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도 핵으로 무장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북한이 연이어 핵실험을 하면서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것은 1970년이다. 당시 ‘윌리엄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하겠다고 통보한 것에 자극받아 핵개발에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핵개발이 88% 이상 완료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은 당시 프랑스 핵무기 연구에서 고폭실험을 완료했다. 프랑스는 전세계 각국에 핵보유를 확산하는 정책을 가진 나라로서 이스라엘도 1950년대 프랑스 핵기술 이전으로 핵을 보유하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1983년에는 핵무기의 완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10·26) 핵무기 개발도 중단됐다. 지금까지 한국이 핵무장 하는데 발목이 잡힌 것은 ▪ 우방국이며 안보 후원자인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 상충돼 한 - 미 동맹의 위기를 초래 ▪ 국제사회의 우라늄 수출 제재로 전력 마비 등 경제파탄이 발생 ▪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묵인하는 등 3가지로 압축된다. 하지만
칼럼 지나친 좌경화(左傾化)가 우려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국이 패망한 월남을 닮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시 월남은 같은 민족인 공산주의 월맹과 대화하고 협상해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여론이 번져갔다. 이른바 반전평화 여론을 이끌고 간 대표적 집단은 종교인들이었다. 결국 평화란 슬로건 속에서 월남은 1973년 공산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주월 미군이 철수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라는 개념이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박애로 불리는 것을 볼 때 종교인들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1970년대 월남에서도 틱찌광(Thich Tri Quang) 승려,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가 자유월남의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 조직을 이끄는 등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 평화메시지를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 평화· 화해· 협력· 교류를 강조했고,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시 월남에서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인사들은 얼마 안 가서 타살체로 발견됐는데 1973년까지 연평균 무려 840여 명이나 암살당할 정도였다고
칼럼 평화협정,적화통일 하는고도의 전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성경(역대하기 18 : 12)에 남(南) 유다의 여호사밧이 부귀 영광이 극하였고 북(北) 이스라엘 아합과 더불어 결혼동맹을 맺었다. 여호사밧이 아합으로 더불어 결혼한 것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가 정략 결혼을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사밧이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 사돈을 맺었는데 하나님을 섬긴다는 여호사밧이 우상을 섬기는 아합과 평화라는 명분하에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북(北)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북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이방여자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다. 이세벨은 악한 우상숭배 여자였다. 이세벨은 북 이스라엘 전 지역에 바알을 숭배하게 하고 아세라 상을 세워 백성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였다. 이세벨의 딸은 아달랴인데 아달랴는 엄마인 이세벨의 악한 피를 이어 받았다. 아달랴가 정치적 평화협정으로 남(南) 유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하였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 보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북쪽의 아합왕에게는 우호적이었다. 여호사밧은 남북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17일 칠곡군의 랜드마크인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방문했다. 이날 백선기 칠곡군수는 박승훈 처장을 직접 안내하며 기념관을 소개했다. 박승춘 처장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국민 교육의 장이 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백선기 칠곡군수는 “미국,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전 세계 13개국에서 기념관을 찾고 있다” 며 “칠곡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도록 국민들이 사랑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추모․체험․교육․여가기능이 어우러진 기념관으로 지난해 10월 개관이후 지금까지 약 6만여명이 방문했다.
칼럼 멸망할 수 밖에 없는 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은 45세에 진(晉)나라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되기까지는 할아버지 사마의, 큰아버지 사마사, 아버지 사마소의 덕에 의지했다. 그러나 통일의 대업을 이루자 무서운 속도로 타락해 버렸다. 어느날 사마염은 사예교위 유의(劉毅)에게 물었다. “한나라 임금들과 비교하면 짐의 덕성과 재능은 어느 임금과 비교할만 한가?” 사마염으로서는 고조 유방이나 광무제 유수와 비슷하다는 답을 바랐겠지만 유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후한의 환제나 영제나 비할만 합니다” 사마염은 불쾌했다. “내 덕성과 재주가 옛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위와 오나라를 평정하여 천하를 통일했고 부지런히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찌 환제, 영제에 비하겠는가?” 유의는 더 험한 말을 했다. “환제와 영제는 그래도 벼슬과 작위를 팔았으나 돈이 관청의 곳간에 들어갔습니다. 폐하께서는 벼슬 판 돈을 폐하의 집에 들여 놓으시니 이로서 미루어보면 폐하께서는 환제, 영제 보다도 못합니다” 재물을 탐내기로 소문난 사마염은 확실히 드러내 놓고 벼슬을 팔아 그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칼럼 지카바이러스 정체는 무엇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쟁은 한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 지도자의 오판에 의해 일어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상자의 규모가 매우 컸다는 면에서 실로 대전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그 전쟁으로 약 1천여만 명이 사망하고 2천여만 명이 불구가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 군국주의 지도자의 오판으로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의 진주만에 있던 미국의 태평양 함대에 먼저 공격을 하면서 발발했는데 그 다음날 미국 의회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선언했고 3일 뒤에는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 대전을 치루면서 일본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명피해는 전사자가 영국 39만8천명, 미국 29만2천명, 프랑스 21만1천명, 소련 750만명, 독일 285만명, 일본 150만6천명이고 참전 6개국의 전쟁비용도 1만1천억 달러라고 한다. 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점령지 한반도에서 퇴각하자 남북이 분단됐고 북한의 수괴 김일성의
칼럼 북한으로 가는 돈줄 모두 끊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처음 개성공단이 조성될 때 필자는 이 공단이 언젠가는 괴물이 되어 우리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성 칼럼을 한 일간지에 보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도 개성공단 폐쇄를 주장하는 칼럼을 보도했다. 이제 필자의 주장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대한민국은 통일의 기회가 2번이나 눈앞에 왔는데도 이를 놓쳤다. 첫번 째는 김영삼 정부 때 미국 부시대통령이 평양을 한 순간에 폭파(이라크 처럼)할 군사작전 준비를 끝내자 김영삼이 만류하는 바람에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두번 째는 고난의 행군 때 북한 주민 3백여 만 명이 굶어 죽게 되자 김대중은 돈과 쌀을 퍼주어 망해가는 북한을 살려 냈다. 통일의 기회가 눈앞에 와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무슨 통일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2013년에 북한이 먼저 개성공단을 중단 했을 때 폐쇄 했어야 하는데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중단이 아니라 완전히 폐쇄해야 향후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얼마나 우리 국민들이 애타게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시급하게 결단하기를 바랬으면 지금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겠는
칼럼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남극 대륙에서는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었다.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과 그의 대원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던 인듀어런스호가 총빙(바다에 떠다니는 얼음이 모여서 언덕처럼 얼어붙은 것)에 부딪쳐 침몰하자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섀클턴은 간신히 대원들을 이끌고 그나마 안전한 피난처인 남대서양의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섀클턴은 사우스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 기지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섬은 1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그가 가진 배라고는 인듀어런스호에서 건져 낸 7미터 길이의 구명정이 전부였다. 그들은 생존할 가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섀클턴과 몇 명의 대원들은 17일간의 사투 끝에 1916년 5월 10일 사우스조지아 섬에 다다랐다. 그러나 험한 바다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섬의 반대편에 배를 대야 했다. 그들은 지도도 없
존경하는 43만 구미시민과 근로자, 기업인 여러분! 설 명절을 맞이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장석춘은 선산 고아부대에서의 군 생활로 구미와의 첫 인연 이후 구미 LG에서 근로자의 삶과 노사관계를 배우고 익혔습니다. 한국노총위원장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대통령 고용노동 특별보좌관에 임명 되어 노사 실무의 전문성을 갈고 닦았습니다. 구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 우선돼야 합니다. 청렴한 도덕성과 정책적 전문성을 갖춘 저 장석춘, 반드시 대단위 신규투자와 전기자동차 부품공장 유치를 ‘꼭’ 이루어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초석을 놓으신 대한민국 경제수도 구미, 박근혜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50만 글로벌 신(新) 구미시대를 활짝 열겠습니다. 희망이 가득한 보람찬 새해를 맞아 시민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저, 장석춘을 지지하고 베풀어주신 그 고마움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고향 가시는길 안전운전하시고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2016년 설날 새누리당 구미시 을 국회의원 예비후보 장 석 춘 배상
칼럼 ‘타이태닉호’와 흡사한 현 세계 정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912년 4월 10일, 타이태닉호가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항, 미국 뉴욕으로 향해중 4월 11일, 프랑스 셰르부르와 아일랜드 퀸스타운(현 코브)에서 승객을 태우고 대서양으로 뱃머리를 돌며 항해중 4월 14일, 저녁 11시 40분경 빙산과 충돌하며 4월 15, 새벽 2시 20분에 침몰하면서 약 1500명이 사망했다. 타이태닉호는 어떤 종류의 배이며 침몰 원인은 무엇인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위치한 얼스터 민속·교통 박물관에 가면 그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다. 이 박물관의 전직 책임자인 마이클 매코건은 타이태닉호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라고 말하지만 당시에 타이태닉호만 유명세를 떨쳤던 것은 아니다. 타이태닉호는 벨파스트의 할랜드 앤드 울프 조선소에서 건조한 세 척의 대형 선박 중 두 번째로 건조된 여객선이며 선체 길이가 269미터, 폭이 28미터로 당대에 가장 큰 배 중 하나였다. 화이트스타 해운 회사는 그 대형 선박들을 이용해 수익성이 좋은 북대서양 항로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운항 속도에서 경쟁사인 쿠나드 사에 뒤쳐져 있던 화이트스타 사는 부호와 유명 인사
새누리당 구미시(갑)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나선 백승주 전 국방부 차관은 3일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대한민국 유일의 항공기체계 종합업체로서 항공기 관련 군수 및 민수사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기업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 하성용 대표이사를 만나 구미의 경제 현황과 산업 정책, 구미공단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하고, 구미에 대형 군수산업 유치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백승주 예비후보는 하성용 대표이사에게 “국방부 차관 시절 추진했던 미국 수출용 고등훈련기(TX) 사업과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축하한다. KAI의 미래 성장전략으로 구미공단에 대한 투자와 구미지역 항공관련학과에 대한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하성용 대표이사는 “구미에 외자유치를 추진 중”이라고 화답했다. 같은 날 백승주 예비후보와 KAI 하성용 대표이사는 항공특성화대학으로 항공관련 1개 학부와 3개 학과를 가진 경운대학교 장주석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만나 경운대학교와 KAI의 산학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항공산업은 조선·철강·자동차에 이은 대한민국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KAI의 국산 항공기 전체 수출은 현재까지 6개국 13
칼럼 천장지비일석지지(天藏地泌一席之地)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은 길지라고 하면 기도원과 집터가 같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도원과 집터의 길지는 다르다.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번지에는 한국카톨릭을 상징하는 명동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1977년 11월 22일에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대성당은 1만 442m2의 땅위에 건평은 1천 498m2이다. 1898년 프랑스 코스트 신부가 축성 봉헌한 이래 성당을 중심으로 수녀원, 문화원, 교육관, 계성여고 등 카톨릭과 관련된 집합 건물을 모두 합하면 명동 전체를 양쪽으로 분할할 만한 규모로 면적이 방대하다. 명동성당을 풍수지리적으로 풀이하기 전에 땅의 내력을 살펴 보자. 원래 이 땅은 조선 순조대왕(1801- 1834) 당시 벼슬을 지낸 윤정현이 살던 집터로 바깥채만 60여 간에 달할 만큼 엄청난 규모의 집터 자리였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은 집을 지을 때 풍수지리를 보는 것은 기본이다. 따라서 이 집터도 풍수지리를 봐서 지었을 것이다. 더구나 판서의 높은 지위까지 오른 고관의 저택을 지으면서 명당자리가 아닌 땅에 짓는 경우는 거의 없어 이 땅도 명당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