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40> 작은 입 입의 폭이 두 눈의 검은 자위안쪽의 너비보다 작아서 병어입이라고도 하며 아주 작아 보이는 모양새이다. 소심한 성격으로 투쟁력이 약하고 포부가 작아서 무슨 일에나 앞장서지 않는다. 남의 위에 서더라도 성공하지 못하고 여성은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상이다.
칼럼 세월은 관용이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은 인품과 학식이 모두 훌륭해 당대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도연명을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학식이 풍부하고 견해 또한 탁월한 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것이 궁금한가? 나를 따라 오게.” 도연명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청년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논으로 갔다. 도연명은 말했다. “여기 앉아서 이 볏모들을 보고 있게나. 눈을 다른 대로 돌리면 안되고 계속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네.” 청년은 도연명이 시키는 대로 볏모들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도연명은 그곳을 떠났다. 몇 시간이 지나자, 도연명이 다시 돌아와 물었다. “몇 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자네는 계속 이 볏모들을 보고 있었겠지?” “예.” “이 볏모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 보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도연명이 말했다. “자네는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지만 사실은 이 볏모들은 일초 일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자랐을 걸세, 그리고 많은 이삭들을 맺게 될 걸세. 학문도 그와 같네. 오늘, 내일, 모레.. 하루, 이틀, 사흘, 한
칼럼 차기 대통령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대한민국처럼 정당이 당명을 자주 바꾸는 나라가 또 있는 지 모르겠다. 당명은 그렇다 해도 정당을 창당 했다가 사라지는 정당도 적지 않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구조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은 두 당 모두 200년을 존속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정당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쉽게 생겨나고 쉽게 당명이 바뀌는 정당을 보는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관상에 일가견이 있는데 정치인들 중에 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대물(大物)이 없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검찰총장 영입설이 나오고 있다. 이승만 박사나 조병옥 박사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기에 근접한 인물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혹여 인물이 있어서 물어보면 혼탁한 한국의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처럼 대통령 한 사람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는 국가에서는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허약한 야당으로서는 대텅령이 무능해도 탄핵으로 하야시킬 수가 없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당연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린 풀잎은 바람이 없는
칼럼 인간의 길흉사 언제 왔다 가는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청년이 이웃 노파에게 슬그머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성적(性的) 충동은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로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 이 말이 사실일까요?” 그러자 노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두배 이상은 성적 충동이 강하다고 우겼다. 청년이 일부러 노파의 감정을 돋우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은 체 하자 노파는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러면 실제로 실험하여 한번 증명해 보기로 하자” 노파는 청년의 유인 작전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의 말을 들은 청년은 작전이 성공하여 속으로 좋아하면서 못이기는 체 그렇게 해 보자고 동의했다. 노파를 눕혀 옷을 벗겨 놓고, 한참동안 몸을 만져 분위기를 돋우어 놓은 다음 제안 하기를 “할머니! 제가 최선을 다해 기분을 돋우는 동안 저는 ‘어모장군용양위부사직(禦侮將軍龍驤衛副司直)이란 말을 계속 외울테니 할머니는 ’한강변암소방울 딸랑딸랑‘이라는 말을 계속 외워서 끝까지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결정 합시다.” 하고 말하자 노파도 좋다고 대답해 약속이 성립되었다. 청년이 노파의 배위에서 운동을 전개하자 노파는
칼럼 인내 앞에선 어떤 인생도 굴복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야 들려야 하는 숙명적인 희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인생의 체험은 단순하지 않으며, 늘 변화하고 바뀌면서 일생중의 하루 하루는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며, 사물을 판단하는 자신의 결정 방식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법으로 삶이란 형태로 접근해 온다. 혹여 인생을 단 하나의 체험이라고 해석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대부분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은 자기의 인생을 항상 뒤돌아보며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은 일련의 목적지의 연속, 바꿔 말하면 여러 가지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출생∼학생∼성적∼졸업∼취업∼결혼∼등과 같은 사건은 모두 내 인생의 목적지에 가는 일련의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내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한 역(驛)에서 또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의 인생 전체는 연속되는 여행이며, 그 순간 순간은 내가 체험하기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39> 큰 입 입의 폭이 눈폭의 1.5배 보다 더 넓게 생겼다. 또한 두 눈의 검은자위 안쪽 너비보다 더 넓거나 자기 손가락 검지, 중지, 무명지, 셋을 합친 아랫부분의 너비 보다 넓은 모양이고 거기에 비례해서 입술도 두둑하게 생긴 모양새이다. 성격이 호탕하고 결단력이 있고 대담한 일처리로 많은 재물을 모으고 산다. 과욕으로 인한 고통이나 재앙이 생길 수 있다. 여성은 활동적이면서 극성스러워 실패가 많은 상이다.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54회 다라국의 후예들 “효자의 집에서 벼슬이 났다. 그는 어버이를 섬기듯이 임금님을 섬겨서 장차 큰 충신이 될 것이다.” “자고로 효자가 충신된다 했으니 더 이를 말이오. 더구나 최송빈은 하늘이 내신 효자니까 하늘이 감탄하실 나라의 큰 충신이 될 거야.” 이런 말들이 마을에 퍼지면서 일시에 이름이 높아지자 그의 효행도 더욱 빛을 내게 되었다. 거연무왕은 내심 최송빈을 큰 재목으로 키울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왕의 뜻은 곧 허무러지고 말았다. 왕은 병이 들어 사망했다. 거연무왕(巨淵武王)이 사망하자 윤화의 소생인 거우위(巨優位)가 20살의 젊음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 분이 다라국의 제3대 왕이다. 거우위(巨優位)는 왕위에 오른 이듬해 결혼하였다. 원래 윤화(允花)는 부왕인 거타지왕의 후실이었으나 노년에 얻은 터이라 자식이 없던 차에 부왕이 죽자 거연무왕(巨淵武王)는 젊고 아름다운 윤화(允花)를 자신의 후실로 삼았던 것이다. 이때 거연무의 정비(正妃) 매씨(梅氏)는 윤화가 자식을 낳을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했는데 윤화가 먼저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딸(공주)이라 사실상 왕통을 이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비 매씨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38> 끝이 갈라진 법령 법령이 중간에서 가지치듯 갈라져서 끝이 두 가닥씩 된 모양새이다. 중도에 직업을 바꾸거나 동시에 두 가지 직업을 갖게 된다. 만일 갈라진 지선이 보조전 역할을 한 모양새라면 그 부분만큼 나이에서 사업이 발전한다.
칼럼 거대한 빙하처럼 움직여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침착성(composure)은 처세술(savoir vivre)의 기본이며, 이는 어느 재능보다도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침착성과 냉철함을 잃지 않는 사람은 재능의 크고 작음과는 상관없이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반면에 능력은 우수하고 뛰어나지만 사소한 일에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침착성은 다양한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곧잘 부끄러운 모습을 한다. 말이나 행동에 혹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나머니 최대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중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발언할 기회라도 주어지면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실수할까 봐 여간해서는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이처럼 작은 난관도 제대로 돌파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저 별 볼일 없이 작은 인물로 구석진 곳에서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침착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평소에는 대체적으로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능숙하게 사람을 대하면서도 돌발 사고라도 발생하면 머리가 혼란스러워 제대
칼럼 큰 인물도 주변 정세를 잘 파악해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큰 인물은 대개가 청소년 시절에 인생의 목표(target)를 세운다. 그 다음에는 꾸준히 목표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 붓는다. 나폴레옹은 학생시절 걸핏하면 사고나 치는 거칠게 행동하는 작은 악당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목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난 훌륭한 군사전략가가 될 소질이 있다. 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것이다.” 그날부터 나폴레옹은 권력을 향해 가파른 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이 16세 때 포병학교에 들어가 장교의 길을 걸었고, 사단장과 포병사령관을 거쳐 35세가 되던 해 프랑스 황제의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전에는 중상과 모략으로 감옥살이도 했다. 옛날 여러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시대였다. 맹(孟)씨 가(家)와 시(施)씨 가(家)는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 맹씨가와 시씨가는 똑 같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집안 모두 큰 아들은 학문을 닦고, 둘째 아들은 무술을 연마했다. 맹씨가의 두 아들은 장성하자 각자 청운의 꿈을 안고 집을 떠났다. 큰 아들은 진(秦)나라를 찾아가
칼럼 일본의 문물은 백제가 전파한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백제 동성왕의 사망으로 왕위에 오른 무녕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며 곤지(困支)의 양자이다. 462년 왜지(倭地)에 있는 나라백제(奈良百濟)로 가는 도상인 각라도(各羅島)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융(隆)이다. 태어난 후 줄곳 나라백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어로 시마(島) 또는 사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를 사마왕(斯麻王)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왜지에 또 하나의 백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나라백제이다. 나라백제는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는데 당시 근초고왕은 대륙 백제, 한반도 백제, 왜지의 나라백제 세 지역을 통치하면서 대제국 황제였다. 대륙에서 한반도는 거리가 가깝지만 왜지는 대륙에서 거리가 멀고 당시는 해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 왜의 나라백제를 자치적으로 통치하는 왕을 두었는데 이를 천황이라 불렀는데 총독과 같았다. 사마는 그가 태어나자 생모와 함께 대륙 백제로 돌아갔지만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불안하여 나라백제에 있는 곤지(昆支)에게 다시 보내졌다. 이처럼 백제 왕실에서 왕자를 마음대로 왜지의 나라백제에 보내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한 것은 나라백제(奈良百濟)는 백제가 지배하는
명리학자 권우상의 얼굴의 운명 <237> 입을 접해 있는 법령 뻐령이 입의 양쪽 끝을 접하면서 턱으로 뻗어내려간 모양새이다. 처음 결혼한 사람과는 오래도록 살지 못하고 이별한다. 또한 입 끝에 따로 있는 주름도 이와 같은 운을 나타낸다.