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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외교부 운영의 패러다임 바뀌어야

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보도를 보면 덩신밍(鄧新明 33)이란 중국인 여자가 한국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덩신밍은 상하이 총영사관의 주요 민원을 해결해 주고 그걸 바탕으로 친해진 우리 외교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중국인에 대한 한국 비자를 부정 발급 받는 등 혜택을 누리고 비자 발급 관련 서류, 외교관 비상연락망,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대본부 연락처 등도 빼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외교관들에게 공갈 협박도 서슴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 사건을 두고 중국 여성의 소파이 활동을 그린 영화 색계(色戒)의 한국판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탈선한 공직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외교관 인사 시스템은 5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전근대적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이어 일본에 의해 독도영유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외교 위기론’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인한 냉전체제 이후 우리나라가 외교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위기상황에서 제대로 벗어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미국과는 주한미군 주둔을 비롯한 동맹 문제로,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주장과 어업협정 때문에 큰 갈등을 겪었고,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왜곡 날조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러시아와도 구소련과 맺은 한.소수교를 위해 제공한 차관 문제 때문에 껄끄러운 관계였다. 한국의 ‘외교 위기론’은 대부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흐지부지 봉합되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국회에서 조차 전문 외교관 육성에 대한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외교, 안보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인재가 없이 어떻게 국제관계를 원활하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의문이 간다. 현재 전 세계에 산재한 1,000여 명에 이르는 외교관들은 대부분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외교관 경험이 없이 외국의 대사나 공사로 임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는 외교관으로써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외국에 주재하면서 국가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덩신밍(鄧新明) 스켄들 사건도 외교관 자질 미달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으로써의 자질을 다듬고 역량을 쌓기전에 외교관으로 나서는 것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임명된 권철현 주일 대사도 외교관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재출마 했으나 공천에 탈락하는 바람에 이명박 대통령이 주일 대사로 임명했다.

이처럼 외교관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사나 공사로 임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가간의 분쟁을 원활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 독도 영유권 문제만 하더라도 문제가 불그진 후에야 일본 외교부를 방문하여 항의하는 정도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해도 여자와 애정행각에 빠져 국가기밀 정보를 누출시키거나 덩신밍 스켄들과 같은 추잡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육군의 한 정훈장교가 북한의 여간첩과 동거하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외무고시 합격 연도를 따져서 인사를 하다보니 유능한 인물이 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 속에서 한숨만 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만일 우리나라처럼 철저히 외무고시 합격 연도를 따져서 인사를 하다보면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Hill)과 같은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나 중동 평화협상을 이끈 테니스 로스(Ross), 보스니어 평화협정을 타결시킨 리처드 홀부르크(Holbrooke) 같은 ‘스타 외교관’을 발굴할 수 없다. 이들은 세계가 인정하는 유능한 외교관이다.

더구나 4년전 주한 미대사관 일등 서기관에서 국무부 한국과장을 거쳐 대북 특사로 초특급 승진을 한 한국계 미국 외교관 성 김(Kim) 같은 사례는 한국의 외교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 외교부는 능력을 중시한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외무고시 oo기라는 개념이 없다. 자질을 다듬고 역량을 쌓지 않아 경쟁에서 도태되면 대사 타이틀을 달지 못한 채 공사급 보직에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한국 외교관들은 보직이 문제일뿐 대사로 퇴임할 가능성이 90%를 넘는다. 징계를 받거나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모두가 최소한 한 두번은 대사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외교관 인사 시스템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노력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노력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힘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 현장 경험에서 얻는 지식을 정치권력에 펼쳐 보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보다는 단순한 공무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밤새워 공부하면서 노력한 사람이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나 똑 같이 대우 받는 환경에서는 누가 굳이 노력할려고 하겠는가.

한국 외교부 운영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무능력하거나 방향을 잘못 설정한 정권에 의해서 반복되는 외교 위기 현상은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으며, 비록 등신민(鄧新明) 스켄들과 같은 사건이 아니라도 국제관계에서 낭패를 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문 외교관을 육성하는 로스쿨과 같은 대학원 수준의 교육기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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