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사주추명학자의 “이것이 운명이다” <4>
이것이 운명이다
남편은 직업이 없다보니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게임만 하고 있었다. 전 남편이었던 최영철과 꼭 빼닯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두 남자가 하는 행동이 닮았을까? 더구나 사법고시에 3번이나 낙방하고 보니 이제 사법시험에도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농토라도 제법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제야 하는 또 다시 잘못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문제가 있는 남자와 잘못한 결혼은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는 벌써 임신이 되었고, 남편의 구박은 갈수록 미친사람처럼 극심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이라 어떻게 하던 이혼만은 막아 볼려고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가슴 속에 혼자 묻어 삭이며 참고 살았다. 만약 친정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한 사실을 알면 친정 부모님께서 병이 나서 들어 눕기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떻게 하던 친정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살아볼려고 남편의 혓바닥처럼 움직이며 죽어라고 하면 죽은 시늉도 할만큼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직업이 없는 남편은 하루종일 게임을 하느라 컴퓨터에 앉아 있다 보니 나는 아무리 참아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컴퓨터에만 앉아 있지 말고 무슨 일이라도 직업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정말 서울에서 명문대학 법대를 나온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이 일로 나와 남편은 말다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게다가 시누이까지 남편과 합세하여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시어머니까지 남편의 편을 들며 나를 심하게 구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마마보이라 내 말은 듣지 않고 시어머니 말만 들었다. 시어머니가 죽어라고 하면 왜 죽느냐고 따지지 않고 죽는 시늉도 하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는 3년을 버티면서 살았다. 하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하나 없어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죽을려고 바닷가로 나갔다. 파도가 밀려 왔다가 밀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란 결국 저 파도처럼 어느 날 이 세상에 왔다가 한 순간의 포말로 사라지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인간이란 존재가 무척 초라하게 보였다.
깊은 바다 속으로 한 발 두 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에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바다 깊숙이 몸을 들여 놓던 나는 반사적으로 바닷가 모래밭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저 앉아 울었다. 한참 울다가 얼굴을 들고 보니 저녁노을이 수평선으로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어디 갔다가 오느냐면서 주먹으로 내 얼굴을 마구 내리치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울기만 했다. 그 일로 나는 얼굴에 멍이 들고 턱뼈가 변형이 이상한 형체의 얼굴이 되어 버렸다. 이 문제로 나는 3년만에 이혼하게 됐고 내가 가져온 짐을 챙겨 집을 뛰쳐 나왔다. 더 이상 남편과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들도 넘겨 주고 위자로 한 푼 받지 않고 그대로 몸만 빠져 나왔다. 더 이상 시댁 식구가 보기 싫었고 위자료 문제로 태각태각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집을 나와 보니 당장 갈 곳이 없어 인근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짐을 거기에 맡겨 놓았다. 내가 가지고 온 짐은 꽤 많았다. 나는 노래를 하고 무용을 하기 때문에 화려한 각종 무대 의상이 많았다. 대학에서는 고전 무용을 전공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무슨 행사가 있으면 가수나 무용수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도 잘 불러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면 늘 1등을 해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수 활동도 했다. 군(郡)이나 면(面)에서 축제행사가 있으면 나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