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중국은 음식 천국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중국은 음식 천국이다. 요리가 너무 풍부해 몇 달 동안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마음대로 맛 볼 수 있다. 그런데 옛날에도 그처럼 중국에 음식이 풍부 했을까? 현존하는 사록으로는 삼국시대에 어떤 요리가 상에 올랐는지 알아내기가 어렵지만 채소의 역사를 분석해 보면 중국 고대의 음식상은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나 양, 돼지 따위는 사육한 역사가 오래이므로 기원전 몇 백 년인 춘추전국시대에도 좋은 음식으로 상에 올랐는데 채소는 고기에 비하면 매우 뒤떨어졌다.
<시경(時經)>에 132종의 식물이 나오는데 그 중에 식품 식물은 20여 종이며 그 절반이 후세에는 식품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쓴맛이 나는 박잎도 상에 올랐다고 하니 채소가 매우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후한이나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형편이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국이 원산지인 배추가 그 때까지 만 해도 맛이 시답지 않아 주요 식용 채소가 아니었다.
당시의 다섯 가지 주요 채소를 보면 규(葵), 곽(藿), 해(薤), 총(蔥), 구(韭)였다. <규>는 수백년 세월을 가진 이름난 채소로 한나라 사람들은 채소밭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정원의 푸르른 규여(靑靑園中葵>라고 읊었다. 유비가 조조, 손권과 전쟁을 하면서도 가꾸었다는 채소밭은 아마 <규>가 아닌가 싶다.
당시의 <규>를 지금은 동규(冬葵)라고 하는데 7-10세기 당나라 때부터 새로운 채소에 밀리기 시작해 16세기 명나라 말년의 의학서적 <본초강목>에서는 초부(草部)로 분류되어 완전히 약초식물로 전략하고 말았다. 두 번째 <곽>은 국으로 만들어졌는데 콩과 식물의 야들야들한 잎이다. 역시 식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세 번째인 <해>는 염교. 염부추하고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게 무슨 풀이냐고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은 한약재로 쓰인다고 하고 한다. 이 염교를 옛 사람들은 잘 먹어 여기에 묻은 이슬에 사람의 운명을 빗대어 지은 노래가 유명한 <해로(薤露)>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총>과 <구>에서 <총>이란 바로 파, <구>는 부추이다.
마늘은 후한 들어와 <호(葫)> 혹은 <호산(葫蒜)>으로 불렀다. 이 밖에 무(玀卜 : 나복)와 순무(蔓菁 : 만청)도 당시 사람들이 곧 잘 먹었는데 제갈량은 촉군의 병영에서는 늘 순무를 먹고 배출한 가스 냄새가 가시지 않아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 보다 수백년 후 당나라 대시인 두보(杜甫)는 시에서 “겨울에 순무는 밥의 절반이라(冬菁飯之反)”고 노래 했으니 무의 소모량이 매우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와 채소 교류가 상당히 활발했는지 당나라 때부터 식탁에 오르는 채소의 가짓수가 부쩍 늘어났다. 인도로부터 오이와 가지가 들어오고 네팔에서 시금치가 왔으며 지중해 일대에서 부추가 들어와 같은 품종에서 우열을 가리기 시작했다.
당나라 때 신라에서 아주 맛이 좋은 흰가지가 들어 왔는데 11세기의 송나라 시인 황정견(黃廷堅)은 다른 사람이 선사한 흰가지를 먹고 너무 기분이 좋아 시를 지어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13, 14세기 원나라 때에는 북유럽이 원산지의 채소들이 많이 들어왔다. 고추, 토마트, 감자, 고구마 등 20세기에 또 새로운 채소들이 많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인들의 식탁이 풍성해지면서 오늘날 중국은 음식 천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