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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국가 지도자의 모습

 

 

칼럼

 

 

                     국가 지도자의 모습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미국 정부의 한 전직 보좌관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사회 내의 제자리에 결합 조직을 재생시켜 놓을 능력이 없다. 정치는 전통적인 도덕 관념을 복원하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으로도, 구혼이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회복하거나, 아버지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거나, 한때 존재했던 충격이나 수치심을 제자리에 되살려 놓을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도덕 문제들 대부분은 법으로 근절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물질적 탐욕, 가정 내 혈육 간의 애정의 결핍, 해이한 도덕관, 무지(無智)를 비롯하여 사회의 결합 조직을 좀먹는 여러 요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그저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언젠가는 카리스마적인 뛰어난 국가 지도자가 나타나, 자기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특정한 신학자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대정부 항쟁을 벌였다. 그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해방신학(解放神學)이라는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해방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더는 성서적 의미에서만 구원자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도 구원자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미국에서는 도덕관이 침식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게 된 교회 지도자 여럿이 도덕적 다수라고 하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그 조직의 목표는 건전한 가정 윤리를 법으로 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정치적 지위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회교 국가에서도 여러 단체들은 코란에 더 밀접히 따를 것을 권장함으로 부패와 무절제한 행동을 억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세상이 더 좋은 곳은 없다.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해방신학이 널리 퍼진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 전역에서 전체적인 도덕관이 계속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고 빈부의 양극화 차이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도덕적 다수가 미국에서 주요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설립자인 제리 팔웰은 1989년에 그 조직을 해산하였다. 그 대신 다른 조직들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도덕적 다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폴 웨이리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Christianity Today)라는 잡지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가 정치에서 이길 때조차, 우리의 승리는 결국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유형의 정책을 수립하는 면에서 실패한다. 문화는 점점 더 넓은 시궁창(폭력적이거나 비윤리적)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규모로 문화가 붕괴되는 현장에 살고 있으며, 이 붕괴는 그 규모가 엄청나서 정치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다.” 칼럼니스트이자 저술가인 칼 토머스는, 정치를 통해 사회를 향상시키려는 노력 가운데서 근본적인 결함으로 여기는 것에 관해 이렇게 밝혔다. “진정한 변화는 일련의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가진 주된 문제들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세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도덕적이고 영적(靈的)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향력 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종교인이든 아니든) 이 세상을 참으로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면, 어떤 인물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국가 지도자의 모습은 개인적인 물질에 탐욕이 없고, 도덕과 윤리에 결함이 없으며 국민을 위해 헌신적인 국가관을 가져야 하며 국방과 안보의 사상이 투철하고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무한한 파워(능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혹여 이런 인물이 있어도 정치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내년 대선에는 훌륭한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갖춘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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