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분까지 국가에서 챙기는 것을 확인하면서 잠시 옛날 미국 고등학교시절을 떠올렸다. 73년 가을,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간 내 옆자리에는 유난히도 빛나는 금발머리의 여학생이 있었다. 약간 통통한 모습의 그녀는 학교내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나에게 늘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녀가 학교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궁금했던 나는 허술한 영어로 주위에 물어보니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당시 그 소식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내 귀를 의심캐했다. 몇 번이나 확인한 후 미국생활에서 나의 첫 친구가 나쁜학생이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했다. 나중에 학교의 특수담당 교사가 그녀의 집으로 가서 교육을 한다는 말을 듣고 미국이란 참 희한한 나라다고 생각했다. 나는 금발의 그 친구가 나쁜 부류의 학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뭐 하러 학교에서 집으로 가정방문까지 하면서 가르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십대 소녀 미혼모에 대해 라디오방송을 들으면서 내 머리 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하는 딱한 심정 뿐이다. 별 분별력 없이 순간에 저지른 실수로 인생이 바뀌게 되는 십대 미혼소녀들.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육체적, 심리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부담을 모두 다 떠안아야 되는 그들에게 우리사회는 지금 어떤가? 원치 않은 임신만으로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두려운 그들에게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미래의 꿈마저 포기하게 하니.... 청소년 미혼모 문제에 대해 조금만 주변에서 관심을 기울여 한때의 실수로 낙오자의 길로 들어설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건강하게 되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책무가 아닌가? 그들이 아픔을 딛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홀로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그 첫 출발이 바로 학습이다. 대학진학율이 90%나 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교육기회마저 빼앗는다면 청소년 미혼모들의 취업기회 박탈은 물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송에서 19세 이하 청소년 미혼모 대부분은 자퇴나 휴학을 강요받는 등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둔 미혼모의 88%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관련 부처에 자퇴나 휴학 강요를 방지하는 규정을 만들고 대안학교 위탁교육을 활성화시키도록 권고했다니 오랜만에 뭔가 제대로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청소년기는 성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경험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성교육이 아니라 순결교육이라 한다. 한층 더 성숙되고 현실적인 성교육을 통해 제대로 된 ‘예방’또한 필요하다. 지금 대통령 이하여야 정치권에서는 모두들 서민을 위한 정책마련에 올인하고 있다. 청소년미혼모들의 인권보호로 인해 우리사회에 서민층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될것이다. 아무쪼록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경제만 부르짖지 말고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복지,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