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70회
다라국의 후예들
“흥. 별수 없구나.. 허울 좋은 명판관이었구나...괜히 구경왔구만..”
“재판을 하는 이상 시비를 가려야겠다. 문제는 그 유언의 비밀에 있다고 본관은 판단했다.”
이 말에 소송 관련자를 비롯한 많은 방청객들의 귀가 번쩍 트였다. 지금까지 여러 번 열렸던 재판에서는 전연 다루어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젠 궁금한 수수께끼가 풀리나 보다.”
모두 흥미있는 기대를 걸고 귀를 기울였다.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딸과 아들의 차별이 없다. 그런데 이미 장성해서 출가까지 했기 때문에 생계에 걱정이 없을 딸에게는 전재산을 상속해 주고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고아가 될 어린 아들에게는 야박하게 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를 여윈 아이를 사랑으로 길러 줄 사람은 누이 밖에 없으며 누이는 또한 당연히 그래야 할 인륜상의 책임이 있다.”
이 때 누이가 대담에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섯 살 때부터 열 두 살이 되도록 남편의 눈치를 보며 동생을 먹이고 입혀서 키웠습니다.”
“그렇다면 동기의 핏줄은 열 두 살이면 끊어진다더냐! 잠자코 듣고 있어라!”
도부렴이 호령을 했다.
“만일에 너희들 부친이 남매에게 재산을 똑 같이 나누어 주거나 동생에게 더 주고 죽으면 그 재산 때문에 남매간에 불미한 분쟁이 생길까 두려워한 것이 임종할 때의
걱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전 재산을 일단 성장한 누이에게 맡겨두면 제 재산
으로 알고 아껴서 잘 보존해 갈 것으로 너희들 부친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이 성인이 되면 누이가 동생의 살림을 차려주기 위해서 적어도 그 재산의 절반은 나누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 같은 욕심이 많고 악독한 누이가 있을 경우에는 이미 장성한 동생이 응당 억울한 사정을 관가에 호소할 것이므로 그 때 관가에 나갈 옷도 없을 동생을 위해서 갓과 두루마기와 미투리와 백지 네 가지 유품을 남겨 주었던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과 쓰고 있는 갓과 신고 있는 미투리가 바로 그 유품입니다.”
만장의 방청객들은 지금까지의 침묵을 깨트리며 박수를 치며 환성을 올렸다.
“그럴거다. 그리고 백지(白紙)는 억울한 사정을 솟장에 쓰도록 미리 주었던 것이며 오직 지금까지 소송에 이용하지 못한 것은 악독한 누이가 장가도 들 수 없게 학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부렴은 말을 잠시 끊었다. 그리고 옆에 배석하고 있던 고을의 벼슬아치들은 힐끔 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유품은 동생이 그런 솟장을 올렸을 때에 만일 유능한 판관이라면 그 네 가지 유품의 비밀 즉 아버지의 전정한 뜻을 잘 판단하고 일단 그 누이에게 안전하게 보존시켜 두었던 유산을 적어도 반으로 나누어 주리라고 믿었던 증거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이가 동생에게 재산을 주지 않으려고 욕심낸 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들 부친의 영혼은 딸을 원망한 것이 아니고 네 가지 유품의 비밀을 해명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현명한 재판을 못한 판관을 원망했을 것이다.”
이 때 고을의 벼슬아치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보통 같으면 대를 이어서 봉제사를 동생에게 3분의 2의 유산을 찾아주겠지만 누이에게도 그 재산을 온전히 보존한 공이 있으므로 남매가 죽은 부친의 참뜻을 받들어서 사이좋게 반반씩 나누어 갖도록 하라!”
방청객들은 와! 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누이도 이런 판결에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소식이 거우위왕의 귀에도 들어 갔고 거우위왕은 도부렴에게 하사품을 내려 공정한 재판을 칭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