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부 습관은 인생을 변화시킨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프로(professional)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네 가지는 일과 교육연수 그리고 공부와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장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네 가지 요소 가운데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나 된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겹고 능력 이상의 업무를 배당 받았다면 담대히 맞서서 끝까지 완수해야만 성공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다. 전혀 생소한 분야의 일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일을 해 낼수 있을까” 하고 초조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안해 하지 말고 맞서서 극복해 나가는 길만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사람은 업무 환경에 따라 성장한다는 말도 있다. 이는 반대로 업무환경에 따라 성장한다거나 오히려 퇴보 또는 정체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신입사원이 한 부서에만 오래 있는 것보다는 같은 분야에서 최대한 부서를 이동해 나간다면 성장 속도는 훨씬 빨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당면한 업무에만 치중하는 사람은 지식과 경험에서 다소 불리하다. 이런 헛점을 보완하기 위해
칼럼 많은 색깔의 인종, 어떻게 생겨났을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성서는 첫 인간 아담의 피부가 어떤 색이며 많은 색깔의 인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구체적으로 언급은 없으나 몇 가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종이란 유전될 수 있고, 그 집단을 독특한 인간형으로 분리하기에 충분한 신체적 특질의 특정한 결합을 특성으로 공유하는 인류의 한 구분을 의미하는데 인종들이 서로 결혼하고 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실제로는 한 종류에 속하며 모두가 인간 가족의 구성원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다양한 인종은 인류 가운데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이 중 한 가지 부면에 불과하다. 다양한 인종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시던 날에 그분은 그를 하느님을 닮은 모양으로 만드셨다.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 후에 그분은 그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의 이름을 사람(인류)이라고 부르셨다. 하느님이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땅을 정복하여라.” 하였다. 모든 인류는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며 어떤 인종들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하든지 간에
칼럼 임페리움 맛 알면 독재 권력 포기 못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화는 누구나 또는 누구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과 호랑이는 대화할 수 없지만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언제나 대화할 수 있다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념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한 나라를 손안에 틀어쥐고 통치하는 독재자란 괴물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유럽에 전쟁의 먹구름이 감돌던 1938년 9월 히틀러와 대화를 통해 야망에 불타는 그와 대화를 해 볼려고 영국 수상 ‘네빌 쳄벌린’은 뮌헨으로 갔다. 히틀러와 평화협정도 맺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히틀러는 폴란드를 전격 침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중국 대륙의 여러 나라 국가가 진시황과 대화에서 얻은 것은 전쟁뿐이었다. 평화스럽게 지내자고 약속해 놓고 뒷퉁수를 쳤다. 그러다보니 진시황 자신도 언제 배신(침공)을 당할지 몰라 만리장성을 쌓았다. 독재자 프랑코 총통도 스탈린도 대화의 대상은 아니었다.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과 카타피도 대화로 통하는 사람이었다면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럼 꽃잎은 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벽암록」의 파초혜(破草鞋)란 오래 신어서 망가진 짚신을 뜻하는데 아무 소용도 없 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원시인이 아니라면 사람에게는 신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공부를 해서 지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필요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신발(shoes)이나 지식(learning)도 낡으면 쓸모 없어지지만 새 것도 때로는 소용이 없게 된다. 선(禪) 수행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지식은 망가진 짚신과 같다. 인간이 참된 의미에서 알몸이 되어야 할 때는 아무리 높은 수준의 지식도, 아니 수준이 높은 지식일수록 오히려 망가진 짚신처럼 거추장스럽게 달라 붙은 장신구에 지나지 않는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되면 망가진 짚신을 다시 주워 올린다. 옛날 스님들은 망가진 짚신을 다시 고쳐 신기도 하고 그대로 썩어 퇴비를 만들기도 했다. 사람은 짚신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지식도 자기 마음의 밑거름으로 하거나 사람답게 살기위한 지혜를 얻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14세기 고승 관산혜현(關山慧玄) 스님은 한평생 설법이나 문필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몸으로 선을
칼럼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여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청년시절 자부심과 승부욕이 매우 강했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인 구변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의 인간관계는 좋지 않았다. 어느 날 프랭클린은 교수를 찾아가게 되었다. 무심코 교수의 집안으로 들어서던 프랭크린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키가 큰 트랭크린이 유난히 지붕이 낮은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머리 숙이는 것을 몰라 문틀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다. 이를 본 교수가 싱긋 웃으며 이런 충고의 말을 던졌다. “이 보게, 이곳에 들어서자마다 교훈 하나를 잘 얻었구만,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자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걸세.” 여기서 큰 깨달음을 얻은 프랭클린은 사소한 일에도 승부욕을 불태우며 잘난척 하던 자신의 단점을 고치고 겸손함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사람이 되었고, 뛰어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쉽사리 패배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이
칼럼 인생의 경지를 초월하여 살아가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8월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나팔꽃은 아침 이슬을 머금었고 오동나무 잎사귀는 가을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진실은 어떻게 체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승인 조주선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솜은 절로 날아 다닌다.” 선사는 이렇게 눈앞의 풍경을 들어 진리를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시인이 읊은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정해진 시간 속으로 남김없이 돌아가네..” 이 시를 읽다보면 삶의 무상함을 흔히 꽃이 지는 것에 비유하고, 그것을 비바람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꽃은 피었을 때 이미 지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지는 원인 자체가 피어남에 내재해 있는 까닭에 비바람은 간접적인 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시(詩)는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꽃은 피었으니 반드시 지게 마련이요, 사람도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게 마련이므로 눈물 한 방울 흘리거나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식으로 초연해지는 듯 하는 것도 깨달은 이가 취할 바가 아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
칼럼 인간은 발전을 통해 잠재력 달성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존 맥스웰’은 자신의 저서 「생각의 법칙」에서 “왜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Ⅰ 성공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Ⅱ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배경이 나쁘다. Ⅲ 이는 전적으로 교육의 차이다. Ⅳ 실패하는 것은 운이 나쁘기 때문이다. Ⅴ 머리가 좋고 나쁜 차이다. Ⅵ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현재 성공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공한 것이 없다면 그 이유는 성공에 필요한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생각이 뛰어나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자민 디즈레일러'는 「위대한 생각을 길러라.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생각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한다」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나도 두 차례 전쟁을 겪어면서 인간이 가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생각해 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 있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아 마
칼럼 그 자리에 내가 죽으면 묻어 다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 선비가 밤에 아내와 누워 아내 몸을 풍수자리의 명당자리에 견주어 농담을 시작했다. “여기가 발룡(發龍) : 산줄기의 시작 봉우리) 지역이로구나” 하고는 “동쪽 서쪽으로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잘 형성되어 뻗어 있네.” 그리고 더 아래로 배 밑을 더듬어 내려가서 “아, 금성(金星)이 중심지를 잘 보호하고 있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선비는 아내의 몸 위에 엎드려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기분이 고조되어 이렇게 말했다. “내 지금 결국(結局 : 묘의 봉우리를 만듬)을 반성하고 그리고 나성(羅星 : 여러 봉우리)를 잡아서 마지막 수구(水口)를 막는 중이다.” 이때 옆방에서 이 말을 다 듣고 있던 부친이 크게 소리쳤다. “얘, 애비야! 거기가 어느 산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잘 갖추어진 명당 자리가 있거던 잘 봐 두었다가 내가 죽으면 그 자리에 묻어다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한창 흥분이 고조되었다가 갑자기 풀이 죽으면서 슬그머니 작업을 끝내고 말았다. 일간(日干)인 무토(戊土)가 한겨울인 11월인 자월(子月)에 출생했다면, 차가운 추위에 꽁꽁 얼어 있는 흙이 당장 필요한 오행은 불(火)이
칼럼 둥지가 깨지면 알은 성할 수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수나라 양제(煬帝)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국력이 쇠퇴해지자 반란군과 지방호적들이 일어났다. 이세민은 이들을 제압하고 624년 중국을 재통일 했지만 이세민의 형 이건성과 막내 동생 이원길은 이세민을 죽일 모책을 세우면서 권력 쟁탈의 피바람이 불었다.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고 한다. 적을 상대로 해서 싸워야 할 일국의 군주는 내 편이냐 적이냐 둘 중 하나이어야 한다. 그 중간이란 것은 없다. 적이면 있는 힘을 다해 증오하고, 아군이면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증오해야 할 적을 사랑하고 있어 나라가 위기를 맞고 있다. 공산 독재국가 중국과 북한은 속임수의 달인이라 미국과 한국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으며, 생화학 무기도 보유하고 적화통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나폴레옹은 정치에 대해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다. 정치는 투쟁이 아니면 중상, 모략이고 아부, 매수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를 보면 이 말이 딱 맞다. 청와대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북악산은 엄지 손가락을 곧추세운 형상을 하고 있다.
칼럼 마음씨가 고와야 좋은 운이 열린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중국에 도척(刀脊)이란 유명한 도적이 있었다. 이 도적이 부하들과 평생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게 되었다. 그러자 노자가 도척에게 “도적에게도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느냐?” 하고 물었다. 도적은 “있습니다. 재물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 성(聖)이며, 남보다 먼저 뛰어드는 것이 용(勇)이며, 자기의 무리를 생각하는 것이 의(義)이며, 성사(成事)의 여부를 아는 것이 지(智)이고, 훔친 물건을 모두가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인(仁)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도가(道家)에서 유가사상(儒家思想)을 비꼬는 말인데, 도적인 도척(刀脊)이 믿음이 있었기에 부하들이 따랐던 것이다. 도적인 도척도 이러한데 하물며 소우주인 우리라고 이 보다 못할 일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즐거움과 희망을 안고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벽을 잡고 슬프하기도 하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고 아쉬움과 뉘우침 속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늘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다 보
칼럼 사람은 변화해야 성장할 수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성장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성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는 용기를 말한다」 라고 정의하고 싶다. 모든 생물이 다 그렇듯이 사람도 성장(maturity)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껏 쌓아왔던 「나 자신」을 고집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이란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만 계단의 종류와 숫자가 수 없이 많아서 어느 것이 성장을 향해가는 계단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목표를 향해 꾸준히 열정을 쏟으며 올라가다 도중에 “이건 아닌데! 이 계단이 아니야!” 하며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정한 성장을 위한다면 그 순간 원점에서 출발해 다른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한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려면 지금까지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 이 때는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온 계단인데 다시 내려 가야 한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누구나 “지금까지의 노력은 말짱 도루묵이었단 말인가! 나는 결코 여기서 내려가지 않을 거야!”하는 말을 하기 십상
칼럼 인간의 죽음, 자살과 운명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기업가, 연예인, 정치인 등 자살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안따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명리학에서 보면 자살도 운명이다. 지난해 언론 보도에 따르면 3년동안 자살한 사람이 일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인터넷 악성 댓글로 스트레스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해 보인다. 인터넷 강국이라면서도 인터넷 범죄 예방책은 허술한 것이 사실이다. 온갖 악성 댓글이 난무하면서 남을 비방하거나 모욕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처벌이 쉽지 않아 본인은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한 충동적 자살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다. 특히 연예인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인터넷 악성 댓글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곧바로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지만 자살자는 계속 증가하는 모습이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삶은 일회성이다. 우리의 삶은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다른 무엇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진실된 순간들이다. 이 순간을 포기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