄되어 자신이 생각했던 인생을 살 수 없었던 것을 통일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야마가미(山上徹也 45)는 자위대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한다. 앞서 일본 언론은 통일교(구) 신도였던 야마가미(山上)의 어머니가 남편의 사망보험금과 가족들이 함께 살던 집까지 팔아 1억엔(약 10억엔 : 한화로 계산하면 100억 정도)이 넘는 돈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에 헌금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검찰은 야마가미(山上)가 “어머니의 헌금을 원망하던 형이 자살한 것을 계기로 처음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최고 간부를 살해하려고 화염병을 만들어 한학자(가정연합 총재)를 노렸지만 실패하자 목표를 아베 총리로 바꾸었다고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전모씨, 임모씨, 정모씨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경찰조사를 받게 되자 전모씨는 장관직에서 사표를 냈다. 아베 총리 살해 사건과 별도로 문무과학성은 고액 헌금으로 피해가 몹시 커다면서 소송을 제기하자 통일교(가정연합)측은 해산명령 해당 안돼다고 주장했다. 통일교 해산명령 재판은 2023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고액헌금 논란을 앞세워 “피해가 몹시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가정연합(구 통일교)은 “헌금은 종교 활동의 하나로 해산명령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하지만 2025년 11월 최고재판소(대법원)는 통일교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일본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교는 어떤 종교인가? 초기 명칭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였으나, 1997년 4월 10일에 개칭하였다. 약칭 통일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통일교에서 갈라진 여러 신흥종교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주류 교단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일교라고 일컫는다. 다른 분파들과 비교하는 서술에서는 주류 교단을 ‘가정연합’이라고 칭한다.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 등에 대규모 지부와 산하 기관을 두고 있으며, 문선명 교주 본인이 예수 다음으로 재림한 구세주인 ‘재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재정적 규모와 영향력을 갖추었다. 2015년 가정연합에 따르면, 신자 수는 대한민국에 30만 명, 일본에 60만 명, 필리핀에 12만 명, 콩고민주공화국에 11만 명, 태국에 10만 명, 미국에 10만 명 정도라고 한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을 제외한 해외 신도는 300만 명이라고 밝혔다. 2025년 김건희 특검이 통일교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국 신도 120만 명의 명부를 확인했다. 이는 최초로 교단이 아닌 정부 기관이 밝혀낸 규모이다.
원래 종교는 처음에 개인(창시자)이 자신의 사상(철학)을 몇 사람에게 알리면 추종자(제자)가 되어 아주 작은 집단을 형성한다. 즉 개인 사상(철학)으로 출발한 작은 조직이 점점 추종자 수가 증가하여 대규모로 확대되면 종교로 비약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 사상이 대 규모로 확대되지 못하면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 사조직으로 몰락하게 된다. 예수나 부처도 처음에는 자신의 사상(철학)을 따르는 제자의 수가 몇 명에 불과 했지만 점점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이 늘어나 대규모로 확대되면서 종교로 인정 받았다. 그리스도교는 그 기간이 500년이나 걸렸다. 기독교의 시조인 예수는 B.C. 4세기 경 로마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목수였다. 유태인은 예로부터 야훼(Jahweh) 신을 믿어 야훼가 구세주(Messiah)를 보내, 신의 선민인 유태민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태인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그들의 절망은 깊어져, 이 세상의 종말과 ‘신의 나라’(천국)를 실현시킬 메시아를 강렬히 요구하고 있었다. 이때 암 하레트라 불리는 유태 민족 중에서도 가장 억압 받고 차별 받아 온 사람들이 결집한 운동에 참가한 예수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신도수가 점점 많아져 대규모로 확대되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되었다. 예수가 총독 빌라도에게 처형된 것은 왕이 있는데 자신이 ‘유대의 왕’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 이 말을 보면 예수의 사상에는 부자를 경멸하는 듯한 냄세가 풍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내세워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이문을 남긴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니 천국이나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 나의 지견이다. < 에르네스트 르낭의 저서 ‘예수의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