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73년 이집트 국민의 한을 풀어준 전쟁 영웅이었다. 이집트는 1948년 주변 아랍국가들이 이집트의 건국을 막으려고 벌인 제1차 중동전쟁에서 크게 패했다. 더구나 1967년 ‘6일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으로 시나이 반도를 빼앗기고 수에즈 운하 턱밑까지 이스라엘군의 진주를 허용했다. 이처럼 땅밑까지 무너진 이집트의 자존심을 세워준 사람이 바로 ‘무바라크’였다. 그는 1973년 이스라엘과의 10월전쟁 당시 공군사령관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전투기 공격을 감행했다.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패했던 이스라엘군의 신화를 깨뜨린 일등공신으로 부상했다. 이때 ‘무바라크’는 북한의 공군력 지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 공로로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권력에 입문했다. 1928년 나일강 삼각주에서 가난한 하급 관리 아들로 태어난 ‘무바라크’는 소련 유학을 한 폭격기 조종사가 이집트의 권력 2인자가 된 것이다. ‘무바라크’는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불만을 품은 이스람주의자 군인들에게 암살당 한 뒤 4대 대통령이 됐다. ‘무바라크’ 성향은 "무색무취‘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무바라크의 성향이 30년 독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서방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친 서방정책을 추구했던 ‘가말 압셀 나세르’ 2대 대통령, 친미 개방정책을 내세우며 이스라엘과 수교를 했던 ‘나세르’ 3대 두 대통령과는 달리 ‘무바라크’는 조용한 무색무취의 노선을 걸었다 ‘무바라크’가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의 통치행적을 보면 북한의 김일성 - 김정일을 빼닮았다. 그래선지 ‘무바라크’가 김일성과 친교를 맺으면서 김일성의 통치 스타일을 배웠다는 말도 있다. ‘무바라크’는 집권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비상계엄법’으로 국민을 통제했다. 서방에서는 이 법을 야당을 말살하기 위한 법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런 법으로 ‘무바라크’는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북한과 이집트의 닮은 독재체제는 권력세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바라크’는 집권당인 국민 민주당의 서열 3위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셋째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은밀히 공작해 왔다고 한다. 사실상 집권당 대표만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가말’을 집권당 대표로 앉혀 대선에서 권력을 물려주겠다는 심산이었다는 것이다. ‘무바라크의 권력에 대한 야욕이 여기에까지 오자 국민은 ’키파야(충분하니 그만하라는 뜻의 아랍어)‘운동을 일으켰다. ’키파야‘는 과거 2005년 첫 직선제 대선(무바라크는 여기서 승리했다)을 앞두고 야당에서 만든 정치구호였다. 게다가 ’무바라크‘와 그의 일가의 부정축재 규모가 700억 달러(약 78조 1,900억원)라는 영국 가디언의 보도까지 나와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영국,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 예금,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홍해 해안의 고가지역 등에 투자해 거대한 부(富)를 쌓았다고 한다. 아랍계 신문 ‘알카 바르’는 ‘무바라크’가 뉴욕 맨허튼과 베벌리힐스, 로데오 거리의 부동산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들 ‘가말’과 ‘알라’도 억만장자로 알려졌다. 2011년 2월 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선 페이스북. 트위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MS)를 이용해 집결한 국민이 ‘키파야’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다. 통행금지령을 내려도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사격을 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 ‘무바라크’는 빈사의 신세가 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무바라크’는 북한과 친했다고 한다. 1990년대까지 친북인사였다. 1973년 공군사령관으로서 10월 전쟁을 치르면서 북한의 공군력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소련은 지원을 거부했지만 북한은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준 것이다. 당시 북한은 ‘무바라크’에게 이스라엘을 상대로 기만작전을 제안하는 등 상당한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는 대통령이 된 후 북한을 3차례 방문했다. 북한의 각종 장거리 미사일도 이집트가 소련에서 받은 스커트 미사일을 제공 받은 것이란 주장이 있다고 중알일보(2월 6일자)가 미국 동서문화센터 ‘포스코 펠로’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무바라크’는 북한과의 의리를 지킨다며 ‘김일성 생전에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김일성이 사망한 이듬해인 1995년 한국과 대사급 외교를 맺었다. ‘무바라크’가 30년동안 이집트를 1인 독재로 통치하면서 권력을 아들 ‘가말’에게 세습하려 한 것은 북한과 똑 같다. 이집트의 반정부 유혈사태를 보면서 북한의 김일성 - 김정일- 김정은 세습독재에도 멀지 않아 종말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