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식량배급으로 주민을 통치하고 있다. 그래서 식량배급을 주지 못하면 당(黨)은 주민들에게 기업소나 공무소에 나와 일하라는 지시를 할 수 없다. 배급을 받지 못하면 주민에게는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자유가 주어지면 주민들은 산에 가서 약초나 나물을 캐거나 강이나 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서 장마당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배급량 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자유를 갈망한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의 배급이 없어도 자유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김정일이 주민들을 더욱 억압하는 것은 이런 주민들이 자유의식 때문이다. 1994년 당시 300만 명을 굶어 죽이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전국적으로 기계,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는 기름이 없었다. 병사들이 영양이 부족하여 포탄을 들 힘이 없었다고 한다. 남한 정부가 조금만 더 참고 김정일의 목을 옥죄었으면 통일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친북 좌파 김대중 정권이 등장하여 햇볕이라는 요사스런 정책을 만들어 죽어가는 김정일을 도와 주었다. 김대중 정부가 돈과 쌀을 엄청나게 퍼준 것이다. 배급할 쌀이 생겼으니 주민의 자유가 다시 박살나고 삶이 고단해 진 것이다. 김대중은 죽어가는 김정일을 구해 주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귀중한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김대중으로 살아난 김정일은 그 은혜도 모르고 지금도 걸핏하면 우리 정부를 향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협박하면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 이런 북한의 도발을 의식해서인지 노무현은 ‘북한에 퍼주어도 남는 장사’라는 기막힌 말을 하고 죽었다. 자유는 귀중한 것이다. 더구나 지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자는 목숨처럼 귀중하다. 그러나 김정일 독재정권에서는 아무리 자유가 귀중해도 맛볼 수 없다. 김정일 정권에서는 동물처럼 살아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민주주의 사회에도 질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질서는 마땅히 독재체제의 질서와는 판이한 것이어야 한다. 독재체제에서의 질서는 독재자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되지만 민주주의에서 질서는 제도와 법규에 따라야 한다. 모든 자유가 다 보장된다 하여도 법을 어기고 ‘거짓말 하는 자유’는 절대로 보장될 수 없지만 보장돼서도 안될 가장 흉악한 사탄이다. 이 사탄이 날뛰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만다.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지금 우리사회가 혼탁은 것은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곰곰이 살펴보자. 무질서한 혼란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거짓말 하는 자유 때문이다. 거짓말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다’고 우겨댄다. 그리고 국민은 그것이 진실인줄 알고 있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간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었음을 깨닫게 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어서 그 피해나 손실을 복귀할 길이 없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요인 중에서도 두드러진 원인이 그의 아들의 병역 관련 부정이었다. 병무청 직원이었다는 사람이 그 문제를 제기하여 부정을 입증하는 서류까지 들고 나와 유권자의 상당수가 그의 말을 믿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이 때문에 이회창은 청와대가 보이는 길목에서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전직 병무청 직원은 거짓말 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이회창을 낙선시킨 뒤 그것이 허위 사실임이 판명되자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그놈의 거짓말 하는 자유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가 뒤바뀐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친북, 종복 좌파들의 거짓말이 매우 심각하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증거물을 내 놓아도 그것으로는 안된다고 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많이 한다. 이런 근거 없는 거짓말은 국민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빈국가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다. 어느 나라이든 정치 풍토에서 좌우(左右)는 있기 마련이지만 서방국가들의 좌우와 대한민국의 좌우는 다르다. 선진국들이 정치 풍토에서 좌우(左右)가 대립되고 때로는 결전을 벌리고 가끔은 정권이 바뀌고 서로 웃으며 손을 잡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좌우가 서로 비방과 모략에 사로잡혀 갈등만 빚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의 정치 풍토가 언제 올지 막막하기만 느껴지기도 하다. 정치에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처럼 남과 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전쟁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좌파가 적의 편에 서 적(敵)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쩌면 앞에 바라보이는 적보다 우리 안에 있는 적(敵)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