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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예술인의 죽음을 보면서

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생활고에 시달려 요절한 단편영화 ‘격정의 소나타’의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씨는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월셋집에서 이웃 주민에 의해 숨진 채 별견됐다. 도보에 따르면 그녀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웃 주민은 ‘최씨가 며칠 째 아무것도 못먹었다.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를 현관에 붙여 놨길래 음식을 싸서 최씨집에 갔더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수일 째 굶은 상태에서 치료도 못받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겨레신문은 전했다.

2007년 한국종합예술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최고은씨는 재학 중 연출한 단편영화 ‘격정의 소나타’가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며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영화제작까지 연결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인이 생활고로 자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5월 영화감독 곽지균이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 6개월 뒤인 11월에는 싱어송라이터로 활약하던 이진원이 반(半)지하방에서 쓰러졌을 때도 그의 빈소엔 인디 뮤지션들만 그득했다고 한다.

불과 9개월만에 예술가 3명이 너무도 가난한 모습으로 죽었다. 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잘못되어 같은 일이 3번씩이나 반복됐을까? 지금 우리나라에 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비를 지원한다. 그런데 배가 고파 굶어 죽었다니 참으로 황당하기만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끓은 세 사람은 모두 무명의 신인 예술가는 아니다. 영화 ‘겨울 나그네’를 연출했던 곽지균 감독은 한 때 흥행 감독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와서는 잊혀지다시피 했다. 싱오송라이터 이지원은 홍익대 앞에서는 유명했지만 TV는 외면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은 국내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글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 세 사람에게는 공통된 점이 있다. 예술 창작 이외엔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 되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영화와 음악에 너무 애착이 강했다. 그러기에 이들은 오로지 영화와 음악에만 생존을 걸었다. 흔히 예술가는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위해 미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야는 관심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예술에 미치도록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개성과 자존심에서 나온다. 예술가는 개성과 자존심이 강하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만큼 창작에 쏟아붓는 열정도 강열하다. 예술가가 예술 아닌 다른 분야에 열정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이들의 죽음을 시장(市場)의 원리에 놓고 볼 것이다. 그러나 이윤이 나고 돈을 버는 쪽으로 움직이는 자본이 이들을 외면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아니다.

만약 이들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국가가 생활비를 주지 않고 죽던 말던 스스로 벌어 먹어라고 해야 맞다. 팔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쓰고 인기 없는 노래를 부르며 히트작을 만들지 못한 예술가는 냉정한 시장의 변두리로 밀리게 돼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어떻게 쓰야 히트작이 되는지 여기에 대한 정답이 없는 한 예술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달 돈을 주면서도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관심도 없었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 모두가 되돌아 볼 일이다.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빈궁한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에게도 최저의 생활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 문화 예술가가 돈을 얼마나 버는냐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루 세끼 밥을 먹고 건강검진을 받고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복지정책과 문화예술 정책의 핵심중 하나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의 문화정책을 보면 오로지 돈 되는 쪽에만 집중돼 있다.

전임 문화부 장관은 취임 직후 대형 연예기획사가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기자 회견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장관은 ‘한류’ 또는 ‘신한류’라는 이름으로 대중문화가 수출산업인양 취급했다. 외국에서 돈 버는 아이돌 그룹엔 정부 예산을 지원해주고 돈 못버는 뮤지션들의 지원 신청은 거부했다.

돈을 벌기 위해 폭력이나 불륜(不倫) 작품만 만드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건전한 예술 작품도 창작할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곽지균 감독이 방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힘들다’는 유서를 쓸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스스로 이 길을 택한 것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증오했을 것이다. 이진원이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라면만 먹고는 못살아’란 가사를 쓸 때의 기분은 얼마나 처참 했을까?

최고은 역시 남긴 쪽지에서 ‘창피하지만’이란 단어가 각별히 마음에 걸린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허기가 아니라 수치심이었을 것이다. 세계 15위의 경제대국, OECD 회원국, G20을 유치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삼류 영화같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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