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청와대란 말에 부장자리 내주는 대기업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보도에 따르면 전과 2범인 조씨는 지난해 7월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청와대 총무 비서관 이재만이다. 조씨를 보낼테니 일자리를 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음날 사장실로 찾아가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보내서 왔다. 대우건설에서 일하고 싶다”면서 신학대 석사, 모 대학 겸임교수 등 허위 학력과 경력을 적은 입사원서를 제출하자 대우건설 사장은 지난해 8월 조씨를 사무직 부장 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그런데 조씨의 사기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해 7월말 퇴사한 그는 지난 8월 KT 황창규 회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재만 비서관을 사칭해 같은 수법으로 취업을 시도했는데 조씨는 KT 황창규 회장에게 전화를 건 다음날 직접 찾아가 “VIP(박근혜 대통령) 선거때 비선조직으로 활동했고 10여 년 전부터 VIP를 도왔다. 우리집에 방문한 적도 있고 지금도 한 달에 한두 차례 면담한다”면서 “정부 산하기관에 기관장이나 감사로 갈 수 있지만 회사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다.
KT 황창규 회장도 이 같은 거짓말에 속아 인사 담당자에게 취업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지만 KT에서 청와대에 조아무개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기 행각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은 지금이 이승만 자유당시대나 전두환 군사독재시대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청와대 비서관이란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런 일이 쉽게 이뤄졌는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모르긴 해도 대우건설 사장은 어떤 약점이 있기에 이처럼 권력에 무기력했는지 모르겠다.
많은 국민은 대기업이 전화 한 통에 속을 수 있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이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청와대 사칭 사기사건은 모두 4차례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 사칭 전화를 개별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과거 이승만 자유당시대나 전두환 군사독재시대처럼 지금도 청와대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청와대의 모습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 직원도 공무원이다. 그 누구도 기업에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는다.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에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은행에 부채가 많기 때문에 혹여 자금회수 등의 압박이나 불이익을 고려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산업은행은 정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청와대에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비서관이란 말 한 마디에 넘어간 것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권위의식이 곳곳에 팽배해 있다. 문제는 한국이 민주화 이후에도 국제투명지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우월적인 권위의식은 대리기사 폭행사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가해자측과 피해자측을 동시에 함께 조사하지 않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현직 국회의원이 속한 가해자측은 배제하고 피해자측(대리기사)을 먼저 조사한 후에 며칠 지나서 가해자측을 조사한 것도 일반적인 조사과정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이번 청와대 사칭 사건을 계기로 박대통령은 폐쇄적인 인사시스템을 개선하고 권위적인 청와대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들도 인터넷 홈페이지나 청와대 SNS를 이용하면 확인할 방법이 있다. 청와대 직원이라 해서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과 동일하다. 따라서 청와대 직원을 이용한 부정 청탁은 범법행위이다. 대한민국은 북한처럼 일인 독재국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란 말에 고액 500만원 월급의 부장자리를 선듯 내주는 대기업이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