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사주추명학자의 “이것이 운명이다” <7>
이것이 운명이다
남편은 나를 보듬어 안고 입을 맞추어 주면서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리고 3년만 배를 타면 더는 안타겠다고 했다. 남편은 한국해양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결혼을 하기 위해 반년을 육지에서 생활한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줄곳 바다에서 살아왔다. 그야말로 바다의 사나이였다. 내가 박중배와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과부처럼 혼자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돈 걱정을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산다는 것이다. 늘 바다에 나가 있는 뱃사람 남편과 결혼해서 살아보지 않는 여자는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를 이제야 나는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외항선원을 남편으로 둔 경우 여자가 춤바람이나 나서 외간 남자와 놀아나다 남편 잃고 가진 돈까지 날렸던 사례들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나는 익히 알고 있는 터이었다. 하지만 그런 메스컴에 뱃사람의 아내에 대한 불륜이 보도될 때마다 나는 결코 그런 타락한 여자가 되지 않으리라 두 번 세 번 다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 남편의 봉급을 알뜰하게 모아 놓고 있는 터였다. 2억이 넘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 남편의 급료는 매달 해운회사에서 자동으로 내 통장에 입금되고 있는데 매달 쌓이고 쌓여 지금은 상당한 거액이 은행에 예치되어 있었고, 이 돈은 몇 년 후 남편이 배를 타지 않게 될 때 사업자금으로 쓰겠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에 와서 ‘사람이 돈만 많으면 뭘 하지 이렇게 살면서’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했다. 외출하지 않으면 감옥살이와 같은 32충 고층 아파트의 갇힌 공간 생활, 내가 사는 아파트 32층은 남편과 전처(前妻) 자식인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혼자 현관문을 닫고 베란다에 나가 아래를 내려다 보면 이건 혼자 교도소 망루대에서 죄수들의 탈주를 감시하는 교도관의 영락없는 그 몰골이었다. 때로는 자신이 죄수가 되어 이 밀폐된 콘크리트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하여 머리가 어질어질 하기도 했다.
나는 아파트라고 하는 콩크리트 주거공간이 이웃을 단절하고 인간의 정서를 얼마나 메마르게, 그리고 살벌하게 갉아먹고 있는지 요즘에 와서야 실감나게 체험하고 있는 터였다. 단순하게 편리하다는 것만으로 너도 나도 선호한 아파트가 남편없이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스트레스를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야 나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경대 앞에서 로션과 입술 연지로 예쁘게 화장을 한 나는 베란다로 나와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오늘따라 잔뜩 지푸린 날씨는 비라도 한줄기 퍼불것만 같았다. 6월의 하늘은 무겁고 우중충 하기만 했다. 나는 지금쯤 대서양 바다 어느 항구를 향해 가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다시 귀국할 때까지는 무려 이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세월이 마치 10년 만큼이나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한창 남자의 살결 냄새가 그리워지는 나이에 더구나 두번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세 번째 만나서는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남편의 사랑을 덤북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 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만난 남편은 직업이 외항선 선장이라 함께 살지 못하고 혼자 독수공방 한다는 것이 따분하기만 했다. 세상의 모든 위로움이 나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