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단편소설 – 몰운대 달빛 <제1회>
몰운대 달빛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 5월이었다. 일본 대마도에서 배를 타고 도망쳐온 사람이 있었다. 노다사부로(野田三郞)라는 일본인으로 체격이 건장한 청년이었다. 노다사부로는 대마도에서 죄를 짓고 지명수배가 내리자 조선으로 도주할려고 새벽에 바다에 나가보니 어선이 한 척 떠 있었다. 노다사부로는 그 배를 타고 조선으로 항해를 시작하여 현해탄을 건너 도착한 곳은 조선의 다대포 해안가였다. 이때 마침 아미산 아래 해안가 넓은 백사장에는 무슨 잔치라도 벌리는지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그 중에는 멀리서 온 듯 등에 봇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노다사부로는 군중들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한 청년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날이 오무이까?”
청년은 조선말이 서툰 노다사부로의 얼굴을 한번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장군을 뽑는다고 하오.”
“쇼군(장군)이라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 오무이까?”
“창이나 칼 또는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을 말하오.”
“창이나 칼 또는 활...”
노다사부로는 입맛이 당기는지 목구멍으로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는 뜻밖이라는 듯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에 가서 말하면 되무이까?”
“저 가운데 앉은 분이 장군인데 희망자를 받고 있으니 가 보시오.”
노다사부로는 청년이 알려주는 곳을 보니 나무 의자에는 대 여섯명의 장정이 앉아 있었고, 그 가운데 장군이 앉은 앞에는 사 오십여 명의 청년들이 접수를 하느라 줄지어 서 있었다. 노다사부로는 접수를 할려고 줄지어 서 있는 대열에 섰다. 의자 가운데에 앉은 장군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체격이 건장하고 위풍이 당당해 보였다. 노다사부로는 자기 앞에 선 청년에게 말했다.
“직접 접수를 받고 있는 저 가운데 앉은 사람은 누구시무이까?”
“저 분은 정운 장군이시오.”
“정운 쇼군(장군)?”
정운(鄭雲) 장군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던 저 장군에게 자신의 무예 솜씨를 인정받아 장군이 되고 싶었다. 노다사부로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의자 가운데 앉은 정운 장군 앞에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시하자 정운 장군이 말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이루본서(일본) 왔서무이다.”
“뭐 일본?”
일본이란 말에 정운 장군은 뜻밖이란 뜻이 두 눈을 휘둥거렸다. 일본을 ‘이루본’ 이라고 발음하는 걸 보니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일본인이 분명한 것 같았다. 정운 장군은 말했다.
“일본 어디서 왔느냐?”
“쓰시마(대마도)에서 왔서무이다.”
“쓰시마라.. 대마도에서 무슨 이유로 조선에 왔느냐?”
노다사부로는 대마도에서 탈출하여 조선에 온 이유를 말했다. 노다사부로(野田三郞)의 아버지는 원래 조선(부산 사하) 사람이었다. 그런데 살기가 어려워 일본 땅 대마도로 밀항을 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대마도에서 요시꼬(吉子)라는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노다사부로를 낳았다. 세월이 흘러 노다사부로는 21살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노다사부로는 이웃 청년과 말다툼을 하다가 청년이 노다사부로에게
“너 오도상(아버지)은 조센징이다... 바가야로(바보자식)..”
하면서 욕설을 하자 노다사부로는 홧김에 주먹을 한방 날린 것이 그만 급소를 때려서 죽자 살인죄로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 조선으로 도주한 것이었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듣는 ‘조센징’ ‘바가야로“란 말은 욕설이나 다름이 없었다.
노다사부로는 어릴 때부터 일본 최고의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 병법을 배워 사무라이(武士)가 될려고 칼과 창을 다루어 무예를 익혀 기량이 매우 뛰어났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침략을 준비하느라 청년들을 대거 강제 징발하자 노다사부로는 일본이 아버지의 나라인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이 마음이 불쾌한 데다가 살인사건이 터지자 조선으로 도주한 것이었다. 정운 장군은 노다사부로에게 언제부터 무예를 배웠느냐고 묻자 네살 때부터인데 미야모토 무사시 병법 후계자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배웠다고 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 최고의 검성(劍星)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정운 장군은 무엇인가 종이에 열심히 적고 나서 말했다.
“일본이 조선을 치기 위해 청년들을 대거 징발하고 전쟁준비를 한다는 말이 사실이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