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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자나무 예찬

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나무 그늘이 그리워진다. 시골에 가면 어느 마을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정자나무의 정겨운 모습.

 

내 고향 묵산 마을 동구 밖에는 어느 마을과 다름없이 지금도 수호신처럼 수백년을 살아 온 듯한 큰 정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람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 어림잡아 500년 - 600년은 될 듯 싶습니다.

 

이 정자나무는 이팝나무라고 하는 수종인데 그 규모가 크기도 커지만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 정자나무는 내 고향 마을의 자랑거리며 내 고향의 명물이기도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와서 사느라 늘 바쁜 생활에 쫒겨 자주는 고향에 가지 못하지만 추석과 설 명절에는 어김없이 고향에 가는데 그때마다 그 정자나무는 늘 즐거운 웃음을 던지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어떤 때는 바람에 나무가지가 흔들려 마치 나에게 어서 오라면서 손짓을 하는 듯 하기도 한다. 그 손짓에 나도 화답을 해야 하기에 아람드리 몸을 두 팔로 부둥껴 안아 입을 맞춘다.

 

그래서 고향에 가면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반겨주는 포근한 마음을 나에게 선물한다. 나는 고향에 가면 이 정자나무를 부모님처럼 그리워하고 형제처럼 사랑하며 친구처럼 대면하며 스승처럼 존경한다.

 

나는 어릴 때 고향 마을에서 살면서 늘 정자나무 밑에서 지내곤 했다. 여름 더운 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농사일을 하다가 힘이 들면 잠시 이 정자나무 밑에 와서 쉬곤 했다. 그래서 이 정자나무 밑은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장기나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의 쉼터이기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농촌 생활도 변화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내 고향 마을 정자나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늠름한 모습을 그대로 뽐내고 있다. 언제봐도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내가 도시에 와서 결혼하고 자식들과 한 가족을 구성하여 살아가면서 인생이 고달플 때는 고향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정자나무 밑에서 파랗게 숲을 이룬 잎들을 보면 그야말로 새로운 삶의 용기와 힘이 솟아난다.

 

하나 둘 모아 잎들이 뭉쳐서 큰 무리를 이룬 우람한 자태야말로 스스로 고달픔을 이겨내는 자가 얻는 보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사는 것이 외로울 때에도 나는 이 정자나무를 생각해 보곤 한다. 촘촘히 얽혀진 가지들을 보면 비좁은 공간에서도 까치들에게는 보금자리 주택을 제공하고 새들에게는 쉼터를 마련해 주는 후덕한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스스로 외로움을 참아 내는 자가 얻는 행복이 또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사는 것이 지루해도 이 정자나무를 생각한다. 무거운 가지와 잎을 떠받치고 있는 밑둥을 보라!. 힘겹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은 순결한 징표가 아니겠는가. 오래 참는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사람의 의지가 여기가 있음을 정자나무는 알려준다.

 

정자나무는 의지의 상징이며 삶의 끈기이며 방황하는 인생을 바로 잡아서 편안하게 사는 길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다. 또한 인내의 표상이며 사랑과 열정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선구자이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짝을 짓듯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같이 정자나무 밑에는 나뭇잎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나뭇잎을 보는 내 마음에는 덧 없는 세월의 흐름이 풍경화처럼 그려지고 외로움이 가슴에 쌓인다.

 

저 멀리 들려오는 짝을 찾는 까치의 울음소리가 내 가슴에 뜨거운 눈물을 고이게 한다. 인간도 태어나 자연속에서 하나의 연약한 나뭇잎처럼 저렇게 떨어지면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겨울이면 정자나무는 큰 온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찬 바람을 막아주기에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정자나무 밑에 들어서면 어머니 같은 따뜻한 숨결이 들린다.


또한 눈이 아무리 내려도 정자나무 밑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많은 눈들을 가지들이 지붕처럼 떠받쳐 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울에도 앙상한 나뭇가지만으로도 추위를 잘 이겨내는 것을 보면 인내력도 대단한가 보다. 제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울 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겨울 추위를 잘 참아낸 정자나무는 이듬해 봄이 되면 가지에 파란 새싹을 틔우며 새로운 한 해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새싹은 작은 잎이 되고 작은 잎은 여름이 되면 하나의 작은 숲을 이룬다. 그리고 늠름한 자태를 또 한번 세상 사람들에게 보인다.


여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도 정자나무 아래는 젖지 않는다. 이 또한 정자나무 가지와 잎들이 힘을 보아 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어 신록이 우거지면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처럼 정자나무는 생명들의 쉼터요,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귀한 존재다. 여름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에서 라면서 마을의 정자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잠시나마 더위에 젖은 땀을 씻어준다. 거기에다 매미의 멋진 노래소리는 시골의 정겨움을 한층 더 보태어 준다.  


내가 고향을 떠난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지금도 정자나무는 더욱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오늘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도시에 와서 삶이 고달플 때에는 고향 마을의 정자나무를 생각하며 새로운 용기와 힘으로 삶의 의지를 다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천년을 살아도 변함없는 내 고향 마을 정자나무를 나는 존경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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