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여론조사 이대로 좋은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느 집이나 여론조사와 관련된 전화나 문자를 받아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짜증나게 걸려오는 불편은 차치하고 이런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여론조사 발표를 보면 대개 성인남녀 1,000명 대상에 신뢰수준 95% + - 오차 얼마에 몇%라는 식이다. 1,000명으로 대상으로 100%를 얻었다 해도 1,000명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로 당락(當落)을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나 비판이 제시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거예상이 투표에 영향을 준다(bandwagon effect)고 흔히 지적되고 있으나, 한 연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결정적· 일반적으로 작용한다고는 볼 수 없다. 여론조사문제점으로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은 여론조사 결과를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과 또한 그것이 과연 진정한 여론을 담아낸 그릇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유권자마다 판단 기준과 정당 및 후보 지지 성향이 다른데 대상자를 1,000명으로 한정해 당락(當落)을 안다는 것은 억척에 불과하다.
특히 오차를 어떻게 배제 또는 축소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근래 이 점에 관한 이론과 기술이 상당히 진전되고 있으나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많아 쉽게 언급할 사안의 것이 아니겠으나, 여론조사의 대상이 복잡하고, 다면적·유동적인 것인 이상 한두 번의 조사로 정확한 여론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여론조사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면적인 데이터의 집중적인 축적과 타당한 해석의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 여론조사에 짜증이 나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짜증에서 얼마나 올바른 여론이 형성 될지도 의문이다. 전화 착신 전환은 많게는 수천 개의 전화번호에 착신 전환 서비스를 신청해 특정 후보 측의 전화로 연결되게 함으로써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도 있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론이란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신념과 판단을 말하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경우도 있다. 여론에는 증명된 지식으로서의 성격은 없고, 또 입증할 수 없는 믿음으로서의 성격도 없다. 여러 가지 의견을 평가하기도 하고, 누가 어떤 여론을 어느 정도 강하게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는가를 알려는 것이 여론조사의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집단으로부터 표본 추출이 실시되고, 대개 하나 하나의 독립된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응답자에게 협력하도록 하고, 도중에 그만두지 않도록 당사자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질문은 응답자에게 몇 가지 선택지로부터 하나의 응답을 선택토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자유로운 응답질문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기록자와 분석자에게 모두 부담이 된다. 이런 여론조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것이 오픈프라이머리(Open Premary 개방형국민경선제)이다. 정당이 선거 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제도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장점이라면 국민의 선거 참여 기회를 확대해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며 국민의 정치참여이지만, 당원의 존재 의미가 약화되고 정당정치의 실현의 어려움이나 이중 선거 실시 및 경선결과 불복 등 각종 문제로 인한 후유증을 남기 부정적인 면도 가졌다는 것이 단점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중의 하나는 중앙집권적공천제도이다. 이런 중앙차원의 공천행사가 선진정치문화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천제의 혁신과 정당지도부 위주의 그릇된 패거리 정치의 혁신적인 유권자의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