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종교시설은 범인 도피처 될 수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종교시설은 범인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도피처로 용인한다는 법조문도 없다. 지난날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군사정권에서 핍박 받거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 투사들의 도피처로 곧 잘 이용되었다. 그 이유는 워낙 집회 및 결사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비민주적인 시대라서 종교계가 민주화 인사들을 가능한 보듬어 안고 배려하는 것을 국민도 상당부분 수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화된 지 30년이 다 되었기 때문에 독재시대도 아니며 국민을 탄압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한상균 위원장도 독재정부에 항거하는 양심범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저 기득권 노조들이 주축이 된 강성 민노총을 이끌며 '나라를 마비시키겠다'면서 폭력 시위를 이끌고 부추겨온 범법자임이 분명하다. 만일 범법자가 아니라면 도망다니지 말고 떳떳하게 경찰조사를 받으면 된다. 도망다니는 것 자체가 범법자임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시설이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라는 건 우리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기때문에 경찰이 당장 조계사에 들어가 그를 체포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탄압 받는 양심수 흉내를 내며 종교와 공권력의 갈등을 일부러 유발하겠다는 것이 한상규 위원장의 속셈이 아닌가 싶다. 경찰이 조계사 진입을 주저하는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수수방관 할 수는 없다. 한상균은 "불자(佛子)도 대부분 노동자들"이라며 "노동 개악이 중단될 때까지 함께 해 달라"고 조계종에 촉구했다고 하는데 피신하기 위해 이런 구차한 변명은 안했으면 좋겠다. 투쟁한다면서 도망은 왜 다니는지, 도망하면서 어떻게 투쟁을 한단 말인가?
한 도보에 따르면 한상균은 "저의 신변은 부처님께 맡기도록 하겠다"고도 했고, 훗날 경찰 출두도 자신을 보호해 온 조계종 도법 스님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향후 투쟁 노선을 민노총과 조계종을 한데 묶으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하다. 조계종도 범인을 은익하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왜 추방하지 않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어느 나라 헌법보다 세속적인 냄새가 강하다. 우리나라는 태국처럼 부처님의 가호로 세워진 나라도 아니고 미국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나라도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부처님이나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고사하고 ‘하늘이 부여한(천부·天賦) 인권’이란 개념도 없다. 인권도 그냥 인권일 뿐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공화국에서 종교라고 해서 특별히 우대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만큼 사회문제에 전문성도 없는 온갖 종교인들이 개입해 국가 정책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번에도 조계종 화쟁(和諍)위원회가 중재를 자청하고 나서 ‘노동 관련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안했다. 이미 노사정 회의가 있는데다 또 다른 회의가 필요하다면 세속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지 종교인이 나설 일은 아니다. 4대강 일이라면 수자원 관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얘기를 해야지 하나님이 창조했다면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건드리지 않는 신부나 목사들이 얘기할 수는 없다. 또 산을 뚫고 고속철도를 만드는 일이라면 국토를 잘 관리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얘기를 해야지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종교인들이 곧 잘 세속의 일에 끼어들려고 한다.
조계사는 1998년에 현대노조원, 2002년에 발전노조원을 숨겨준 바 있다. 1990년, 2000년 초까지는 명동 성당에 주로 숨어 들었고, 명동 성당이 범인 은익을 거부하하면서 조계사가 은신처가 되고 있다. 종교 시설은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아니다. 다만 종교시설에 공권력이 개입한다면 종교의 자유(헌법 제20조 1항)가 문제될 수 있으며 종교의 반발을 무마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경찰이 진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조계사에는 템플스테이를 위한 지원금으로 국비가 200억원 넘게 지원되고 있다. 결국 세금으로 범인은 숨겨주고 있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 시설은 범인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