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말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부처님은 29세 나이에 왕이 될 고귀한 신분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도 버리고 스스로 고행길에 나섰지만 35세 때에는 이 고행도 버렸다. 그리고 괴로움과 즐거움, 미망과 깨달음의 대립 관념을 바탕으로 한 고행 방법으로는 진실로 인생을 깨달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와 남의 분별을 초월한 수행을 하시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보리수 아래의 좌선이었다. 「내려 놓아라!」를 한자로 쓰면 「방하착(放下着)」이다. 착(着)은 별다른 뜻이 없는 어조사로서 명령형인 「방하(放下)」를 강조하는 글자다. 「방하」란 생김 그대로 「내려 놓아라」 「놓아 버려라」는 뜻이다. 어떤 분은 「지식을 앞 세우면 모가 나고, 정에 얽매이면 종잡을 수 없이 흐르며, 의지를 고집하면 답답하다」고 했다. 상대적인 저울질 하기를 놓아 버리지 않으면,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옛날 엄존자(嚴尊者)라는 수행자가 조주(趙州) 선사에게 물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손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조주선사가 대답했다. “놓아 버리게나(放下着)!” 엄존자는 의아해서 물었다. “모든 것을 버렸
칼럼 소련 핵무기 철수시킨 서독 슈미트 총리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 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슈미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슈미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슈미트는 1972년 미·중 간의
칼럼 운(運)에 의해 군주에 오른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대 국가의 도읍은 사각형의 성벽으로 이뤄져 있다. 그 이유는 도읍지가 될 만한 땅은 넓은 대지였고, 대지는 거대한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읍지는 사각형으로 확 트인 장소라야 사고력이 활력을 얻어 마음껏 표출된다. 해서 사람의 사고력도 사각형 안에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는 사람에게는 상상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도읍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독창성이나 창조성은 사고력이 좁은 직사각형 형태를 갖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사고력을 방어적으로 갖추어 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거부하기 용이하다. 사고력의 사방에 감정이라는 벽을 둘러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해 온 천지를 국가간의 경계처럼 극단적으로 좁혀 버렸다. 정(鄭)나라 때 일이다. 어느 날 자산(子産 : 鄭나라 穆公의 후손)은 나눌 이야기가 있어 비심(卑諶 : 鄭나라 대부)의 집을 찾아갔다. 비심이 물었다 “자산님,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 무렵 정나라는 진(秦), 위(衛), 노(魯), 주(周), 송(宋), 제(齊), 진(晉) 등 주변
칼럼 南∼北, 한반도 주인은 어느 쪽일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비자(韓非子)는 전국시대 때 한(韓)나라 여러 공자 중의 하나인 한비(韓非)의 저자이며 한자(韓子)라고도 한다. 비록 말더듬이여서 말은 잘하지 못하였으나 한비자는 저술에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찍이 조국인 한나라가 점차 쇠망할 것을 알고 왕에게 글을 올려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아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하고 한나라는 쇠망의 길로 들어갔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현명한 신하의 간언을 듣지 않고 간신에 의해 오히려 충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어 죽이거나 유배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했다. 반면 쇠망한 나라가 현명한 신하의 말을 들고 부강한 나라가 된 경우도 있다. 정(鄭)나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진(秦)나라 황제는 법치를 내세웠지만 백성을 위한 법이 아니라 황제를 위한 법이였기에 만리장성 등을 건설하느라 백성에게 가혹한 세금과 부역을 강요했다. 그러자 각지에서 군웅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나라는 멸망했다. 나라가 멸망에 이르자 황제는 “아아, 내가 이 사람(한비자)을 만나서 서로
칼럼 현명한 신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신하 중에는 권세욕에 가득찬 간악한 신하와 매사에 공정하고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현명한 신하를 가시처럼 미워하던 간악한 신하는 현명한 신하가 임금을 해치려 한다고 임금에게 거짓으로 일러 바쳤다. 포악한 임금은 그의 말을 듣고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 그를 처단하라고 엄명했다. "방법이야 있사옵니다. 단지 속에 「생(生)」와 「사(死)」를 각기 써놓은 쪽지 두 개를 넣고 내일 아침에 폐하 앞에서 제비를 뽑게 한 다음, 「생」자를 뽑으면 살려주고 「사」자를 뽑으면 죽이기로 하시옵서.“ 임금은 말했다. ”거참 묘한 방법이군, 그런데 꼭 「사」자를 뽑게 해야 하지 않느냐?“ 간악한 신하는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임금을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염려마십시오 폐하!“ ”음, 그러면 경을 믿고 있겠노라!“ 간악한 신하는 임금이 수락하자 하인을 시켜 쪽지 두 개에 모두 「사」자를 써서 단지 속에 넣게 했다. 간악한 신하의 흉계를 알아차린 하인은 이 일을 즉시 현명한 신하에게 알려주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다가 묘한 방법을 생각해 낸 현명한 신하는 아침에 임금이 호출하자 궁궐안
칼럼 공부 잘 하는 방법, 통째로 외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지방, 중앙 언론사에서 취재 기자를 공모할 때 자격을 4년제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특히 의사, 변호사 등 고학력 전문 지식인을 채용하여 질병, 법률 등 전문지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지역 신문사의 경우, 기자가 고등학교도 졸업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만한 데스크 칼럼(내용)이 더러 보인다. 제목은 짧고 함축적이어야 하는데 길다는 것과 동일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학력 기자라면 동일한 내용(소재)의 기사를 연속으로 쓰진 않는다. 저학력자는 사물을 보는 안목이 낮아 소재 파악과 개념 분석에 결점을 노출시킨다. 이것이 언론사가 고학력을 요구하는 첫째 이유다. 나에겐 어릴 때부터 공부외엔 삶에 즐거움이 없다. 지금도 공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해서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미국,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의 저서를 구입하여 공부하면서 지식을 축적해 간다. 공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분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칼럼 부자 사주와 빈천한 사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 주일을 계속하면 성실한 것, 한 달을 계속하면 신의가 있는 것, 일 년을 계속하면 생활이 변할 것, 십 년을 계속하면 인생이 바뀔 것, 세상 모든 큰 일은 아주 작은 일을 계속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자도 남자의 사주가 좋은 사람을 골라서 결혼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재산이나 겉모습만 보고 결혼했다가 성격 등이 맞지 않아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자기에게 맞는 남편을 고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인에게 궁합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여자가 원하는 남자 사주명국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남자의 명국이 너무 강하지 말아야 여자를 을(乙)의 관계로 알고 꺾는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너무 나약하면 남편으로 맞이한 그 사람의 활동력이 없으니, 무능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남자의 사주명국은 약간은 신강사주라야 좋다. 그리고 남자의 명국에서는 정재(正財)나 편재(偏財)를 아내로 보기 때문에 아내가 되는 사람인 사주에 정재나 편재가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 역시 한 자는 천간(天干)에 그리고 또 한자는 지지(地支)에 들어 있어야만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바람을 불러 일으키
칼럼 현명한 신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에 한 임금이 있었는데, 신하 중에는 권세욕에 가득찬 간악한 신하와 매사에 공정하고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현명한 신하를 가시처럼 미워하던 간악한 신하는 현명한 신하가 임금을 해치려 한다고 임금에게 거짓으로 일러 바쳤다. 포악한 임금은 그의 말을 듣고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 그를 처단하라고 엄명했다. "방법이야 있사옵니다. 단지 속에 「생(生)」와 「사(死)」를 각기 써놓은 쪽지 두 개를 넣고 내일 아침에 폐하 앞에서 제비를 뽑게 한 다음, 「생」자를 뽑으면 살려주고 「사」자를 뽑으면 죽이기로 하시옵서.“ 임금은 말했다. ”거참 묘한 방법이군, 그런데 꼭 「사」자를 뽑게 해야 하지 않느냐?“ 간악한 신하는 간사한 웃음을 띠고 임금을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염려마십시오 폐하!“ ”음, 그러면 경을 믿고 있겠노라!“ 간악한 신하는 임금이 수락하자 하인을 시켜 쪽지 두 개에 모두 「사」자를 써서 단지 속에 넣게 했다. 간악한 신하의 흉계를 알아차린 하인은 이 일을 즉시 현명한 신하에게 알려주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다가 묘한 방법을 생각해 낸 현명한 신하는 아침에 임금이 호출하자 궁궐안
칼럼 저절로 생겨날 수 없는 물리법칙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997년에 궤도선인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가 화성에 도착했다. 이 우주선을 통해 화성에 한때 강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화성의 정확한 지형도가 작성되어 무엇보다도, 가장 높은 지점과 가장 낮은 지점의 고도 차이가 29km가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지구는 그 차이가 19km를 조금 넘는 정도다. 화성에서 가장 낮은 지점은 커다란 소행성과의 충돌로 형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광활한 헬라스 분지에 있다. 가장 높은 지점은 높이가 21km에 이르는 거대한 올림포스몬스 화산의 정상이다. 서베이어 호는 모래 언덕으로 이루어진 드넓은 구릉 지대가 이동하는 모습과 지름이 18m 이상 되는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 그리고 새로 형성된 협곡을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했다. 또한 다른 장비를 사용해 화성 표면에 있는 암석들이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밝혀냈다. 2008년 5월 25일 화성에 무사히 안착한 피닉스 마스 랜더의 주된 임무는 바로 이 얼음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 우주선은 화성의 대기와 극지방의 영구 동토를 분석할 수 있는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
칼럼 옛날일 문제 삼는 인간은 상대하지 말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영국의 유명한 죠지 노엘 고든(바이던 경)은 일찍이 자신의 저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도 나를 위해서 시계가 시간을 다시 치도록(알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여기에 대해 뉴욕 세인트 존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심리학 교수인 웨인 W. 다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희생시키려고 계획하는 인간은 확실히 과거의 일에 초점을 맞추어 갖가지 전술을 만들어 낸다. 그 중에서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말은 가장 일반적이고 위력이 있는 전술이다’ 그러면서 ‘왜 그런 방법으로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에 한 일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이나 변명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매우 교묘하게 화제를 현재로 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로 바뀌면 상대에게 유리해 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떠한 대답을 하더라도 비웃음을 받거나 거절당할 뿐이므로 상대는 더욱 더 굳게 방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웨인 W. 다이어는 이어서 ‘전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왜 지금은 달리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불변의 논법이다.
칼럼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앙시앵 레짐의 프랑스는 구조적으로 모순이 가득찬 사회였다. 농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압제로 작용하고 있었고, 신분제(1신분∼성직자, 2신분∼귀족, 3신분∼평민)는 1750년 이후 새로 대두하는 계급 질서에 대한 질곡으로 작용하였으며, 통치체제로서의 절대 왕정은 나름의 개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봉건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제반 모순들과 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은 왕실이 당면한 재정적 위기였다. 루이 14세 통치 말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왕실의 재정적 위기는 미국독립전쟁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안된 귀족에 대한 민세 폐지안이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절대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반동이 일어났다. 결국 이것이 삼부회를 소집하게 된 단초가 되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막이 올랐다. 1789년 삼부회 소집에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나폴레옹은 이 사건의 핵심적 인물에 서 있었다. 포병장교인 나폴레옹이 영국함대와의 첫 교전에서 부하사관인 쥐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들로 하여금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하는 것, 그게 지도자
- 소크라테스와 사과(apple) - 인류의 등불이 돼 준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4대 성인이라고 한다. 이들 중 왼 종일 아테네 거리를 돌며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설하고, 저녁 한 끼 대접받는 극 청빈의 삶을 살았던 소크라테스! 악처의 대명사가 된 크산티페라는 아내를 두었던 소크라테스는 제자로부터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까, 안 하는 것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소크라테스는 “결혼을 하게. 온순한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사나운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라고 답하며 결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고 한다. 또 다른 날 날 소크라테스는 한 제자에게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자, 아무 대답 없이 불긋불긋 잘 익은 사과 향기가 코를 찌르는 과수원으로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과수원이 시작되는 곳에서 부터 끝나는 곳까지 걸어가며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따 와라. 한 번 지나치면 다시 뒤로 갈 수 없으며 선택은 단 한 번뿐이다.” 제자들은 과수원을 걸으며 가장 크고 좋은 잘 읽은 사과를 따서, 과수원 끝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소크라테스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