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도덕적 양심으로 성장하는 신문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우리는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기존 신문들이 독자나 사회의 기대 또는 욕구를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틈새를 노리는 것이다. 더구나 지방신문의 빈번한 창간과 폐간은 치열한 경쟁 사회임을 실감케 하고 있다.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 것이 생존경쟁의 엄격한 규칙이다. 따라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 창간하는 신문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언론의 특성과 사명감을 무시하고 언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물의 깊이도 모르고 강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언론도 사업이니만큼 어느 시점에 가서는 흑자를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지방신문이 중앙지처럼 인력이나 경영규모를 확대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방 신문사는 작고 강하게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 자유시장의 메카니즘은 여러가지 전제 조건들이 있긴 하지만 그중 하나를 들자면 다수의 수요자들과 다수의 공급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공급을 틀어쥐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공급을 좌우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가격이 형성되어 자유롭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 때와는 달리 신문사의 설립을 과도하게 통제하지도 않고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창간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언론에 관한 수요를 읽은 공급자가 어렵지 않게 신문을 창간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지방 신문들이 등장과 퇴장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분명 우리 언론의 자유와 그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가 확산된 징표라고 본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구미일보의 특징은 낯을 가리지 않는 알뜰한 기사와 다양하고 읽을 꺼리가 풍부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 그리고 도덕적 양심을 인정받고 있다는 등을 들 수 있다. 낯을 가리지 않은 신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오르지 담기는 정보나 지식의 내용으로 기사의 크기나 배치를 결정할 뿐, 소스가 누구냐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미일보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도덕적 양심을 인정받아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중앙 일간지의 경우, 그들대로 선호하는 집단이 있고, 그 집단의 소리는 무조건 키우고 반대 입장의 소리는 무조건 줄여서 독자의 판단의 눈을 가려왔던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지방신문들은 기자나 관계자 개인의 학연이나 인맥이 기사를 키우거나 빈도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왔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구미일보는 이와 같은 폐단을 지양하고 구미 지역의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편파성 없이 공정하게 찾아서 독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신문이 되어 왔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이나 장애인들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는 등 그늘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변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높이 칭찬할 만한 일이다. 구미일보는 어느 계층도 소외시키지 않는 신문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으며, 부정과 비리를 묵과하지 않고 낱낱이 파헤치는 언론 본연의 투철한 사명의식은 지난 4월 총선 때에 보였다. 또한 구미일보는 어느 계층도 소외시키지 않는 신문으로 구석구석 어디든지 찾아다니는 열린신문이라는 데에는 시민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자면 신문제작자들의 도덕적 양심은 굳건해야 하고 기자들의 안목은 넓고 깊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자들은 먼 곳을 아주 가깝게 볼 수 있는 망원경과, 작은 것을 크게 볼 수 있는 현미경의 두 가지 눈을 가져야 한다. 구미일보 기자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두 가지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른 신문보다 더욱 빛이 나고 큰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말이 쉬워 신문이지 돌아서면 신문인 세상에 신문사 하나 육성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는 노력과 재력이 소요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미일보는 9년이란 세월을 독초처럼 자라왔다. 언론이 성장하는 데에는 순서가 있다. 작은 나무가 큰 나무로 성장하자면 많은 세월이 필요하듯 신문도 크게 성장하는 데에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다. 세월을 밟고 오르는 단계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시민이 아파하고 가려워하는 곳을 찾아 어루만져 주면서 약자의 편에서 약자를 도우는 신문으로 가일층 도약하기를 구미일보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