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에 중국 시진평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주장한 개헌 발언에 대해 파장이 적지 않다. 특히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그것도 외국에 나가서 한 발언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특히 이원집정제 개헌에 국회의원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것을 보면 씁쓰레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이는 한 마디로 여.야가 같이 권력을 나누어 갖자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원집정제의 집정(Consul)이란 표현은 로마공화정 시대의 총통을 상기시키므로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다.
프랑스식 이원정부제를 대통령과 총리간의 권력분점체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타당한 면도 있지만 분야별 권력이 기계적으로 분점되는 것이 아니고 다수당과 대통령이 같은 당인가 아닌가에 따라 권력형태가 현저하게 달라지므로 이것도 정확한 이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원집정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호주가 대표적인 국가인데 호주의 경우 좌익 정당과 우익 정당이 모두 합쳐도 50%(47.2%)가 안된다. 이런 국민의 지지로 국가를 경영하다보니 호주 국민들의 반감이 적이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를 하자는 것은 여,야가 서로 다투지 말고 함께 손을 잡고 권력을 공유하자는 것과 같다.
정치학자들은 이원정부제를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중간형태보다는 대통령제가 변형된 유형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지오바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ti)에 의하면 어떤 정치제도가 이원정부제기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국민들에 의해 직접 또는 간접적 방법으로 선출된다. 둘째는 국가원수는 행정권을 총리와 공유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었던 권력이 이원정부제에서는 분산되어 권력을 가진 두 개의 기구가 존재한다. 즉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와 의회의 권력 분립에 의해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독립돼 있었으나, 이원정부제에서는 대통령이 정부 수반인 총리와 권력을 공유해야 한다.
셋째는 대통령은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각을 통해서 통치한다. 넷째는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내각의 각료를 임명한다. 그러나 총리와 내각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의회의 신임에 의존한다. 다섯째는 이원정부제에서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런 원칙들은 일반적이지만 국가마다 다소 변형된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할 뿐만 아니라 내각의 장관들도 총리의 요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보통 이원정부제에서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실질적 행정권한은 총리와 대통령으로 이원화되며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프랑스와 같은 준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 또는 의회주의적 대통령제(parliamentary presidential system)라고 불리는 이원정부제와,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핀란드와 같이 의원내각제로 분류되는 이원정부제가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 내 소수당이거나 소수 정파인 경우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은 자신과는 다른 정당인 다수당 출신의 총리를 임명하지 않을 수 없고, 대통령과 총리는 권력을 둘러싼 상호견제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두 번, 시라크 대통령 시절 한 번 있었던 '좌우 동거(cohabitation)'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들 국가와는 다르다. 남북이 이념으로 분단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격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칫 국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종북세력이 다수당이이거나 총리가 될 경우) 특히 이원집정제를 실시한다면 집권당을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한 야당은 소멸되고 야당과 여당이 한 통속에 들어가 권력을 공유하는 등 사실상 국회의원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존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몇달 동안 민생법안은 팽개치면서 국회가 수개월째 열리지 못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이원집정제를 거론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는 권력에만 집착하겠다고 하는 모양새로 보인다.
더구나 지금까지 국민이 보아온 한국 정치인의 낮은 정치의식 수준과 국민들의 낮은 정치사회화 수준 및 밀실정치와 계파정치의 관행, 정(政), 재(財), 관(官) 사이의 유착관계, 고질적인 지역대립 및 갈등관계, 관피아 문제 등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어느 제도를 선택해도 부작용만 생길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따라서 개헌이 필요한 권력구조의 개편보다는 예비선거를 도입해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소선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의 선출 자격을 강화하여 진실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지역구대표를 뽑는 정당제도와 청결하고 투명한 선거제도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바람직한 정당정치를 정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여,야 모두가 바닥에 쓸어져 있는 민생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