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의로 살아가면 인생이 편안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장을 보러 집을 나서자, 어린 아들이 어머니를 따라 가겠다고 치맛자락을 잡고 울며 떼를 쓰자 아내는 아들에게 말했다. “착하지, 엄마가 잠간 장에 갔다고 돌아오면 돼지를 잡아 맛있게 볶아서 줄게, 잠시만 기다려라.” 돼지고기를 맛있게 볶아 준다는 말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놓아 주었다. 얼마 후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깜짝 놀았다. 남편이 칼을 갈며 돼지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재빨리 가까이 남편에게도 달려가 말했다. “아니 정말로 돼지를 잡을려고 하십니까?” “그렇소” “아까는 아이를 달랠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정말로 돼지를 잡겠다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증자는 심각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고 말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게 마련이오. 그런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가르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오? 오늘 내 자식에게 거짓말을 하면 다음에는 옳은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가르치기
칼럼 단추 하나 때문에 참패한 나폴레옹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폴레옹 군대는 가장 막강했던 1812년 6월에는 병력수가 60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막강한 군대가 그해 12월에는 1만명 이만으로 대폭 줄었다. 나폴레옹은 빨리 군대를 재건하고 불안정한 수도의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근위대를 뒤따라 오게 하고 일부 측근들만 대동하여 전선에서 출발, 파리로 향했다. 총지휘권은 뮈라에게 인계했는데 나폴리 왕이기도 했던 뮈라는 빌뉴스를 포기하고 남은 군대와 함께 얼어붙은 네만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후퇴한 후,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왕국 내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젠 드 보아르네에게 총지휘권을 넘겨주고 나폴리로 떠났다. 남아 있는 병사는 원정 직전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아 네만 강 서쪽에 도착한 때에는 나폴레옹 병력은 겨우 5천여 명만이 싸울 수 있는 상태였다. 마크도날이 이끄는 라트비아의 나폴레옹군은 그해 12월 20일 철수를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남은 병력은 누더기 같은 군복을 걸치고 서(西)러시아 보리소프 인근의 베레지나 강을 건너 모스코바로부터 멀어지는 길고 긴 퇴각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러시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생존한
칼럼 적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쟁에 있어 수비는 내가 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으나, 적에게 이기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옛부터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철벽 수비를 한 다음, 적이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943년 1월, 스탈린 그라드에서 승리한 후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최고 지휘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교묘한 후퇴작전과 보급로 차단으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단에서 진퇴양난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소련군을 남북에서 협공하여 격파시키고, 단번에 동부전선의 전황을 만회하려는 히틀러 총통의 제안으로 실행된 것이 「세계 최대의 전차전」이라는 불리는 「치타델 작전」이다. 군사적으로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었으나, 히틀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즉 작전 개시를 너무 늦춘 것이다. 그는 이 계획을 더욱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해 소련의 우수한 T-34 중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를 확보하기 위해 3개월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결국 소년측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 이때 소련군이 취한 전법은
칼럼 사슴도 섰다가 앉았다가 하지요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시골에 청년이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가 매우 예뻤다. 그래서 이 청년은 아내를 매우 사랑해 밤마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사는 동안 아내는 부부관계의 희열을 알았고, 이웃에 사는 한 총각과 눈이 맞아 두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남편은 아내가 이웃 총각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아내가 너무 예쁘니 항상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하루는 종일 집을 떠나 있게 되자 그는 아내에게 한 가지 장치를 해 놓으려고 마음먹고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당신이 너무 예쁘니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게 되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당신 옥문 양쪽 허벅자에 사슴을 한 마리씩 그려 놓을테니 내가 없는 동안 누가 당신을 유혹해도 절대로 넘어가선 안돼요. 내가 돌아 와서 그려 놓은 사슴이 그대로 선명하게 있어야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지워졌으면 당신을 의심을 의심할 것이오.” “예. 그렇게 해 놓고 마음 놓고 잘 다녀와요.” 아내는 옷을 벗고 반듯이 눕자 남편은 벼룻집을 가지고 와서 먹을 갈더니 오른 손에 붓을 들고 왼손으로는 아내의 옥문 두둑을 짚고 몸을 구부려 열심히 양쪽 허벅지
칼럼 실패해도 성공적으로 실패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당신이 현재 2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2억이겠지만 잘만 굴리면 3억도 되고 4억도 될 수 있다. 2억이 4억으로 되면 누구나 사용하는 게 좋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불리기 위한 돈의 사용법, 즉 현명한 투자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골동품 수집가는 오랜 세월 수집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눈이 트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역시 돈을 쓰다 보면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현명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 해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골동품 수집가 역시 처음엔 몇 번씩 속아 비싼 가격에 구입하기도 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지출은 「수업료」인 셈이다. 경영자는 누구보다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수업료를 내는 것을 꺼려해서는 배울수도 없고 성장 할 수도 없다.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경영자는 적극적인 투자를 결코
칼럼 통치자는 사람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다. 그때 전관(典冠)이 군주가 잠든 것을 보고는 추워서 감기라도 들까 염려하여 옥체위에 옷을 덮어 주었다. 소후는 잠에서 깨어나자 대단히 기뻐하면서 신하들에게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느냐고 묻자 신하들은 전관이라고 하자, 관모(冠帽)에 관한 일을 맡고 있는 전의(典衣)와 옷을 덮어준 전관 두 사람을 처벌했다. 여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에게 옷을 덮어 준 것이 왜 나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왜 처벌했을까? 그 이유는 임금과 신하간에는 사사로운 개인 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규정 때문이다. 군주가 낮잠을 자고 있다면 옷을 담당하고 있는 내관이 덮어 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내관은 방심하여, 다른 사람으로의 손을 빌렸으므로 결국 직무를 태만히 했고, 전관은 자기의 직무가 아닌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군주의 의관을 담당하는 내관이 있는데, 전관이 자신의 직무 범위를 벗어 났다는 것이다. 소후는 추위에 병에 걸리는 것을 즐겼던 것이 아니라 직무의 권한을 범하는 것은 감기보다도 더 큰 해(害)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칼럼 핵 보유국이 핵 포기한 국가는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칼럼 공허한 인생을 살지 말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태인 속담에 「만일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면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지지 않는 것을 하늘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몸이 매우 불편한 어느 미국인 집에 도둑이 들었다. 상당한 재산을 잃은 이 미국인에게 어느 친구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런 내용의 답장을 썼다. 「편지 고맙네, 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마음이 아주 편하네. 왜냐하면 도둑이 내 물건만 훔쳤갔지 내 생명은 다치게 하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편한 이유이고, 도둑이 가져간 것은 내 재산의 일부라 매우 다행스러운 것이 두 번 편안한 이유이고, 전 재산이 아니라 일부를 가지고 간 것이 세 번째 편안한 이유라네. 그런데 그 보다 더 다행한 것은 내가 도둑질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것을 훔쳐 갔다는 것일세.」 언듯 들으면 바보 같이 들리는 말이지만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한 고난이나 역경을 만나도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굴까? 바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즈벨트’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네 번이나 연임한 대통령이다. 이처럼 위대한 사람들의
칼럼 인생에 목표가 없으면 표류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누구나 인생에 목표가 없으면 표류하기 마련이다. 목표는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의 질서를 세우는 근본 지침이다. 인생을 정말로 충실하게, 탄탄하게 하는 것은 장기적이면서 근원적인 목표이다. 행복이란 그 목표를 추구하며, 달성해 가는 것이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어른이 되고서도 목표를 찾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목표가 명확해지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도 저절로 구체화 된다. 공부하는 방법론에 신뢰가 필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의 효과를 알지 못하면 노력을 계속하기 힘들다. 공부를 하다보면 외어야 할 것이 있는데, 외운다는 것은 뇌속에서 먼저 단기 기억으로 보존된다. 단기 기억은 그대로 두면 지워져 버린다. 외운 내용을 뇌에 제대로 장착시키기 위해서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한 뒤에 보존해야 합니다. 단기 기억은 깨어있는 동안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점점 장기 기억으로 바뀐다. 그래서 암기는 취침 직전에 하는 게 좋다. 공부란 합리성과 효율성이 중요하다. 몸의 메커니즘을 모두 활용한 과학적인 트레이링이다. 모든 생물들이 그렇지만 우수한 것들로만 이
칼럼 아버지가 밭에 숨겨 놓은 지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 국가의 부(富)는 그 국가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검약하는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포드 전 대통령 당 시 서울 명동에 있는 조선호텔에 묶었는데, 그때 호텔 지하 세탁부에서 포드 대통령의 옷을 다림질 했던 사람들이 그의 옷을 보고 크게 놀랐다. 미국 대통령의 양복 바지에 구멍이 나 있었고, 웃옷은 안감의 실이 터져 있었던 것이다. 호텔 세탁부가 도저히 그냥 다림질을 할 수가 없어서 이것들을 꿰맨 뒤에 다림질을 했는데 부유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토록 검소했던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은 부자 나라의 대통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엄청난 거부였다. 이처럼 진짜 부자는 검약한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얼마나 저축하고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의 실생활의 지혜를 얼마가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진짜 부자는 검약한다. 남보다 뛰어난 생각을 하지 못하면 빈곤을 면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동물보다 향상된 존재가 되려면 본능적인 충동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
칼럼 기억술은 꼭 필요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기억술은 고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미 그리스 시대에 히피아스니 시모니데스가 기억술을 가르쳤다. 시모니데스의 방법은 만찬회에서 당한 사고를 계기로 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식사도중 건물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 그 자리에 있다가 살아난 시모니데스는 모든 참석자의 이름을 기억해서 시체 확인에 공헌했다. 좌석의 상황을 생각하자 그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모니데스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자리 배치법」이라는 기억술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자기 집처럼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건물을 연상한다. 그리고 각 방에 기억해야 할 대상을 놓았다고 상상하고 관련을 갖는다. 예를 들면 「현관으로 들어간 다음 거실로 들어 가고...」라는 순서에 따라서 그 곳에 배치한 대상을 떠올리는 방법이다. 유럽에서는 14∼16세기에 걸쳐 기억술이 유행해서 그때 많은 책이 저술되었다. 16세기 기억술을 중국에 전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 하나 하나에 이미지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 하나 하나에 기억에 의해 불려 나올 때까지 조용하게 쉴 수
칼럼 5월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본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5월은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있는 등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은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로 매년 5월 5일이면 법정 공휴일이다. 3. 1운동 이후 소파(小派)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 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해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을 공표하고 기념행사를 치룸으로써 비로소 어린이날의 역사가 되었다.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계속 행사를 치르다가 1939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뒤 1946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5037호)에 따라 공휴일로 정해진 이래 오늘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어버이날의 기원은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살았던 ‘안나 자비스’(Anna jarvis 1864 - 194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