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사주추명학자의 “이것이 운명이다” <5>
이것이 운명이다
그리고 부산의 한 자치단체가 공모한 사랑을 주제로 한 전국노랫말 가사공모에서 <님을 기다리며>이라는 가사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작사가로 데뷔를 하였다. 그 노래가사 내용은 이렇다.
님을 기다리며
파란 하늘아래 가을꽃은 피어있는데
사랑하는 우리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바람불어 못오시나 비가와서 못오시나
이몸으로 징금다리 만들어 놓을테니
언제나 오실런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높은 고개마다 산새들은 노래하는데
사랑하는 우리님은 소식이 없을까요
산이높아 못오시나 강이깊어 못오시나
이몸으로 구름다리 만들어 놓을테니
언제나 오실런지 눈물로 기다립니다
나는 진해에서 대학을 다닐 때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예쁘게 생겨 늘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더구나 고전무용을 전공하여 춤도 잘 추었다. 대학을 나와서도 날 추근거리며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최영철과 결혼하면서 나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기훈과 두 번째로 결혼했지만 역시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내가 세 번 째로 결혼한 남자는 부산에 거주하는 박중배였다. 그는 아내가 위암으로 사망하자 슬하에 초등학생인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직업이 외항선 선장이라 장기간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는 날이 많아 아이들을 돌봐 줄 가정부를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내가 면담을 하러 부산으로 박중배를 찾아 갔다. 박중배는 나와 면담을 하면서 내가 이혼하고 혼자 사는 독신녀인 데다가 빼어난 미모가 마음에 들어선지 결혼을 하자고 했다. 이렇게 해는 나는 세 번 째로 박중배와 결혼을 했다. 그의 나이는 54살이며 직업은 외항선 선장으로 연봉은 1억원이 넘었고 바다가 보이는 부산 해운대에서 고급 아파트까지 소유하고 있어 부유한 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