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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대륙백제, 그 실존을 말한다

 

 

칼럼

 

 

                        대륙 백제, 그 실존을 말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삼국사기에 대륙 백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 보니 역사교과서에도 대륙 백제가 빠져 있다. 중국 사서에서 백제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宋書)이다. 송서는 남조 제나라 무제 연간인 488년에 심약이라는 사람이 무제의 명을 받들어 편찬한 책인데 권97 열전 제57 이만(夷蠻)편에서 백제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백제국은 본디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었으며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공략하여 갖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다스리던 지역을 일컬어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진평군이라는 지명까지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가 대륙의 요서지역을 다스린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태종 연간이 636년에 편찬한 양서(梁書)는 남조의 양나라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돼 있다. 백제는 본래 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으나 진()나라 때 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하여 영토로 하자 백제 역시 요서군과 진평군의 땅에 자리 잡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양서는 백제가 요서지역을 차지한 때를 진()나라 때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진평군 이 외에 요서군이라는 지명과 백제군이라는 지명이 추가로 기록돼 있다.

 

 

 

양서에서 말하는 진나라는 사마염이 266년에 세운 진()을 말한다. 진은 서진과 동진으로 나누는데 서진은 사마염이 세웠고, 동진은 흉노족 유연에 의해 서진이 몰락하자 사마씨의 후손 사마예가 동쪽으로 도주하여 세운 한나라를 말한다. 서진은 266년에서 316년까지 존속되었고, 동진은 317년에서 420년까지 유지되었는데, 백제가 요서지역에 진출한 서기는 서진시대였다. 양서에 기록된 대륙 백제의 강역은 요서군과 진평군은 북으로 발해만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내려와 산동반도()를 모두 아우러는 곳으로 요서군은 낙랑, 진평군은 대방을 포함한 곳이다. 바로 이곳에 백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는 언제부터 대륙에 진출했을까? 사록을 보면 고이왕 13(246) 8월에 위나라 유주 자사 관구검이 낙랑 태수 유무와 대방 태수 궁준과 함께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으로 하여금 낙랑의 변방을 공격해 그곳 주민들을 잡아오는 사건이 있었는데 백제의 대륙 진출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중국측 기록은 진()나라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제30의 한()편의 기록은 이렇다.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을 통치하면서 진한의 여덟 나라를 분할하여 낙랑에게 줬는데 이 일을 벼슬아치가 통역을 하다가 잘못 전해진 부분이 있다. 신지가 한() 백성들을 격분시켜 대방군 태수 궁준과 낙랑 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정벌했는데 궁준은 전사하였으나 두 군이 마침에 한()을 멸하였다이 기록에서 낙랑군과 대방군이 합쳐서 한()을 멸하였다고 하는 내용은 조작된 것으로 보이며 조작한 흔적이 보인다. 진수의 삼국지는 위나라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쓴 책이라 당시 백제가 낙랑과 대방을 장악한 내용이 기록에 남을 경우 위나라 땅을 승계한 진나라에 매우 나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여 진수가 고의로 조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서진시대에는 이미 백제가 대륙에 진출하고 있었는데 진서에 백제 편은 없고 이미 멸망하고 없는 나라인 마한 편만 있는 것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때 백제의 세력은 낙랑과 대방 세력에 의해 패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방을 장악하여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후에 요서군과 진평군을 차지하여 대륙 백제를 건설했을 것이다.

 

 

 

특히 위서에서는 대륙 백제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1천여 리 떨어져 있으며 소해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백성들은 토착생활을 하며 땅은 매우 낮고 습기가 많아 모두 산에서 기거한다이 기록에서 주목할 대목은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이 붙어있지 않으며 그것도 1천여 리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백제의 위치를 소해의 남쪽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소해는 발해를 의미하며 대륙 백제는 요서지역으로 고구려 국경과 1천여 리 이상 떨어진 발해 남쪽 일대에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땅은 매우 낮고 습기가 많다는 지형과 기후에 대한 기록은 실제로 발해 남쪽의 지형과 기후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처럼 백제가 있다 보니 산동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대방 태수가 딸 보과를 백제에 시집 보냈고 백제 책계왕의 아내가 대방 태수의 딸인 것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교과서에는 대륙 백제의 언급이 없다. 이는 분명히 역사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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