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생의 고통이 엮어낸 불후의 명작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문장은 서한(西漢)의 양(兩), 사마(司馬)」라는 말이 있다. 양사마는 한부(漢賦)의 대가 사마상여(司馬相如) <태사공서 : 太史公書> 즉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을 말한다. 사마천은 역사학자이며 위대한 문학가이다. 그는 만권의 책을 읽었고 만리(萬里)를 여행했다고 한다. 그는 가장 심오한 학문인 하늘과 사람을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였으며, 시대를 초월한 역사가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로 그가 남긴 작품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천재적인 인물을 누가 무슨 이유로 궁형에 처했는가? 궁형이란 남근(男根)을 떼어버리는 형벌로서 부형(腐刑)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떼어낸 자리의 상처에서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자가 남자의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된다는 가혹한 형벌이기도 하다. 한(韓)나라의 형법상으로는 사형 다음의 형벌이며, 그 굴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사형에 비할바가 아니다. 사마천은 28세에 아버지를 잃고 사관으로 임명됐다. 그 당시 이릉은 뛰어난 명장이었다. 불
칼럼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아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신혼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달성하기로 결심했다. 50세가 되면 퇴직을 하고, 평소에 간절히 염원했던 해외 이민으로 온 가족이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이 꿈을 위해 돈을 모을려고 악착같이 부업도 하면서 하루 종일 일에만 매달렸다. 너무나 바빠서 어떤 날은 부부간에 대화도 나누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이민을 가게 되었다. 한가롭게 지내는 생활에 익숙하지 않는 두 사람은 하루종일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에 자주 거친 말다툼이 오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제야 두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에 여유를 누려보지 않는 사람이 한가한 생활을 견디어 내겠는가? 이런 깨달음을 알고 고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도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같이 영화관에 가고 공원이나 야외로 산책을 가기도 하면서 두 사람은 여가 생활을 즐겼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야
칼럼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전국시대 오타 도칸은 무장으로 에도 성을 축성한 인물이다. 도칸의 본명은 스케나가(資長)인데 후에 삭발하고 도칸으로 개명했다. 부친의 이름은 스케키요(資靑)이다. 도칸은 어린시절 매우 영리했고 응석받이였는데,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우 거만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올바른 인물이 될 수 없겠어.” 이렇게 판단한 도칸의 아버지는 스케키요는 도칸을 가마쿠라(鎌倉)에 있는 사찰로 보내면서 말했다. “스님에게 교육을 받아 좀 더 기품있는 인간이 되어라” 수행을 끝낸 도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거만한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실망한 아버지는 어느날 도칸을 불러 장지문을 가리켰다. “저 장지문을 보아라” 도칸의 눈이 장지문 쪽으로 향했다. “저 문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장지문은 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장지문처럼 성격이 곧아야 하는 것이야. 만약 장지문이 구부러져 있다면 쓰러져버린다.” 아버지의 말에 도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스우냐?” 아버지가
칼럼 거미와 부처님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각사’라는 사찰에는 향을 피우고 예불을 올리는 사람들로 늘 북적댔다. 이 사찰 대들보에는 거미 한 마리가 그물을 지어 살고 있었다. 천년 동안 매일 향을 맡으며 수련을 한 거미는 불심이 쌓이기 시작했다. 부처님이 향이 자욱한 것을 보고 사람들의 깊은 신심을 기뻐했다. 부처님은 거미를 발견하고 물었다. “너와 내가 서로 만난 것도 인연일 것이다. 보아하니 너는 천년 동안 수련을 했나 보구나. 내가 한 가지 물을테니 대답해 보아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얻지 못한 것’과 ‘막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처님이 떠나고 천년의 시간이 지났다. 거미는 여전히 사찰의 대들보 위에서 수련을 계속하면서 불심을 쌓았다. 부처님이 다시 사찰에 와서 거미에게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천년 전에 내가 물었던 그 질문을 기억하느냐?“ “예.” “그렇다면 그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느냐?” “여전히 제 생각에는 ‘얻지 못한 것’과 ‘막 잃어버린 것’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같습니다.” “흠, 천년 후에 찾아 올테니 좀 더 생각해 보아라” 다
칼럼 망국,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길 (3)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월남(南베트남)은 1973년 월맹(北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고 주월 미군이 철수했다. 당시 월남에서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인사들은 얼마 후 타살체로 발견됐는데 당시 도보에 따르면 1973년까지 연평균 무려 840여 명이나 암살 당했다. 월맹 공산군이 남침 총공세를 감행했을 때 반전평화 무드에 젖어 전의를 상실한 월남군대는 싸우지 않고 패주를 거듭하자 주월 미군은 월남에서 철수했다. 당시 월남은 120만 병력을 가진 세계 4위의 군사강국이었다. 하지만 월맹 공산군에 대한 주적 개념이 없어진 상태에서 그 누구도 월맹 공산군이 남침 총공세를 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 안보를 소홀히 하도록 하면서 패망했다. 그때 대통령 후보자 쭝 딘쥬(Truong Dinh Azu)가 거물급 비밀공산당 프락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월남이 패망한 후 통일된 베트남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제일 먼저 공산화 협조자들(월남에서 암약한 공산주의자) 공개 처형됐다. 월남의 군인과 경찰은 수용소로 보내졌고,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 언
칼럼 구미시장은 군림하는 자세를 버려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장세용 구미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후 지금까지 그의 언행을 보면 지나친 좌편향 측면도 없지 않았다. 시장에 당선되기 바쁘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업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개 시장이 전직 대통령 공적을 임의로 지우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구미시장은 전 구미시민을 대표하는 자리이지 자신을 지지해 준 반쪽 시민만을 대표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언행을 보면 그것이 좌편향된 정치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모든 구미시민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역량은 매우 부족해 보인다. 이는 구미시민을 상대로 막말과 역사왜곡, 정치편향적 시정을 일삼는 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의 친손자 허경성 씨(대구시 거주)와 부인 이창숙 씨는 수자원이 조성한 물빛공원에 있는 왕산광장과 누각의 명칭을 반대하며 장세용 시장과 면담을 가졌는데 장 시장은 연로한 시민에게 반말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이창숙 씨는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장세용 시장은 “구미시정과 관
칼럼 망국,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길 (1)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노맹은 1991년을 전후해서 민중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목표로 결성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약칭이다. 사노맹은 1988년 4월 1일 백태웅, 박노해 등을 비롯한 약 200여 명의 조직원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만들었고, 1989년 11월 12일 정식으로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사회주의적 제도로의 변혁, 진보적인 노동자정당 건설 등을 목표로 활동했다. 사노맹사건으로 기소된 인원은 총 300여 명으로, 해방 이후 최대의 조직사건이다. 문제는 현재에도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는 자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북, 종북 좌익세력들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자라고 했으며, 장관을 임명한 문대통령도 소송에서 법원은 문재인 씨에게 공산주의자라고 판결했다.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를 지키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안보와 경제를 챙기는 일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망가져 버리자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아우성이다. 국가 안보와 경제가 폭망한 상황이다. 향후에도 문대통령은 국민들의 생각과는 다른 자신이 생각한 방
칼럼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전국시대 오타 도칸은 무장으로 에도 성을 축성한 인물이다. 도칸의 본명은 스케나가(資長)인데 후에 삭발하고 도칸으로 개명했다. 부친의 이름은 스케키요(資靑)이다. 도칸은 어린시절 매우 영리했고 응석받이였는데,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우 거만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올바른 인물이 될 수 없겠어.” 이렇게 판단한 도칸의 아버지는 스케키요는 도칸을 가마쿠라(鎌倉)에 있는 사찰로 보내면서 말했다. “스님에게 교육을 받아 좀 더 기품있는 인간이 되어라” 수행을 끝낸 도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거만한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실망한 아버지는 어느날 도칸을 불러 장지문을 가리켰다. “저 장지문을 보아라” 도칸의 눈이 장지문 쪽으로 향했다. “저 문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장지문은 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장지문처럼 성격이 곧아야 하는 것이야. 만약 장지문이 구부러져 있다면 쓰러져버린다.” 아버지의 말에 도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스우냐?” 아버지가 묻자
칼럼 선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불교의 선(仙)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혜가 담겨 있다. 즉 불교의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子)이다. 선의 본질은 스승과 제자간의 생명이 서로 교차하는 것인데, 이는 문자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글과 말에는 의사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의미다. 어느 불교학자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불법문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글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어느 선사는 ‘설명을 듣거나 읽고 의미를 생각해서는 안되고, 본질을 먼저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자를 글자로만 읽으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세월을 통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며, 만물에 부처님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의 참된 의미를 파악한 뒤에, 언어나 문자에 접해야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어느 선사는 ’하늘이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네 계절이 바뀌며 운행하는 사이에 만물은 셍겨난다‘고 하면서 ’소리도 향기도 없이 언제나 천지는 글자 없는 경전을 펼쳐 보인다‘
칼럼 오래된 녹을 방치하면 쇠까지 망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945년 4월 20일, 소련군의 포탄이 히틀러의 벙커에 비오듯 쏟아졌다. 마침 이 날은 히틀러 생일이었다. 히틀러는 참모들에게 반격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히틀러의 명령을 받들어야 할 부대는 이미 전멸하여 없었고, 지휘할 장군도 이미 전사하고 없었다. 승기를 잡은 소련군이 독일로 진격해 오자, 히틀러는 다른 벙커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전쟁에만 미친 히틀러는 전멸하여 없어진 부대에 계속 돌격명령을 내리면서 승리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을 판단하지 못한 히틀러는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과 동반 자살했다. 보도에 따르면 문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해 "일본에 경제보복을 할 것이며, 다시는 지지 않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히틀러가 전사하고 없는 장병들에게 적을 공격하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뉴욕 세인트 존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심리학 박사인 ‘웨인 W. 다이어 : Wwaynew. Dyer) 교수는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세계에서 생
칼럼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전국시대 오타 도칸은 무장으로 에도 성을 축성한 인물이다. 도칸의 본명은 스케나가(資長)인데 후에 삭발하고 도칸으로 개명했다. 부친의 이름은 스케키요(資靑)이다. 도칸은 어린시절 매우 영리했고 응석받이였는데,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우 거만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올바른 인물이 될 수 없겠어.” 이렇게 판단한 도칸의 아버지는 스케키요는 도칸을 가마쿠라(鎌倉)에 있는 사찰로 보내면서 말했다. “스님에게 교육을 받아 좀 더 기품있는 인간이 되어라” 수행을 끝낸 도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거만한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실망한 아버지는 어느날 도칸을 불러 장지문을 가리켰다. “저 장지문을 보아라” 도칸의 눈이 장지문 쪽으로 향했다. “저 문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장지문은 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장지문처럼 성격이 곧아야 하는 것이야. 만약 장지문이 구부러져 있다면 쓰러져버린다.” 아버지의 말에 도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스우냐?” 아버지가
칼럼 조국 후보자 사태, 향후 파장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현 법무부 장관 조국 후보자는 과거에 강연, 강의를 하며 돈이면 다 입학할 수 있는 대학에 대해 사회적 비판을 한 적이 있었지만 본인의 발언과는 다른 행동이 밝혀져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내로남불' 등의 말로 조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조국의 딸 조민의 논문이다. 조민은 고교시절 병리학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확인돼 밝혀졌다. 조민의 학위가 단국대학 내부 시스템에 박사로 기록이 되었다. 이는 대학의 검증을 통과하려고 조씨의 고교생 신분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조민이 재학중인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확보한 자료에 근거한 보도를 보면 조민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 까지 6학기 연달아 매학기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기 직전인 2015년 1학기와 마지막 장학금을 받은 2018년 2학기에 각각 몇 개 과목에서 낙제해 유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장학금은 지도교수인 A교수는 조민이 1학년 때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