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68회
다라국의 후예들
“아무턴 이번만은 그 억울한 아들이 이겨야할텐네.. 어떤 아버지가 딸에게만 재산을 몽땅 물려주고 아들에겐 한 푼도 안주겠는가? 역시 그 간악한 딸의 무슨 농간일거야”
방청객들 분위기는 대부분 아들을 동정하는 모습이었다.
“명판이 별거라더냐. 현명한 정치나 공정한 재판보다 먼저 청렴결백해야지. 뇌물만 받으면 질 놈도 이기고 죽일 놈도 살리는 세상인데 무슨 재판의 공정을 바라겠나...”
“하긴 그렇긴 하네만..정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런지도 모르잖는가.”
“아마도 새로운 벼슬아치가 올 때마다 그 딸이 뇌물을 먹였을거야....이번 나라에서 직접 내려보낸 도부렴도 역시 현명하기 보다는 청렴결백 해야 공정한 재판을 할건데 말이야....”
“억울한 아들을 위해서도 이번 재판에는 이겨야겠지만 부패한 벼슬아치의 지난 번 재판을 뒤집어 주었으면 속 시원하겠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구만..”
남매 소송의 재판구경을 하면서도 탐관오리를 질책하는 방청객들의 말을 들어보면 필시 이 방척객들 가운데 억울한 재판을 받은 피해자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무렵 거우위왕은 각 지방 관아에 백성들의 소송 사건에 대해서는 억울하게 패하는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판결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리고 만일 뇌물에 연루되어 불공정한 재판을 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는 특별한 지시도 내렸다. 이런 거우위왕의 공정한 재판과 민심을 헤아리는 정책은 백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뒷날 적과 싸울 때에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애국심을 나타내는 게기가 되었다. 재판을 받기 위해 소년이 등장하자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던 방청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성원을 보냈다.
“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을 잘 해라. 알겠냐?”
그 말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하고 있던 초라한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관중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에는 피고인 누이가 기름진 얼굴에 화려한 비단옷 차림으로 등장하자 방청객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몹쓸 년!. 얼마나 쳐먹고 뒤질려고 그 많은 부모의 재산을 혼자 삼키단 말이냐”
“동생 재산 도적질한 것이 오래 갈 줄 아느냐. 지옥가기 전에 너도 쪽박차고 나설라!”
“동생 재산까지 차지하다니 욕심도 꿀돼지 같구만.”
재판관 도부렴이 아닌 방청객들이 이미 재판 결과를 한 셈이었다. 이윽고 동헌 위에 벼슬아치 도부렴이 장내의 시선을 받으며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서로 다투는 남매를 앞에 세우고 그 뒤에 증인들이 서서 재판장인 도부렴에게 인사를 하자 심문이 시작되었다. 이미 몇 번 되풀이 된 소송이라 사실심리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었던 방청객들이었지만 도부렴의 추가 심문 때부터는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다.
“남매가 부모의 유산 때문에 다투는 세태가 통탄스럽긴 하지만 다투는 이상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 지금 진술한 쌍방의 주장은 사실과 다름이 없으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